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 '사도'서 반항적 사도세자 역 맡아 강렬한 연기
비극적 사건보다 그 내면의 감정을 조명할 수 있어 출연
'1000만 배우' 수식어 기분좋지만 무게감도 크다

사진=김봉진 인턴기자 multimedia@hankooki.com
[스포츠한국 최재욱기자] 3m 떨어져 있어도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느껴졌다. 지난 16일 개봉된 영화 ‘사도’(감독 이준익, 제작 타이거픽쳐스) 개봉 직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유아인은 몸의 온도가 다른 사람들보다 2~3도는 왠지 높을 것만 같은 ‘열정의 사나이’였다.

올여름 ‘베테랑’(감독 류승완, 제작 외유내강)으로 ‘1000만 배우’ 반열에 오른 그는 올가을 조선 역사 속 가장 비극적인 왕자인 사도세자로 돌아왔다. 데뷔 이후 줄곧 반항적인 비주류 캐릭터를 연기해온 그에게 ‘베테랑’의 악당 조태오가 신선한 변신이었다면 ‘사도’는 그가 연기해온 반항아들을 집대성한 인물이라고 부를 만하다.

유아인은 모든 걸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보다 아버지 영조의 사랑을 더욱 갈구했던 사도세자의 내면을 강렬하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속마음과 달리 걷잡을 수 없는 엇나갈 수밖에 없었던 사연들을 설득력 있게 소화해내면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제가 원래 사극을 좋아해요. 매번 사극을 할 때마다 너무 힘들어 다신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지만 곧 다시 하고 싶어지는 매력이 있더라고요. 사도세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캐릭터였어요. 사실 사도는 영조의 아들, 정조의 아버지로만 알려졌지 직접적으로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조명된 적이 많지 않았어요. 모두가 익숙한데 그 내면은 잘 알지 못했던 인물인 거죠. 비극적인 사건에만 접근했지만 어떤 감정을 갖고 있었고 그 감정들이 그 사건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어요. 그런 부분을 연기할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껴 출연하게 됐어요.”

‘사도’에서 유아인이 그리는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송강호)가 기대하는 학문에는 관심이 도통 없고 예술적인 감수성이 풍부했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인물이다. 이준익 감독은 기존에 알려졌던 정치적인 이유보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에 초점을 맞춰 비극적인 사건의 이유를 추적해간다. 이에 맞춰 유아인도 사도를 ‘광인’이 아닌 아버지와의 갈등에 마음이 너무 아팠던 아들로 묘사한다.

사진=김봉진 인턴기자 multimedia@hankooki.com
“영화 속에서 한 사람만 죽이는 것으로 나오지만 사도가 100명 넘게 궁궐 사람들을 죽인 것 알아요. 사도의 관점에서 그 감정을 따르다보니 미화했다고 볼 순 있어요. 그러나 우리 영화는 무조건 영조는 가해자, 사도는 피해자로 이분법적으로 그리지 않아요. 왕이 아닌 인간을 보여줬다고 생각하고 정답을 구하려 하지 않았어요. 관객들이 보면서 저런 심정이었겠구나 하는 가닥을 잡을 수 있게 하자는 게 목표가 아니었나 생각해요.”

‘사도’에서 유아인의 연기가 더욱 돋보인 건 아버지인 영조 역을 연기한 송강호 덕분이다. 유아인이 극중에서 주로 발산하는 연기를 펼친다면 송강호는 꾹꾹 누르면서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완벽한 연기 호흡을 선보인다. 두 사람의 연기대결은 러닝타임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유아인은 대선배 송강호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정말 본받고 싶은 분이셨어요. 제가 나무 한 그루를 보고 연기를 한다면 그 분은 넓게 숲을 바라보고 연기를 하셨어요. 사실 전 작품 전체를 바라보기보다 제 캐릭터에 대한 욕심만 컸어요. 지금도 매순간 욕심이 과하죠. 그러나 송강호 선배님은 모든 걸 내려놓고 관조적인 시점에서 캐릭터의 강약을 안배하시더라고요. 그게 진정한 배우의 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아인은 데뷔 이후 줄곧 비주류 반항아의 이미지를 쌓아왔다. 독특한 색깔이 있는 작품에서 반항적인 모습과 풍부한 예술적 감성으로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베테랑’이 1000만 관객 돌파하는 등 최고의 주가를 누리면서 ‘비주류’의 이미지가 사라져 가고 있다. 유아인은 “이제 주류 배우냐”는 질문을 던지자 폭소를 터뜨렸다.

“여전히 비주류죠.(웃음) 항상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주류 세상에 나온다고 다 주류가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활동하는 판이 메이저로 바뀐 것이지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는 것일 뿐이이에요. 이제까지 비주류 작품을 주로 해왔다고 하시는데 사실 그냥 그때 나에게 주어진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골랐을 뿐이에요. 항상 대중과 소통하길 원했어요. 신인 때 제가 원한다고 ‘베테랑’이나 ‘사도’를 할 수 있었던 건 아니잖아요?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을 따름이에요. ‘1000만 배우’라는 수식어 기분은 좋은데 무겁게 다가오기도 해요. 좀더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건 좋아요. 그러나 거기에 안주하거나 심취하고 싶지는 않아요. 항상 도전적인 마음을 유지해야죠.”

사진=김봉진 인턴기자 multimedia@hankooki.com
유아인은 현재 ‘사도’ 홍보 스케줄을 소화해내는 가운데서도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극본 김영현 박상연, 연출 신경수), 영화 ‘해피 페이스북’(감독 박현진, 제작 리양필름 JK필름) 촬영을 진행 중이다. 하루도 제대로 쉬는 날이 없을 정도로 살인적인 스케줄이다. “지금 행복하냐”는 질문을 던지자 현실적이면서도 그다운 철학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누가 막 행복하다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현재 기분이 나쁘다면 그냥 그건 오늘 기분일 뿐이에요. 아무리 오늘 기분이 나쁘다 하더라도 내 인생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묵묵히 인생이라는 길을 걷다보면 내일은 기분이 좋아지는 날이 오겠죠. 전 그런 마음으로 살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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