영화 '조선마술사'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츠한국 장서윤 기자] "나는 열심히 꿈을 꾸었을 뿐이다."

세계적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얘기다.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는 이유는 뭘까? 각각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현실세계 속에서 는 마주하기 어려운 상상력과 꿈을 찾기 위해서라는 점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그래서 어떤 영화는 신경을 초집중해서 이야기 구조를 따라가야 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영화는 닫혀 있던 감성을 열고 마음으로 봐야 '잘 보이는' 작품이 있다. 30일 개봉한 영화 '조선마술사'(감독 김대승, 제작 위더스필름(주))는 전적으로 후자에 속한다. 첫사랑의 설렘과 사랑의 보이지 않는 위대한 힘을, 122분의 러닝타임 동안 판타지 속에서 풀어냈다.

병자호란(1636년)이 휩쓸고 간 조선 중기. 어지러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평안도 최대 유곽 물랑루에서는 매일 밤 조선 최고의 마술사 환희(유승호)의 놀라운 무대가 펼쳐진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빠른 손놀림, 미소년다운 신비로운 외모를 지닌 그는 실력과 인기를 겸비한 물랑루의 최고 스타다. 그러나 환희에게는 도망가고픈 어두운 과거가 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청나라 마술사 귀몰(곽도원)에게 학대받은 그는 남매처럼 지내온 눈 먼 기생 보음(조윤희)과 함께 귀몰에게서 도망쳤다. 오른쪽 눈동자가 푸른빛을 띤다는 점도 그가 사람들 사이에서 잘 섞일 수 없는 이유다.

영화 '조선마술사'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매일 밤 성황리에 공연을 마치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늘 불안함과 공허함을 안고 사는 그는 우연히 청나라로 혼인하러 가는 운명에 놓인 청명공주(고아라)와 맞닥뜨린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청명은 환희와 엮이면서 알 수 없는 설렘을 느끼고 두 사람은 그렇게 위험한 만남을 시작한다.

줄거리는 어디서 본 듯한 첫사랑에 대한 판타지다. 할리우드 틴에이저 로맨스물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한다. 후반부로 가면서 이야기가 갑자기 비약되기도 하고 어떤 캐릭터는 당위성이 부족해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판타지 로맨스'가 마음에 와 닿는 이유는 결국 삶의 이유로까지 확장되는 사랑의 순수함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새벽 숲 속이나 절경을 배경으로 펼치는 환희와 청명의 로맨스는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지는 청량감 속에서 풋풋함과 사랑스러움이 배어나온다. 이제는 성인 배우로 제 몫을 하고 있는 유승호의 얼굴에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다양한 감정이 깃들어 있다. 웃는 듯 애달프고 우는 듯 미소짓는 표정에는 그 나이 또래 배우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섬세한 감성이 포착된다.

눈 먼 기생 보음으로 분한 조윤희는 알 듯 모를 듯한 감정을 내비치며 맹인 연기를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이들을 뒷받침하는 박철민과 조달환의 유머 코드는 심각해지려는 매 순간 웃음을 자아내는 요소다.

짜임새가 탄탄하고 캐릭터의 성격이 깊이 있게 드러나는 '잘 만든 영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조선마술사'는 군데군데 허술하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그런데 한번쯤 다른 렌즈를 쓰고 바라보면 어떨까. "널 만나면서 살고 싶어졌어"(청명의 대사) "네가 날 믿어줄 때 환술은 현실이 되는거야"(환희의 대사) 같은 대사들이 그저 유치한 사랑놀음이 아니라, '사랑'과 '꿈'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 내면의 욕구를 건드리고 있는 건 아닌지. 그것만으로도 극장을 나올 때 오랜만에 찾아온 설렘이 마음을 두드릴지 모른다.

영화 '조선마술사'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조선마술사'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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