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우] 사건의 키를 쥔 생활형 악역 권도혁역 열연
첫 스크린 주연 기대감과 부담감 반반이었다
손현주 선배와 함께 있는 촬영장은 산교육장이었다

사진=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스포츠한국 최재욱 기자] 가히 ‘대세 배우’라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22일 영화 ‘더 폰’(감독 김봉주, 제작 미스터로맨스)와 ‘특종, 량첸 살인기’(감독 노덕, 제작 우주필름, 뱅가드스튜디오)를 동시에 개봉시킨 배우 배성우는 현재 충무로에서 최고의 '신스틸러'로 꼽히고 있다. 연극판에서 10여년 넘게 쌓아온 탄탄한 연기력과 동네 바보 형부터 비열한 악당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여백이 많은 얼굴로 충무로 감독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11월에도 그가 출연한 영화 ‘내부자들’과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가 개봉되고 현재 영화 ‘사랑하기 때문에’를 촬영 중이다. 여기에 저예산 영화 ‘섬, 사라진 사람들’ 촬영도 이미 끝냈다. 충무로 최고의 조연배우 오달수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라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다. ‘요즘 대세배우임을 실감하느냐’는 질문에 배성우는 민망한지 피식 한번 웃곤 조용히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전 달라진 것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많이 나오니까 집에서 좋아하기는 해요. 솔직히 이름을 알리기 전 제가 고생한 건 별로 없습니다. 그 오랜 시간 집에서 먹여주고 재워줬기에 전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연극을 하면서 아무리 돈을 벌어도 수익이 얼마 안 되니 가장 역할은 동생(SBS 아나운서 배성재)이 많이 담당해왔습니다. 이제 그 책임을 제가 좀 나눠가져야죠. ‘대세’란 소리는 난생 처음 듣는 건데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참 어색하네요. 앞으로 정말 잘하고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폰’은 1년 전 살해당한 아내로부터 전화를 받은 남자가, 과거를 되돌려 아내를 구하기 위해 벌이는 단 하루 동안의 사투를 그린 추격스릴러. 배성우는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형사 권도혁 역을 맡았다. 아내를 살리려는 남자 고동호 역의 손현주,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할 고동호의 아내 연수 역의 엄지원과 팽팽한 연기대결을 펼쳤다. 첫 주연 영화였던 만큼 부담감이 컸을 법하다.

사진=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기대감이 드는 동시에 부담감이 몰려들었습니다. 사실 배우로서 캐릭터에 대한 부담은 어떤 면에서 즐거움이라 할 수 있어요. 이야기의 중심은 손현주 선배님과 엄지원씨인데 두 사람을 동시에 압박을 해야 하니 부담이 나름 크더라고요. 각각 다른 시간대에 있는 이 부부와 싸워야 했기에 제가 오히려 손현주 선배님과 더 많이 붙고, 엄지원씨와 더 많이 만나야 했습니다. 전체적인 이야기를 이끌어가야 하는 한 축이니 책임감이 많이 들어 고민을 더욱 했습니다. 저 때문에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져 흥행에 악영향을 끼치면 안 되니까요.”

‘더 폰’에서 배성우의 연기가 더욱 눈길을 끄는 이유는 그가 맡은 권도혁 형사의 캐릭터가 일반적인 악당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정할 여지가 있다가도 금세 관객을 경악하게 하는 복잡 미묘한 인물이다.

“제가 권도혁에 더욱 매력을 느꼈던 이유는 잔인무도한 사이코패스나 거대한 절대악이 아니라는 거였어요. 생활형 범죄자라고 말하면 딱 알맞을 듯하네요. 자기 생활도 분명히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악에 동참해야 하는 목적이 있는 거죠. 드라마나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지독한 악역으로 표현한다기보다. 일상적으로 살아가는데 그런 일을 해야 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습니다. 제가 제 욕심을 내면 균형이 깨질 수 있기에 톤을 조절하려 노력했고요. 당연히 저도 약간 세게 연기하고 싶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위해선 제 욕심은 자제해야죠.”

배성우는 ‘더 폰’에서 치열한 연기대결을 펼친 손현주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눈빛에 존경심이 가득 묻어났다. 영화 촬영 전부터 배성우에게 손현주는 닮고 싶은 롤모델이었다.

“처음엔 손현주 선배님과 일하는 게 신기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TV서 봐왔던 분과 함께 연기를 하니까 감격스럽더라고요. 직접 함께 일해 보니 예상대로 정말 모든 게 배울 거리였어요. 놀랐던 건 카메라 뒤에서나 현장 카메라 앞에서나 한결같다는 거였어요. 인품도 정말 존경스럽고요. 또한 정말 프로페셔널하세요.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조명부터 카메라까지 모두 체크하시면서 연기를 하시더라고요. 선배님과 함께하니 현장이 살아 있는 교육장이었습니다.”

사진=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배성우에게 ‘더 폰’은 신스틸러에 머물지 않고 주연배우 급으로 올라설 수 있느냐는 가늠해볼 수 있는 시험대 같은 작품. 그러나 인기를 좇기보다 연기가 주는 순수한 희열에 10여년을 보낸 그에게 역할의 크기는 중요한 게 아니다.

“요즘 주위 분들이 이제 많이 나오는 것보다 비중이나 분량을 좀더 신경 써야 할 때라고 말씀하세요. 배우로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죠. 그러나 꼭 많이 나와야 좋다고 생각지 않아요. 캐릭터가 매력 있는 게 더 중요하죠. 20대 후반에서 30대 때까지 연극을 할 때 운이 좋게도 주연을 많이 해봤어요. 그러나 영화 쪽으로 넘어오고 나니 어느 땐 한 신만 출연하게 되더라고요. 그 역할들이 재미있어 즐겁게 일했지만 전체적으로 끌고가면서 내 연기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한번 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

배성우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수많은 간극을 경험하게 된다. 소년의 마음과 중년 외모의 간극, 인간적으로 다가갈 때 낯을 가리는 수줍음과 연기를 할 때의 폭발되는 카리스마의 간극을 제대로 목격한다. 선배 손현주가 “아직 보여질 게 너무나도 많은 배우”라고 말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기가 생각하는 ‘인간 배성우’는 어떤 사람일까?

“글쎄요. 누구나 마음속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아요. 낯가리고 수줍어하는 것부터 화를 내면 무서워지는 모습 등. 그걸 표출해내는,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감정의 단면들을 찾아내 효과적으로 극대화시키는 게 배우의 몫이라고 봅니다. 극과 극의 이미지는 연기일 뿐 카메라 밖에서 전 아주 평범한 사람입니다.(웃음) ‘베테랑’이 1000만 관객을 넘어선 후 달라진 점 있냐고요? 기분이 아주 좋고 신기했죠. 사람들이 더 많이 알아보긴 합니다. 그러나 제가 큰 역할을 해낸 건 없기 때문에 제 삶은 예전과 똑같습니다. 수치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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