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아치아라의 비밀’에서 ‘아가씨’ 강필성 역으로 열연한 배우 최재웅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스포츠한국 조현주 기자] 많지 않은 분량에도 그는 강렬했다. 매 등장마다 시청자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했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래서 더 눈길이 갔다. 순박한 얼굴로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이유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그의 모습은 극악무도했지만 왠지 모를 연민 역시 느껴졌다. 마지막 그의 “아이가 어떻게 엄마를 미워만해요. 얼마나 그리웠는데. 나도. 김혜진두”라는 내레이션이 주는 먹먹함이 그랬다.

배우 최재웅(36)이 최근 종영한 SBS 수목미니시리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극본 도현정·연출 이용석)이 최고 수혜자로 떠올랐다. 그는 극 중 짙은 화장과 과감한 옷차림, 화려한 장신구로 온몸을 휘감은 복장도착증 환자 강필성 역을 맡았다. 읍내의 유명한 변태로 그 기괴한 모습 때문에 마을에서는 그를 ‘아가씨’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지난 2012년 방송된 드라마 ‘대풍수’로 한 차례 호흡을 맞춘 이용석 PD와의 인연으로 드라마 출연이 성사됐다.

“감독님께서 설명도 안 해줬어요. ‘하자’고 말한 뒤 얼마 뒤에 ‘여장을 해야 돼’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제가 뮤지컬 ‘헤드윅’을 하면서 여장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어요. 거울을 보면서 ‘어떡하지?’라는 생각은 들었는데, 다행히 여장신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죠. 그런데 너무 안 예뻐서… (웃음) 애초에 감독님과 작가님이 약간 언발란스한 느낌을 원했더라고요. 스릴러 장르이기 때문에 오히려 저 같은 사람이 여장을 해서 조금 더 무서운 분위기를 냈던 것 같아요.”

아가씨는 극 중 김혜진(장희진)을 살해한 범인 1순위로 떠올랐다. 많은 시청자들이 찾던 김혜진 살인범은 아니었지만 그는 9명의 여자를 살해한 연쇄 살인마였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이고, 많은 작품에 많이 나왔던 유형의 인물이에요. 그걸 탈피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연쇄살인범의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걸 배재하고 싶었죠. 실제로 주변에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자신의 말이 상처가 되는지 모르더라고요. 사실 아가씨가 하는 대사나 말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악의를 가진 대사가 거의 없더라고요. 거기서 힌트를 없었어요. 아가씨는 정말 나쁜 놈이죠. 하하하”

시청자는 물론 배우들 역시 연쇄살인범이나 김혜진을 살해한 범인을 알지 못했다. 한 회 대본이 나올 때마다 퍼즐을 맞춰나가는 기분으로 연기를 했다던 그는 “정말 예상을 못했다”고 말했다.

“제작진이 절대 얘기해주지 않았어요. 제가 연쇄살인마라는 것도 밝혀지기 직전에 알려주셨다니까요. 저뿐만 아니라 배우들이랑 스태프들 모두 대본이 나올 때마다 추리 소설 읽듯이 다들 재미있어 했어요. 우리끼리 추리를 하면서 대본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서로 의심하고, 반목했던 마을 사람들이지만 실제 촬영현장은 화기애애했다. 쪽대본이 없는 물론이고, 넉넉한 촬영 시간 역시 이러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일조했다. 낮았던 시청률과는 상관없이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컸던 그다.

“재미있게 촬영했어요. 배우들끼리 합이 좋았어요. 정말 하나의 팀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보시는 분들도 좋게 봐주셔서 보람찼죠. 애초에 감독님께서도 높은 시청률을 바라시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시청률이 안 좋다고 해서 샛길로 새지 않고 묵묵히 뚝심 있게 작업을 하셨어요. 그게 쉽지는 않잖아요. 사실 케이블채널에서는 스릴러 장르를 많이 했지만 지상파에서는 거의 없었잖아요. 자부심이 커요.”

드라마를 이끌었던 주인공 문근영에 대해서는 “워낙 베테랑이다”고 엄치를 치켜세웠다.

“(문)근영이가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거예요. 한소윤이라는 역할이 인물 자체가 크게 튀지는 않지만 드라마의 기둥 같은 역할이었어요. 마지막에는 능동적으로 사건을 파헤치는 데, 연기를 정말 잘했죠. 그게 이 드라마의 핵심이었어요. 다들 감추려고 하고 덮으려고 하지만 소윤만큼은 능동적으로 비밀을 파헤치잖아요. 실제로도 에너지가 넘쳤어요. 근영이가 오면 현장 분위기가 확 밝아졌죠.”

드라마는 이제 네 작품째지만 최재웅은 뮤지컬계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아는 스타 배우다. 2003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한 그는 ‘그리스’ ‘쓰릴 미’ ‘날 보러 와요’ ‘헤드윅’ ‘그날들’ ‘마더발라드’ ‘형제는 용감했다’ 등 뮤지컬과 연극 무대를 오가며 묵묵하게 연기력을 쌓아왔다. 그런 그는 “새로운 도전을 좋아한다. 늘 새로운 장르와 역할에 목말랐다”고 했다. 그가 유달리 초연 공연을 많이 한 이유도 이에 기인한다. 오는 18일 선보이는 뮤지컬 ‘오케피’ 역시 초연 공연이다.

“‘마을’에 나오는 인물들이 하나 같이 다 매력이 있었잖아요. ‘오케피’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흔치 않은 소재예요. 무대 아래 연주자들의 이야기인데, 모든 캐릭터가 다 매력이 있어요. 좋은 작품이 될 것 같아요.”

10년째 연말을 공연으로 보내고 있다는 그는 “가족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남들을 즐겁게 해주는 직업이니 당연하다”고 웃어 보였다.

“드라마 촬영이랑 뮤지컬, 연습이 겹쳐서 몸이 조금 힘들긴 했지만 재미있었어요. 비슷한 역할이었다면 재미가 없을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색다르고, 새로운 거를 도전할 수 있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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