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 '암살'서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 역 열연
최동훈 감독과의 호흡은 말그대로 찰떡궁합
연기는 배고픈 것도 아픈 것도 잊게 만드는 활력소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최재욱기자] 정말 모든 걸 갖고 있는 사람의 여유가 느껴졌다. 올해 한국 영화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한 영화 '암살'(감독 최동훈, 제작 케이퍼필름)의 개봉 직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전지현의 얼굴에는 '행복'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여배우로서 일생에 한번 만나 볼까 말까 한 여주인공 중심 영화에서 최고의 연기를 펼쳐 호평을 받고 있는 데다 개인적으로는 결혼 3년 만에 아이를 갖는 경사를 맞아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배우로서나 여자로서나 인생 최고의 순간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전지현이 최동훈 감독과 '도둑들'에 이어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춘 '암살'은 1933년 상하이와 경성을 배경으로 암살작전을 위해 모인 독립군들과 임시정부대원, 그리고 청부살인업자까지, 조국도 이름도 용서도 없는 이들의 서로 다른 선택과 운명을 그린 작품. 전지현은 암살 작전에 투입되는 신념의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전지현은 인터뷰 내내 최동훈 감독에 대한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시나리오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다음 작품은 최감독님과 하기로 마음먹고 있었어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뒤늦게 받아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시나리오가 예상보다 더 재미있는 데다 제가 연기할 안옥윤은 여배우로서 일생에 한번 만나보기 힘든 매력적인 캐릭터였어요. 정말 잘해야 하는데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들면서 설렘도 동시에 느껴졌어요. 감독님과의 호흡은 정말 최고였어요. 촬영 중 제가 제 연기가 만족스러웠을 때나 불만족스러웠을 때 서로 의견이 똑같았어요. 약간 애매해 고민하면 포인트를 정말 잘 집어주시더라고요. 그럴 때 배우로서 희열을 느꼈어요."

'암살'에서 전지현이 연기한 안옥윤은 우직한 여전사의 카리스마부터 순수한 소녀의 발랄함, '독립'이란 대의가 우선인 강한 신념 등 다양한 감정선을 오가야 하는 복합적인 캐릭터. 전지현은 영화 속에서 화려한 액션부터 심도 깊은 내면 연기, 하와이 피스톨(하정우)과의 사랑스러운 로맨스까지 '종합선물세트'처럼 다양한 매력을 뿜어내며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안옥윤은 생각하면 할수록 감정선이 복잡한 인물이에요. 처음에는 인간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표현해내는 게 막막했죠. 감독님과 이야기하면서 그가 처했던 시대를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 인물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이기 때문이죠. 그 시대 자료 화면을 보고 시대적으로 일어났던 일들을 돌아보면서 인물을 구축해 나갔어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안옥윤의 행동이 이해가 가더라고요. 영화를 촬영하면서 나도 모르게 애국심이 마구 일어나더라고요. 암살 직전 모임에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사진을 찍을 때 정말 가슴이 짠하고 뭉클했어요."

전지현은 '암살'에서 리얼한 액션 연기의 진수를 선보인다. 전작 '도둑들'에서 연기한 예니콜이 와이어를 타고 움직이는 볼거리 위주의 화려한 액션을 선보였다면 '암살'에서 안옥윤은 당시 독립군이 직접 사용했던 5kg 무게의 '모신나강'을 들고 뛰어다니며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특히 웨딩드레스를 입고 저격에 들어가는 하이라이트 부분은 이 영화의 백미다. 그는 '모신나강' 이야기를 꺼내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많은 분들이 무게가 가벼운 가짜 총으로 생각하는데 실제 총이었어요. 정말 무거웠어요. 내 몸에 장착된 것처럼 들고 뛰고 조준하는 게 정말 쉽지 않았어요. 웨딩드레스 입고 저격하는 장면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여성성이 극대화된 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고 총을 다루는 건 여배우로서 한번 연기해보기 쉽지 않은 기회였죠. 아무리 힘들어도 정말 잘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웨딩드레스가 워낙 움직이기 쉽지 않은 의상이라 연기하기 쉽지 않았어요. 예쁘면서도 멋있어 보이고 싶었어요."

영화 속에서 전지현과 하정우는 할리우드 1930~40년대 로맨스 영화처럼 처음에는 말 그대로 '으르렁'대다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된다. 이미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에서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암살'에서도 완벽한 연기호흡을 선보인다. 함께한 전작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완벽히 다른 인물이 돼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전지현은 하정우에 대한 깊은 신뢰감을 드러냈다. 많은 사람들이 '썰렁하다'며 일축하는 하정우식 유머도 "정말 재미있다"고 말할 정도로 애정이 넘쳤다.

"썰렁하다고요? 오빠가 얼마나 웃기고 재미있는데요. 작정을 하고 온 날이면 정말 더 웃겨요. '베를린'에서는 서로 붙는 장면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함께하는 장면이 적다 보니 만날 기회가 많지는 않았어요. 그때마다 촬영장에 언제 오나 기다려질 정도로 촬영장의 활력소이셨어요. 사실 촬영 전에는 '베를린'의 표종록과 연정희가 연상되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다행히 전작을 기억을 못하는 분들이 계시니 성공한 것 같아요.(웃음)"

사진=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이미 보도됐듯이 전지현은 현재 임신 10주차. '암살' 이후 출산과 육아에 전념해야 하기에 당분간은 새 작품을 만나보기 힘들 듯하다. '암살'에서 연기가 물이 제대로 올라있는 모습을 보여줬기에 팬들은 다소 아쉬울 수 있다. 항간에서는 '암살'이 마지막 작품이 될 거라는 '은퇴설'도 돌았다. 그러나 이는 전지현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는 현재 연기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카메라 앞에 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천생 배우'였다.

"연기가 정말 재미있어요. 앞으로 더 잘할 수 있을 같아요. 저는 뭔가 집중할 때 행복해요. 연기를 하고 있으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다쳤어도 아픈지 모르겠어요. 뭐가 됐든 촬영장에 있으면 즐거워요. 안옥윤은 여배우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캐릭터였어요. 그러나 거기에 연연하지 않아요. 언제부터 제가 여배우 중심 영화를 했다고요.(웃음) 상황에 맞춰 가야죠. 그렇다고 스타성을 놓고 배우로만 살고 싶지는 않아요. 한때는 스타보다 배우로만 인정받고 싶었죠. 그러나 이젠 생각이 달라졌어요. 스타성 없는 배우로만 사는 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저는 계속 스타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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