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새벽. 사진=장동규 기자 jk31@hankooki.com
[스포츠한국 장서윤 기자] "판소리 연기요? 그저 '연습만이 살길이다' 싶었어요."(웃음)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길목에서 만난 송새벽은 차분하면서도 조금은 예민해져 있는 모습이었다. 판소리 명창 연기를 위해 갖은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은 영화 '도리화가'(감독 이종필 제작 (주)영화사 담담, (주)어바웃필름) 개봉의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다음 작품(영화 '7년의 밤') 촬영에 돌입한 그는 말수는 적었고 다소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영화 얘기를 할 때면 눈을 반짝 빛내며 다시금 '연기파 배우' 송새벽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스스로 '일생일대의 도전이었다'고 평한 송새벽의 명창 도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영화 '도리화가'는 혼돈의 조선 말기 조선 최초의 판소리 학당 동리정사를 배경으로 최고의 판소리꾼이 되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극중 송새벽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 명창이자 동리정사의 소리 선생인 실존인물 김세종 역으로 분했다.

실존인물이자 역사에도 기록된 판소리 명창을 연기하는 일은 데뷔 후 17년간 연극과 영화를 오가며 숱한 역을 맡아 온 그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송새벽은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감독님과 만났을 때는 '힘들겠다'고 말씀드렸어요. 북과 소리를 함께 해야 해서 2~3년은 트레이닝을 받아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했더니 감독님 말씀이 '그러려면 국립국악원에 계시는 분을 캐스팅해야한다'고 하시기에 듣고 보니 그렇겠구나 싶더라구요. 그 때부터 '연습만이 살길'이란 생각에 자나깨나 북과 소리에만 집중했죠."

송새벽. 사진=장동규 기자 jk31@hankooki.com
그렇게 시작된 수개월에 걸친 판소리 교습은 지난한 과정을 통해 이뤄졌다.

"판소리나 북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처음에는 감이 전혀 안 왔어요. 북채를 쥐고 하도 연습을 많이 하다 보니 나중에는 밥 먹는데도 손이 떨리더라고요.(웃음) 판소리는 악보도 없기에 선생님과 수업한 내용을 녹음해 듣고, 따라하기를 무작정 반복하다 보니 선생님이 어느날 '괜찮다'고 해주셔서 그제서야 '아, 그림은 나올 수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라는 것.

실제로 영화에서 펼쳐진 판소리 연기는 비전문가인 기자의 눈높이에서 평가해보건대 수준급 이상이다. 그는 류승룡 수지 이동휘 등 함께 출연한 배우 중에서도 월등한 기량을 뽐낸다.

송새벽은 "이제는 라디오 국악 채널도 종종 틀어놓고 북소리가 나면 손으로 저절로 장단을 맞추게 된다"며 판소리를 배운 후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그가 이렇듯 짧은 시간 내 판소리에 빠지게 된 것은 판소리 특유의 '놀이'를 사랑해서이기도 하다. 송새벽은 "관객들 앞에서 한판 노는 모습이 어찌 보면 현 시대와도 비슷한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잘하고 못한 걸 떠나 우리끼리 신나게 어우러지는 호흡도 좋았고요. '아, 예전에 우리 조상님들은 이런 방식으로 놀았구나'란 생각을 하니 남모를 설렘도 느꼈어요."

가사의 뜻, 의미, 소리, 사연을 하나 하나 해석해보며 남모를 재미도 찾았다.

송새벽. 사진=장동규 기자 jk31@hankooki.com
"지금 시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조선시대의 감성이고 노래인데 구구절절한 사랑이야기가 매력있게 다가왔어요. 내게도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한국인의 '한(恨)' 또는 '얼'같은 정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여기에는 배우들과의 호흡도 한 몫했다. 극중 동리정사의 스승 신재효 역으로 분한 류승룡과는 이번 작품에 이어 다음 영화인 '7년의 밤'에서도 함께 연기하는 인연을 맺게 됐다.

그는 "연달아 두 작품을 한 배우와 함께 하는 건 처음이에요. 형님(류승룡)도 처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류승룡 선배는 처음봤을 땐 농담도 잘 안 받아줄 것 같고 근엄하신 줄 알았는데 친해지고 보니 수다쟁이세요.(웃음) 유머러스하셔서 짧은 시간에 되게 빨리 친해졌고요. 사실 후배가 먼저 다가가기 쉽지 않은데 늘 미리 판을 잘 깔아주시니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죠"라고 전했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20대 스타 수지와의 만남은 "그저 고맙다"며 웃음짓는다.

"제가 복이 많아요. 연습실에서 처음 만났는데 수지는 워낙 재기발랄해요. 천진난만함이 극중 채선과도 많이 닮아 있어 '배역의 생활화'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스타가 아니라 그저 스물 둘 연기자로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나만 잘하면 되겠다는 생각이었죠(웃음)"

송새벽. 사진=장동규 기자 jk31@hankooki.com
편안하게 얘기를 이어가지만 지난해 첫 딸을 얻은 후 배우로서, 인간 송새벽으로서 그는 여러 생각의 변화를 겪기도 했다.

"아이를 안고 있으면 그저 신기해요. '가족이라는 게 이래서 소중하다고 하는구나'란 생각이 절로 들고요. 밥을 한 끼 먹더라도 이제 내 멋대로 살면 안되는구나란 마음에 어깨가 무겁죠. 어떻게든 가족과 함께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일까? 연기를 할 때도 이전보다 커진 책임감도 느낀다. 매 순간 자신과의 싸움이었던 판소리도, 다음 작품에서 도전하는 스쿠버다이빙도 선뜻 도전할 수 있었던 건 그런 책임감의 발로였다.

배우로서 성큼성큼 나아가는 그에게 이제는 연기를 시작한 연극 무대보다 '영화배우 송새벽'이 더 익숙한 듯해 보이지만 그에게 있어 무대는 언젠가 돌아가고픈 고향이기도 하다. "(무대에서) 멀리 떠나온 것도 아니고 언제고 좋은 작품이 있으면 하고 싶어요. 올 초 극단 쪽과 얘기가 있었는데 먼저 하기로 한 작품이 있어 아쉽게 고사했죠. 무대는 언제나 목말라요. 기회가 되면 꼭 무대에서 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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