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미코, 보물 찾는 여인’(Kumiko, The Treasure Hunter) ★★★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무시한 이 다크 코미디는 영화를 현실로 믿는 일본의 한 노처녀 회사원의 돈 보따리 찾아 가는 이역만리 오디세이로 분위기가 초현실적이다. 순전히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이야기로 약간 공포영화와 일본 귀신영화 분위기마저 지녔다.

‘바벨’로 오스카 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일본 배우 린코 키쿠치가 거의 대사 없이 눈으로 연기하는 큰 수고를 하는데 눈 덮인 겨울 미네소타주의 설원을 찍은 촬영과 신경을 건드리는 전자음악도 좋다.

코엔 형제 감독의 코미디 스릴러 ‘파고’(Fargo)의 내용이 중요한 플롯을 구성하는데 데이빗 젤너 감독의 솜씨에서 ‘파고’ 냄새가 물씬 난다. 데이빗과 그의 형제인 네이산이 공동으로 각본을 썼는데 매우 기이하고 독특한 영화다. 그리고 진행 속도가 무지무지하게 느리다.

29세난 도쿄의 과묵한 회사원 쿠미코는 친구도 애인도 없이 토끼 한 마리를 데리고 고독하게 산다. 시골 사는 어머니는 전화로 시집 안 간다고 보채고 회사의 사장(노부유키 카추베)은 쿠미코를 식모 다루듯 하고 동료 사원들은 쿠미코를 왕따 놓는다.

쿠미코의 유일한 낙은 VHS로 ‘파고’를 보는 것. 그리고 쿠미코는 영화에서 스티브 부세미가 눈밭 속에 거액의 현찰이 든 가방을 숨기는 것을 보고 이것을 현실로 알고 언젠가 그 가방을 찾아가리라고 다짐한다. 영화는 쿠미코가 정신적으로 불안하고 이상한 여자인지에 대해 언급이 없다.

그리고 쿠미코는 사장이 자기 결혼기념일을 위한 선물을 사오라고 준 크레디트 카드를 이용해 미니애폴리스행 비행기표를 산다. 쿠미코는 눈 오고 추운 미네소타에 도착, 파고행 버스를 탄다. 그리고 파고로 가는 길에 모두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친절한 미네소타 주민들을 몇 만나는데 그 중에서 아주 아름다운 만남이 언어소통이 불편하고 돈도 떨어진 쿠미코를 불쌍히 여겨 정성껏 돌봐 주는 셰리프(데이빗 젤너).

쿠미코는 셰리프의 ‘파고’는 영화라는 말에 화를 내고 그를 떠나 혼자 걸어서 파고를 찾아 간다. 모텔의 이불을 찢어 코트처럼 걸치고 눈보라 속을 걷는 쿠미코의 모습이 마치 고난의 길을 가는 순례자 같다. 그리고 쿠미코는 마침내 현장에 도착한다. 꿈과도 같은 결말이다. 고독한 사람에겐 영화가 현실 도피의 수단이자 진짜로 현실도 될 수가 있다는 얘기로 어찌 보면 쿠미코는 기자처럼 영화에 미친 사람이라고 하겠다. 박흥진 미주 한국일보 편집위원 겸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 회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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