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시라] ‘착않여’서 철부지 엄마 김현숙 역으로 열연
“생각지도 못한 액션, 즐거웠죠”
“애들이랑 지지고 볶고 생활해야죠”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김현숙 역으로 열연한 채시라가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장동규 인턴기자 multimedia@hankooki.com)
[스포츠한국 조현주기자] 여배우만의 도도함보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매력이 돋보였다. 수더분하게 웃고, 인터뷰 끝자락에 아쉬운 듯 소녀 같은 미소를 짓는 배우 채시라(47)는 인간적인 매력이 돋보였다. 여기에 배우로서 늘 새로운 도전을 지향한다는 그의 말에서 데뷔 30년차 배우의 열정까지 느낄 수 있었다.

최근 종영한 KBS 2TV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하 착않여·극본 김인영·연출 유현기)은 그런 채시라의 도전이 돋보였던 작품이었다. 극 중 그는 장성한 딸을 둔 40대 엄마지만 여전히 사고뭉치인 김현숙 역을 열연했다. 억울한 누명으로 고교에서 퇴학당한 뒤 과외교사와 눈이 맞고, 중졸이라는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굴곡진 인생의 캐릭터였다.

“1회부터 4회까지 대본을 쉬지 않고 읽었는데, 너무 웃기고 슬픈 거예요. 원래 ‘미치겠다’는 말을 잘 안 쓰는데 그 말이 막 튀어나오더라고요. 그 정도로 작품이 매력 있었죠. 김현숙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팔딱팔딱 살아 움직이더라고요. 대본을 읽으면서 어떻게 연기를 해야겠다는 그림이 그려졌어요.”

제대로 망가졌다. 뽀글뽀글 거리는 머리에 민낯에 가까운 얼굴로 카메라와 마주했다. 그러나 처음 설정은 완전히 달랐단다. “김현숙은 패션과 메이크업에 관심이 많다고 돼 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상태에서 허영심 때문에 자신에게 쏟아 붓는 여자였지만 현실감을 위해 초반 설정을 완전히 바꿨다. 그는 “생활감 있게 뽀글거리는 머리를 했다. 그런데 그게 아줌마 파마가 아니었다. 아가씨들도 많이 하는 세련된 파마였는데 다들 아줌마 파마라고 하더라”라며 아쉬워했다.

1984년 16세에 가나초콜릿 CF로 데뷔해 뭇 남성들의 이상형으로 등극한 그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여명의 눈동자’ ‘서울의 달’ ‘왕과 비’ ‘해신’ ‘천추태후’ ‘인수대비’ 등 현대극과 사극을 넘나들며 진취적이고 강인한 모습부터 소시민적인 모습 등 다채로운 필모그래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왔다. ‘착않여’를 통해서는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추가했다. 1회부터 진가가 드러났다. 불법 도박장에서 타짜 뺨치는 실력을 보여주다가 경찰에 쫓기게 되자 2층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쓰레기더미에 숨는 등 고난을 겪었다. 마스카라와 립스틱이 다 번진 모습으로 동네 불량배에게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며 투혼을 발휘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액션이 많더라고요. (웃음)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슬리퍼 신고 이리저리 도망 다녔죠. 사실 현대물에서 액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너무 재미있었죠. 제가 너무 잘 뛰니까 다들 놀라더라고요. 다리 난간에서 뛰어내릴 때는 ‘나이 생각하셔야죠?’ 이러더라고요. ‘역시 악의 천추태후다’라는 소리까지 들었어요. 얼마나 웃었던지.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잊고 있다가 촬영을 하면서 새록새록 떠올리며 행복하게 찍었어요.”

이날 인터뷰 역시 9시간 가까이 지속된 강행군이었지만 채시라는 전혀 지쳐 보이지 않았다. “틈틈이 샌드위치를 먹었다”며 환하게 웃어 보인 그는 자신의 체력 비결로 ‘삼시세끼’를 꼽았다.

“워낙 잘 챙겨먹어요. 사실 먹는 게 힘이라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끼니는 굶지 않고 다녔어요. 늘 삼시세끼를 챙겨먹는 생활 습관을 지녔고 그것이 힘을 내는 에너지예요. 제가 장모란 여사(장미희) 앞에서 다리를 일자로 찢는 장면이 있었는데 감독님이 ‘연식도 있는데’라고 해서 ‘사람한테도 연식이라는 말을 써요?’라고 했죠. (웃음) 제 체력에 다들 너무 놀라워했어요. ‘내가 비정상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체력만큼은 자신 있죠.”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고뭉치 캐릭터였지만 김현숙은 쉽지 않은 캐릭터였다. 어렸을 때 자신을 퇴학시킨 나말년 선생(서이숙)에 대한 분노가 커졌고, 자신을 믿지 못하고 늘 자신감 없이 주눅 들었다. 그러나 누군가 자신을 무시한다 싶으면 불같이 화를 냈다.

“김현숙은 감정신이 많았어요. 마음이 되게 힘들었어요. 하나하나 산을 넘는 듯한 느낌으로 신을 끝냈죠. 어떤 드라마를 하던 감정신은 힘들지만 김현숙은 더 많이 힘들었어요. 마음에 고통이 늘 따랐어요. 그러나 그건 제가 해내야 하는 것이고 그걸 해냈을 때 카타르시스가 컸어요. 혼자만의 싸움이었죠.”

고등학교 퇴학으로 학력 콤플렉스가 있던 김현숙은 딸 정마리(이하나)만큼은 교수로 잘 키웠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갔다. 그러나 마리가 수업을 못하게 되자 학교에 찾아가 무릎을 꿇는 것은 물론, “너는 나처럼 살면 안 된다”며 다소 강박증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 중학생 딸과 초등학교 아들을 두고 있는 엄마 채시라는 어떨까? 그는 “다른건 몰라도 기본 생활 습관만큼은 제대로 잡아주고 싶다”고 철학을 밝혔다.

“편식은 절대 안 돼요. ‘네 앞에 있는 건 다 먹어야 돼’라고 가르쳤죠. 밥풀 한 알도 못 남기게 했어요. 첫째는 안 그러는데 둘째가 밥풀을 남겨놓은 밥그릇을 슬쩍 싱크대에 갖다 놓아서 싹 긁어서 입에 넣어준 적이 있어요. 기본 생활 습관을 잘 잡아주고 싶어요. 잔소리를 많이 듣는 아이는 그 당시에는 싫어도 그게 귀에 남아서 나중에는 습관으로 자리 잡을 거란 생각으로 그러고요 있어요. 늘 고민이 많아요.”

오랜만의 드라마를 끝낸 그는 다시 가정으로 돌아간다.

“집이 너무 엉망이어서 정리를 해야 될 것 같아요. 제가 없으니까 집에 구멍 난 것들이 많아요. 그걸 해결하고 당분간은 애들하고 지지고 볶으면서 생활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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