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가 20일 오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 CGV에서 열린 영화 '차이나타운'(감독 한준희)의 언론시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영화 '차이나타운'는 오직 쓸모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차이나타운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온 두 여자의 생존법칙을 그린 영화다. 영화 '차이나타운'은 김혜수 김고은 고경표 박보검 엄태구가 출연하며 오는 29일 개봉 예정. 최신혜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어디서 흘러들어왔는지 모르지만 뒷골목을 지배하고 있는 뱃살 두둑한 차이나타운의 대모, 버려진 아이들을 거둬 입에 올리기도 어려운 끔찍한 범행을 시키는 엄마.

영화 '차이나타운'의 대본을 쓰고 연출한 한준희 감독은 이런 '엄마'라는 인물을 만들어내면서 이 역에 김혜수가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22일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혜수는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이 인물을 실제로 연기해 낼 수 있을지 출연을 결정하고 나서도 고민이 컸다고 했다.

"감독의 얘기가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아요. 하지만 다른 사람이 아는 나와 내가 아는 나는 다르거든요. 감독이 '이 영화에 인생을 걸었다'면서 나를 믿고 기다렸는데, 내가 소임을 못하면 누가 되는 거잖아요. 부담이 커서 한다고 해놓고도 '정말 되는 거야? 이제라도 미안합니다, 할까?' 했어요. 죽겠더라고요."

그렇게 촬영장에 발을 디디자 상황이 달라졌다.

새로운 도전이라는 기대감에 대본을 읽으면서는 웃음이 났다. 뱃살을 넣고 머리를 빗자루처럼 뻣뻣하게 만들고 얼굴에 기미와 주근깨를 그려넣는 동안에는 묘한 흥분감이 느껴졌다. 어두운 촬영장의 매캐한 냄새까지 좋았다. 알지 못할 힘이 '훅' 솟아올랐다.

"첫 촬영이 사진관 앞에서 일영(김고은)에게 엄마 제사에 따라오라고 하는 장면이었어요. 밤에 조명 하나에 의지해서 간단한 촬영을 하는데 사람들이 '김혜수가 영화 찍는다는데 어디에 있어?' 하더라고요. 바로 옆에 있는데. 나를 못 알아보는 게 정말 좋았어요."

김혜수는 인터뷰 내내 촬영하는 게 "좋았다"고 여러 번 되풀이해 말했다.

선택을 하는 동시에 선택을 받아야 하는 직업인 배우로서는 만나기 어려운 역이 찾아왔고 뚝심 있는 감독을 만나 역량을 펼쳐보일 기회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와 인물에 겉멋 부린 느낌이 없는 게 좋았어요. 첫 장편 연출인데도 감독이 현장에서 당황하지 않고 판단이 빠르고 명료한 것도 좋았어요. 겁을 냈다가, 시나리오 보고 '헬렐레'했다가, '훅' 힘이 솟았다가… 지금은 하기를 잘한 것 같아요. 이런 걸 다시 할 수 있을까, 싶어요."

그도 그럴 것이 '차이나타운'에서의 엄마라는 인물로의 변신은 배우에게 흔히 쓰는 피상적인 의미로서의 '변신을 위한 변신'이 아니다.

김혜수는 조직의 보스 역을 맡았으면서도 흔한 욕설이나 액션을 선보이지는 않는다. 많은 대사나 큰 몸짓 없이, 잔인하고 비정한 인물을 온전히 살아내듯이 표현한다. 한국 여배우로서는 드문 기회였던 셈이다.

"머리카락 잘랐다고, 사극에서 한복 입었다고, 파격 노출을 했다고 그게 변신인 건 아니거든요. 엄마가 비정한 차이나타운이란 공간을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센 척하는 게 아니라 그게 유일한 생활이고 생존인 곳, 차이나타운에 가서 우연히 만난 여자한테 '아줌마, 여기 길이 어디에요?' 묻는데 그 아줌마가 돌아봤을 때 정말 앞에 있는 사람에게서 섬뜩한 느낌을 받듯이… 성별, 나이가 관계없는 그런 인물로 연기하고 싶었어요."

16살에 데뷔한 그는 인생의 절반을 훨씬 넘도록 배우로 살았다. 청순함의 대명사에서 건강한 여성미의 대명사로 옮겨 갔고, 이제는 충무로의 대표 여배우의 위치에 서 있다.

그는 대중이 기대하는 만큼 늘 채우지 못한 채로 현재에 이르렀다는 겸손한 말을 진심을 담아 소탈하게 했다.

"제가 전략적이지는 못한 것 같아요. 이면이 많아야 배우로서 매력이 있겠지만, 전 액면 그대로예요. 오히려 겉으로 보이는 것에 비해 부족함도 많고요. 제 이름이 항상 실체보다 앞섰는데, 그게 불편하기도 했지만… 남들이 기대하는 만큼을 빨리 채우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나아지면서 따라가고 있지 않나, 그래서 아직은 버리지 않아도 되지 않나, 생각해주시는 것 같아요."

40대 미혼 여성으로서 결혼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이에 김혜수는 "부담도, 환상도 없다"고 했다.

"결혼을 순진하게 꿈꿨던 건 대학 시절이었어요. 아이는 셋 정도 낳아야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언제부터인가 결혼을 꿈꾸느냐고 사람들이 잘 묻지도 않더라고요. (웃음) 이제 부담도, 환상도 없어요. 결혼은 개인에게 특별한 선택이고 내가 정말 하고 싶으면 할 일. 그 정도로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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