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 '베테랑'서 행동파 형사 서도철 역 열연
류승완 감독은 예술적 동지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
관객들이 러닝타임 동안 힘든 현실 잊었으면

사진=장동규기자 jk31@hankooki.com
[스포츠한국 최재욱기자] 사람 좋은 미소 속에서도 묵직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영화 ‘베테랑’(감독 류승완, 제작 외유내강)의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황정민은 가만히 앉아있어도 주위를 압도할 만한 강한 기운의 소유자였다.

시종일관 소탈한 인간미를 내뿜으면서도 순간순간 비쳐지는 강렬한 눈빛에서 자신의 일에 있어서 어느 경지를 넘어선 사람의 뚜렷한 주관과 자부심이 흘러나왔다. 이제 사십대 중반을 넘었지만 여전히 청년의 혈기가 물씬 느껴지는 그는 ‘열정’ 그 자체였다.

황정민과 류승완 감독이 2010년 ‘부당거래’ 이후 5년 만에 만난 ‘베테랑’은 안하무인 유아독존 재벌 3세를 쫓는 베테랑 광역수사대의 활약을 그린 범죄오락액션물이다. 황정민은 상대가 누구든지 신념과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성역 없는 수사를 하는 광역수사대 행동파 형사 서도철 역을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열연을 펼쳤다. 황정민은 인터뷰 초반부터 영화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시나리오가 재미있었는데 더 재미있게 나왔어요. 촬영 때 정말 신나게 재미있게 촬영했던 기운이 영화에 고스란히 묻어나오니까 더욱 기분이 좋아요. 요즘 뉴스를 보면 기분 안 좋은 뉴스들만 넘치는데 관객들이 극장에 와서 팝콘 먹으면서 이 영화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으시면 좋겠어요.”

황정민과 류승완 감독은 ‘부당거래’ 이후 감독과 배우 사이를 넘어서 인간적으로 서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절친 사이’가 됐다. 영화를 보다 보면 두 사람간의 소위 말하는 ‘케미스트리(화학작용)’가 느껴진다. ‘베테랑’의 태동은 4년 전 류승완 감독이 ‘베를린’을 한창 촬영하던 당시로 넘어간다.

“성격이 정말 잘 맞아요. 그래서 아주 친해졌죠. ‘베를린’ 촬영장에 놀러 갔는데 류감독이 정말 많이 힘들어하더라고요. 얼굴이 넘 안 좋아 보여서 다음 작품은 스트레스 받지 말고 우리끼리 재미있게 찍을 수 있는 것 하자고 말했어요. 우리가 잘하는 ‘우당탕’하는 영화 말이죠. 그리고 나서 1년후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이야기가 술술 넘어가더라고요. 항상 시나리오를 읽을 때 관객들이 읽기 두려워하고 덮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봐요. 그러나 이 작품은 선물받으면 곧장 읽을 것만 같았어요.”

황정민을 염두에 두고 기획한 덕분에 서도철 형사는 그에게 맞춤옷 같은 캐릭터다. 우직하면서 똘끼 있고 열정적인 모습은 올곧은 정신으로 배우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황정민의 실제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이런 비유에 황정민은 “다르다”며 손사래를 쳤다.

“전 소위 말하는 ‘가오’(허세) 같은 것 없어요.(웃음) 비슷한 점이라면 ‘강한 신념’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할까요? 서형사는 영화 속에서 늘 ‘죄 짓고 살지 말자’고 말하죠. 배우로서 저의 신념은 ‘거짓말 하지 말고 연기하자’. ‘돈값을 하자’예요. 관객들이 힘들게 번 돈 8,000원씩을 내고 극장에 들어왔는데 그만큼의 즐거움이나 감동은 반드시 드려야 한다는 게 제 지론이에요. 많은 사람들의 일생의 캐릭터라며 속편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더라고요. 저야 정말 그렇게 되면 좋죠. 배우로서 시리즈물을 갖는 건 로망이에요. 그건 제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고 관객들이 만들어 주셔야죠. 영화가 잘돼 꼭 속편을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황정민은 영화 속에서 지독한 악역인 안하무인 재벌 3세 조태오를 연기한 유아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사실 조태오 역할은 수많은 젊은 배우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고사한 캐릭터. 유아인으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단다.

“소위 말하는 이미지를 따지면 선뜻 출연하기 힘든 역할이죠. 처음에 아인이가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진짜 한 대요’라고 되물었어요. 정말 고마웠어요.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고 아인이는 촬영할 때 정말 한 순간도 허투루 연기를 하지 않더라고요. 관객들이 영화에 훅 빠져들고 제가 연기한 서도철 형사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건 아인이가 연기를 정말 잘했기 때문이에요. 이런 에너지를 갖고 있는 좋은 후배와 만나 함께 연기할 수 있어 정말 행복했어요.”

황정민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톱스타’이지만 카메라 밖에선 평범한 아버지이자 남편이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베테랑’을 통해 계층 간의 갈등과 반목이 증대되는 우리 사회의 씁쓸한 현실을 간접 체험하면서 안타까움을 더욱 느꼈다.

“아이 아빠로서 뉴스를 보면 항상 욕만 하게 돼요. 날씨 예보를 봐도 항상 안 맞으니까 욕하게 되죠. 모두가 화가 안 풀린 상태로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러나 어쩌겠어요. 이 나라를 떠나지 않는 한 그런 현실을 수긍하고 살아가야죠. 감독님과 이야기했지만 이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아요. 두 시간 조금 더 되는 시간이지만 잠시라도 속이 시원해지는 시간을 마련해 준다면 좋겠다는 게 영화를 만든 우리들의 희망이에요.”

황정민은 잠시도 쉬지 않고 있는 ‘에너자이저’다. ‘베테랑’을 촬영한 후 영화 ‘히말라야’ 촬영을 마쳤고 현재 ‘검사외전’을 촬영 중이다. 또한 곧 ‘아수라’ 촬영에 들어가고 올 겨울에는 뮤지컬 연출에도 재도전한다. 또한 현재 소속사인 샘컴퍼니를 연극배우인 아내 김미혜씨와 함께 운영 중이다. 가정에서는 어떤 아버지이자 남편일까?

“저는 경영 같은 것 잘 몰라요. 집사람 없으면 은행에도 잘 못 가는 바보예요. 회사는 그냥 후배들에게 조언해주는 정도이지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어요. 아내가 운영하고 있지요. 아들에게는 그냥 친한 친구 같은 아버지예요. 나와 둘이 있을 때 아내가 전혀 먹지 못하게 하는 라면이나 인스턴트 식품을 먹을 수 있어 좋아하죠. 예전엔 아들이 뭘 했으면 좋겠다는 꿈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냥 지가 하고 싶은 일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배우가 되고 싶다면 말릴 생각은 없어요. 그 대신 내 이름을 팔면 안되죠. 그랬다간 맞아야겠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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