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희] '돌연변이'서 생선인간 취재하는 인턴기자 역 열연
영화제용 영화가 아니라 모두가 즐길 만한 유쾌한 영화다
연기는 나의 천직!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 "난 행복합니다!"

사진=장동규기자 jk31@hankooki.com
[스포츠한국 최재욱 기자] 좋은 배우이면서 멋진 가장이었다. 영화 '돌연변이'(감독 권오광, 제작 영화사 우상, 피데스스파티윰) 개봉 직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이천희는 이야기를 나눌수록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진정한 훈남’이었다.

비록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못 받아도 그는 항상 당당하고 빛난다. 모델 출신다운 환상적인 기럭지도 한몫 하지만 연기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삶에 대한 긍정적인 생활방식 때문. 역할의 크기와 상관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대본에 항상 감사하고 매일 촬영장에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하는 그의 건강한 마인드가 주위에 훈훈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돌연변이’는 신약 개발 부작용으로 생선인간이 된 청년 박구(이광수)가 세상의 관심으로 일약 스타가 되었다가 제약회사의 음모로 세상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 성인들을 위한 일종의 우화 같은 이 작품은 청년실업문제부터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풍자하면서 웃음과 공감을 함께 노린다.

이천희는 화제의 인물 박구를 취재해 정식기자가 되고 싶은 인턴 상원 역을 맡았다. 상원은 박구를 만나 화젯거리 생선인간이 아닌 내면의 진솔함을 접하면서 고뇌하게 된다. 이천희는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함’이 살아있는 신선한 시나리오에 반해 출연을 결심했다.

“시나리오를 지난해 10월쯤 받았는데 소재가 아주 신선했어요. 그러나 생선인간이라는 소재가 감이 잡히지 않더라고요. 어디까지가 생선이고 사람인지, 인어공주 같은 건지 헷갈리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을 만났는데 모든 걸 선명하게 해주셨어요. 정치적 풍자에 대해서도 물어보니 감독님은 이건 절대 영화제용 영화가 아니라 모두가 즐겁게 볼 수 있는 유쾌한 영화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감독님의 그런 확신에 찬 모습에 믿음이 갔어요.”

사진=장동규기자 jk31@hankooki.com
‘돌연변이’의 두 주인공 박구와 상원은 거울 속에 비춰진 또다른 자신 같은 존재다. 외모는 돌연변이가 됐지만 내면은 그 누구보다 순수한 박구와 외면은 정의를 찾는 기자지망생이지만 내면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상원은 다른 듯하면서도 닮아 있다.

“감독님과 처음 만나 ‘박규가 몸이 변해가는 돌연변이라면 상원이 사회적인 돌연변이가 아닐까요’라고 물으니 맞다고 하시더라고요. 박규가 오히려 더 인간답다 말하니 또 맞다고 동의해주셨어요. 상원은 생각보다 연기하기에 쉬운 캐릭터는 아니었어요. 관찰자 시점이기 때문에 많은 컷에서 카메라로 사람들을 찍기만 하고 하는 일이 없어요. 어떻게 보면 밋밋하고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았죠. 나뿐만 아니라 거울 속의 나인 박구도 탈을 쓰고 있으니 뭘 할 수 없었죠. 잘하고 있는 건지 혼돈되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나 10회 정도 촬영 하니 감독님의 의도를 알 수 있더라고요. 드러나지 않아도 전체적인 그림 속에서 캐릭터가 존재감이 분명 있더라고요. 답답한 마음이 들 때면 광수와 함께 술 한 잔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이천희가 연기하는 상원은 영화 속에서 사회적 정의의 편에 서기 위해 기자가 되기 원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차이에 혼란에 빠진다. 영화 속에서 그는 인턴 기자의 비애를 제대로 보여준다. 기자를 연기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는지 궁금해졌다.

“특별히 준비할 게 없었어요. 그냥 촬영을 해야 하니까 카메라를 어떻게 써야 하고 편집은 어떻게 하는지 정도만 공부했어요. 상원이 기자를 하려는 이유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 신념 때문이에요. 단순히 기자가 되면 약자의 편에 서서 사회부조리를 고발하고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정의를 실현하려면 경찰이 됐어야죠.(웃음) 초등학교 때 배운 그 마음으로 기자를 지원해요. 그러나 박구를 만나면서 현실을 보고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되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걸 깨닫고 떠나게 되죠. 이 영화는 상원의 내면 성장기라고 볼 수 있어요.”

‘돌연변이’는 수많은 한국영화와 외화 흥행작들 사이에서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이천희는 흥행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초월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14년차 배우다운 여유와 내공을 갖고 있었다.

사진=장동규기자 jk31@hankooki.com
“데뷔 초에는 정말 떨려 조마조마했죠. 극장을 몇 개 잡았나 관객은 얼마나 들었나 매일 체크하곤 했어요. 그러나 이젠 여유가 생겼어요. 그 수많은 영화들 속에서 우리 영화를 보러와주신 한분 한분이 고마울 따름이에요. 전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요. 연기는 한 작품을 더할수록 해가 갈수록 더 재미있어지는 것 같아요. 영화도 좋고 단막극을 할 때는 그만의 재미가 있고 장편 드라마를 하든 사극을 하든 각기 다른 매력이 있어요. 늘 보물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에요.”

이천희의 나이도 이제 37세. 마흔이 가까워 오고 있다. 배우로서 좀더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고 싶은 욕심이 들 만하다. 그러나 이천희는 결혼해 딸 하나를 키우고 있는 가장답게 또래의 배우들과 인생의 지향점이 달랐다. 갖고 싶은 걸 향해 달려가 쟁취하기보다 손안에 있는 걸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전 예전부터 느린 친구였어요. 천천히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가도 진정으로 원한다면 꼭 얻을 수 있다고 믿어요. 이 세상에 정말 배우라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 배우들이 다 똑같은 나무일 순 없다고 생각해요. 높게 화려하게 올라가는 나무도 있겠지만 저처럼 뿌리가 땅속에 더 깊게 뻗어나가는 나무도 있어요. 난 다른 나무인데 높이 올라가는 나무를 따라하려 했다면 분명 가지가 부러졌을 거예요. 좋아하는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스트레스 받고 살지는 않을래요.”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