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Steve Jobs) ★★★(5개 만점)

애플컴퓨터의 공동 창립자인 스티브 잡스(마이클 파스벤더)의 전기 영화다. 아카데미 수상자들인 대니 보일(슬럼독 밀리어네어)이 연출을 맡고 아론 소킨(소셜 네트워크)이 각본을 썼다. 러닝타임 내내 말의 홍수요 언어의 범람이다.

소킨 특유의 속사포 같은 대사가 2시간 내내 쏟아져 나오면서 극적 전개나 정경을 무시해 영화 내용과 인물들에게 전혀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연극적인 영화로 기능적으로는 우수하나 재미는 없다. 마치 보는 사람의 지능 테스트라도 하겠다는 듯이 기술용어를 포함한 단어와 언어를 들으면서 과다한 영양공급을 받는 듯한 거북한 느낌이 든다.

각본이 연출을 앞선 영화로 화려한 스타일의 보일을 이런 고도의 지적인 영화 감독으로 선택한 것이 잘 한 일이 아니다. 영화는 잡스를 둘러싸고 몇 명의 주요 인물들이 들락날락 하면서 대화하고 언성을 높이는데 잡스의 세 번에 걸친 새 컴퓨터 소개가 작품의 주요 플롯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

맨 처음 1984년 잡스가 자신이 고안한 맥을 대중에게 소개하기 전의 준비 과정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애플 회장 존 스컬리(제프 대니얼스)에 의해 회사에서 쫓겨난 잡스가 1988년 자기 회사 넥스트를 설립한 뒤 역시 자신이 만든 새 컴퓨터를 소개하기 전의 준비 과정으로 이어진다.

마지막은 1998년 다시 애플사로 돌아온 잡스가 혁명적인 신제품 아이 맥을 소개하기 전의 준비과정이 얘기된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는 애플제품 선전영화가 된 셈이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이 잡스의 충신과도 같은 일벌레 마케팅 책임자 조앤나 호프만(케이트 윈슬렛)과 스컬리와 잡스가 성공하기 전 그와 함께 차고에서 컴퓨터를 고안한 프로그래머 스티브 워즈니액(세스 로건) 그리고 맥의 소프트웨어 디자이너 앤디 허즈펠드(마이클 스툴바그).

잡스와 이들이 마치 스크루볼 코미디처럼 요란하게 대사를 겹쳐가면서 떠들어대는데 도대체 그런 말의 헛된 성찬에 관심이 가질 않는다. 그나마 영화의 진행 속도는 배우들이 말하는 속사포식 대사의 속도처럼 빨라 크게 지루하진 않다.

재미보다 지적인 것에 치중한 영화로 페이스북 창시자인 마크 저커버그의 얘기를 그린 ‘소셜 네트워크’를 연상시키지만 재미는 크게 못 미친다. 영화는 잡스를 이기적인 천재로 묘사하면서 그의 내면 묘사를 상세하게 보여 주려고 했지만 충분치 못하다.

냉정한 인간 천재이자 기인인 잡스도 감정을 지닌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서브 플롯으로 잡스와 그의 전 애인 크리산(캐서린 워터스톤) 그리고 둘 사이에서 난 조숙하고 똑똑한 5세난 딸 리사(매켄지 모스)와의 관계, 그 중에서도 부녀관계를 영화의 나머지 부분과는 다르게 정적으로 그렸으나 너무 늦었고 또 충분치도 못하다.

무슨 역을 맡아도 잘 해내는 파스벤더가 확신에 찬 연기를 하는데 연기파 배우들의 연기는 볼만하다. 유니버설. 박흥진 미주한국일보편집위원 겸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 회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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