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영. 사진=김지수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스포츠한국 장서윤 기자]"선배가 돼 간다는 것,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산다는 게 쉽지만은 않아요. 그래도 그만큼 의미있는 일이기도 하죠."

배우 정재영에게서는 늘 유쾌한 기운이 뿜어져나온다. '연기파 배우'라는 진중할 것만 같은 평소 이미지와는 달리 높은 톤의 웃음 소리로 기자를 맞는 그에게는 연기에 대한 열정 속에서도 재미를 놓치지 않는 소년다움이 숨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평소 모습과는 전혀 다른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25일 개봉한 영화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감독 정기훈 제작 반짝반짝영화사)'에서 그는 수습기자 도라희(박보영)와 매일같이 전쟁을 벌이는 스포츠지 부장 하재관 역으로 분했다. 사회 초년병인 라희에게 막말도 서슴지 않으며 기자로서의 자세를 가르치는 그는 악덕 선배의 모습 속에 숨겨진 진심을 보여준다.

극중 대부분의 장면에서 도라희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연출하는 그는 "시나리오에 있는 부분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게 관건이었는데 너무 세면 인물이 혐오스러워보일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부분은 과장되게, 또다른 부분은 재미있게 표현했어요. 연기지만 계속 소리를 지르다보니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풀렸어요(웃음). 평소에 나도 뭔가 쌓인 게 있었다는 걸 발견한 경험"이라며 웃음짓는다.

'신문사 부장'이라는 역할에 맞춰 현실감을 보여주는 데도 주력했다.

"사실 직접 신문사에서 경험해보고 싶어 촬영 전 제작사에 언론사 체험을 하게 해 달라고 졸랐어요. 스케줄이 어려워 결국 성사는 안됐지만 기자들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좀더 가깝게 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어요."

정재영. 사진=김지수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실제 만들어진 작품은 여러 캐릭터가 극화되면서 현실 속 기자들과의 모습과는 거리감이 있지만 정재영에게는 다른 직업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는 "잠깐의 경험으로 다른 직업을 '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이전에 비해 기자들을 훨씬 더 이해하게 됐어요. 개인이 소신을 가지더라도 환경과 상황이 받쳐주지 않으면 표현하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했구요.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처음에 가졌던 생각을 포기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네요."

작품에서 그는 시종일관 라희를 괴롭히면서도 때로 의리와 소신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이에 촬영하면서 자연스레 '선배'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됐다고.

"연기자로서 '어떤 선배가 돼야겠다'보다는 같이 호흡하려고 노력해요. 배우라는 건 자유스러워야 하니까, 연기하면서 최상의 것을 뽑아내려면 서로 거리낌이 없어야 해요. 선배를 어려워하거나 주눅들어서도 안되고…. 연기할 때만큼은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하는데 후배들이 느끼기엔 어떤지 모르겠어요"라며 "선배라는 게 점점 외로워지는 자리인 것 같긴 해요"라며 웃음짓는다.

함께 연기한 박보영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칭찬을 전했다.

정재영. 사진=김지수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박보영은 지금 만개한 배우예요. 재능이 너무 많아서 걱정될 정도라고 할까요? 표현이 넘쳐 흘러 걱정이죠. 처음에는 '하고 싶은대로 해' '위축되지 마'라고 조언해줬다면 지금은 자제하라고 얘기해야 할 정도니까요. 시대가 변하면서 배우로서의 그런 과감함은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작품의 주제인 '열정'에 대해서는 오랜만에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20대의 정재영과 지금의 나에게 무엇이 달라졌는지 물어봤어요. 내게 열정이란 '재미'를 뜻하는데 스스로에게 "재미있니? 하고싶니?"하고 물어보면 아직까지는 "그렇다"는 답이 돌아와요. 예전에는 정말 연기에 미쳐 있었다면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되게 좋은 정도'인 것 같아요. 20대 시절의 그 '미치도록 좋았던' 것을 대체한 감정은 여유겠죠. 줄어든 열정만큼 여유가 생겨서 연기하는 데 더 힘이 돼요"라고 들려준다. 또 "정리해서 말하면 열정은 남녀간의 사랑과 비슷해요. 수백만 가지 이유를 대도, 이유 없이 그냥 좋은 거. 어린시절 내겐 연극 무대가 그랬구요"라고 덧붙인다.

극중 하재관처럼 후배들에게 아낌없는 독설을 퍼붓는 상사들에게도 조언을 전한다.

"'전국의 하재관'들에게는 '정신 차리라'는 얘길 전해주고 싶어요.(웃음) 이솝우화에 '햇님과 바람'이라는 동화가 있듯, 성질대로 하는 건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이죠. 그보다는 따뜻한 말과 격려로 후배들을 사랑으로 키워줄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 때이지 않을까요?"

정재영. 사진=김지수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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