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프랑스)=스포츠한국 이정현기자]역시 칸의 여왕은 다르다. 지난 2007년 영화 ‘밀양’으로 한국배우로서는 최초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그는 올해 영화 ‘무뢰한’(감독 오승욱ㆍ제작 사나이픽처스)으로 다시 레드카펫을 밟았다. 멀리 한국에서 온 여왕을 모시기 위해 칸 국제영화제뿐만 아니라 내외신 기자들이 모두 나섰다. 전도연이 있는 곳은 언제나 카메라 세례로 번쩍였다.
제68회 칸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칸에 설치된 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서 전도연을 만났다. ‘밀양’과 ‘하녀’ 그리고 칸 심사위원을 거쳐 신작 ‘무뢰한’이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며 현지를 찾은 그는 “이번에도 칸 국제영화제를 찾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소감을 남겼다.
“지난해 칸 심사위원을 역임한 이후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전 세계 '난다 긴다'는 작품들을 모두 본지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나 칸에 오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번이 네 번째 방문이라 익숙하지 않으냐라 물으시는데 그렇지 않아요. 저 역시 칸은 영광스러운 곳이죠.”
범죄자의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무뢰한’에서 전도연은 한물간 술집 여자 김혜경으로 분했다. 살인을 저지른 애인(박성웅)을 검거하기 위해 접근한 형사 정재곤(김남길)과 미묘한 감정을 나누는 사이다. “요즘 여배우가 출연할 작품이 많지 않은데 이번 ‘무뢰한’은 색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는 전도연은 무엇보다 시나리오의 촘촘함이 선택의 이유라 밝혔다.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후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어요. 처음엔 부담스러웠는데 이제는 좋은 자극이 되는 듯해요. 별명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작품 활동을 벌이죠. 계속 연기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듯해요. ‘밀양’ 때 선보인 연기가 저의 최고는 아니에요. 상을 받았기 때문에 정점으로 보일 수 있으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죠. 좋은 연기를 꾸준히 보여드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최고를 향한 집착은 오히려 저를 잡아먹는 괴물이 될지도 모르거든요.”
현장이 익숙할 법한데 전도연은 “흔한 단골집 하나 없다”며 웃었다. 지난해 심사위원으로 참석했을 당시 하루종일 컵라면만 먹었던 기억에 “이번에는 칸을 즐겨보고 싶다”는 바람도 남겼다.
“올해는 ‘칸 신생아’인 김남길과 함께 왔어요. 연기하기 전에는 ‘상남자’ 이미지가 강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다정다감한 남동생 같다고 느꼈죠. 역할이 무거운지라 걱정했는데 연기를 보니 걱정이 눈 녹 듯 사라지더라고요. 이번이 칸 초행길이라기에 혹시나 싶어 팁을 몇 가지 줬는데 어떤지 잘 모르겠어요. 무엇보다 15년 만에 새 작품을 내놓은 오승욱 감독에게 가장 열렬한 축하를 보냈어요. 그동안 쌓인 무거운 마음을 좀 털 수 있으셨을 거예요.”
동석한 김남길은 전도연을 향해 ‘마성의 여자’라 표현했다. 어떤 연기를 펼쳐도 따라가기 힘들 만큼 놀라운 모습을 매 작품 보여주는 것이 신기하단다. “영화를 보고 나니 내가 참 모자란 배우 같더라”는 김남길의 말에 전도연은 “왜 그러냐”고 웃으며 어깨를 툭툭 쳤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더 치열해지는 듯해요. 앞으로 어떤 모습을 연기할지는 모르나 이번 ‘무뢰한’으로 다시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겠죠. 칸은 언제나 좋은 자극제가 되는 듯해요. 이곳의 해변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어떤 배우인가’라고 스스로 질문하는데 답을 내리긴 힘드네요. 이번에는 정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칸 현지 일정은 빡빡했다. 그가 있는 곳은 어디나 인산인해였고 알아보는 이들로 가득했다.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괜히 붙는 게 아니라는 게 현장에서 확인됐다. 그의 귀국을 가장 아쉬워했던 것은 아마 칸이었을 것이다.
“연기하는 것은 언제나 고통스러워요. 하지만 칸에 다시 올 수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아요. ‘또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죠. 사실 작년에 심사위원을 한 뒤에는 다시 오지 못할 것만 같았는데 ‘무뢰한’으로 칸 해변을 걸을 수 있게 돼 좋아요. 이제는 즐기고 싶네요. 아름다운 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