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호' 사진=NEW 제공.
[스포츠한국 장서윤 기자]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해수(해로운 동물)를 박멸한다는 명분으로 조선의 얼을 말살하려는 일제에 의해 포획된 조선 호랑이는 1921년 기록을 마지막으로 한국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로부터 한 세기 가량이 지난 2015년 현재, 조선 호랑이는 시나리오를 쓴 박훈정 감독의 상상력 속에서 재탄생됐다.

영화 '대호(감독 박훈정 제작 사나이픽처스)'는 한 마디로 정리하기는 쉽지 않은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호랑이와 그 사냥꾼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이 작품에 대한 압축적인 설명으로 가장 적절할 듯하다.

1925년, 조선 최고의 명포수였던 천만덕(최민식)은 지리산 자락의 오두막에서 늦둥이 아들 석(성유빈)과 단둘이 산다. 산에서 살며 호랑이와의 몇 차례 대적하기도 한 그는 자신의 운명을 산에 맡겼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시대 상황은 점점 척박해진다. 일본 정부는 정책적으로 조선 호랑이 사냥에 나서고 지리산 호랑이 '대호'를 잡기 위해 조선 포수대를 산으로 보낸다.

영화는 호랑이와 인간의 대치를 보여주며 자연의 경건함과 인간의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배경 속에서 포수대와 호랑이의 대결은 일제와 조선인의 운명을 보여주는 듯하다. 여기에 인간의 '업(Karma)'이라는 주제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면서 묵직한 메시지도 소화해냈다.

다소 느리게 이어지는 전개에도 이유가 있어 보인다. 빠른 것, 쉬운 것, 즉각적인 반응에 익숙해진 현대인을 비웃듯 작품은 천천히 이야기를 쌓아가며 절정을 향해 간다.

영화 '대호' 사진=NEW 제공.
영화의 압권은 후반부에 있다. 실제 산사람인 듯 형형한 눈빛만으로도 존재감을 보여주는 최민식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아우라로 천만덕을 표현해냈다. 돈과 명예를 떠나 한 인간이 지키고픈 소신과 철학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50대 중반을 향해 가는 이 배우는 손짓이나 눈빛 하나로도 백만가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을 연기해냈다.

촬영장에서 '김대호'라는 별명으로 불렸다는 CG로 탄생한 호랑이도 훌륭하다. 감정을 머금은 듯 슬픔과 분노가 섞인 표정과 날랜 몸놀림은 CG 구현을 위해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는 감독의 언급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극중 천만덕과 대척점에 서 있는 포수 구경 역으로 분한 정만식은 특유의 날카로운 분위기를 빛내며 인간의 욕망이 무엇인가를 온 몸으로 보여준다. 만덕의 아들 석으로 분한 성유빈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는 진중한 작품 분위기에 간간히 웃음을 던진다.

두세 번 곱씹어봐야 할 작품의 주제의식을 '대호'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점진적인 흐름 속에 담아냈다. 오랜만에 인간과 자연, 삶과 욕망에 대한 질문을 직설적으로 던지는 작품이 나왔다. 영화가 끝난 후에 남는 먹먹한 여운은 '대호'가 주는 보너스다.

영화 '대호' 사진=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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