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진 '평화의 수호자들'에 의한 소니 영화사의 컴퓨터에 대한 해킹의 후유증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수천명 소니 직원들의 개인신상정보와 임원진의 연봉 그리고 수퍼스타들의 여행 때 암호명 등이 공개됐고 19일 개봉되는 '애니' 등 총 5편의 영화가 유출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당혹스런 일은 영화사 공동 사장 에이미 패스칼의 이메일 내용이 폭로된 것이다. 그 내용이 공개되면서 영화사와 제작자 및 배우들과의 관계를 비롯해 영화사의 내막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코미디언 애담 샌들러의 작은 불독을 소니사의 전용기에 태울 것이냐는 하찮은 것부터 특정 배우 흉보기, 패스칼이 자기는 할리우드 리포터가 연말에 발표하는 연례 '100명의 연예계 여성 실권자' 명단에 3위 안에만 들면 만족하겠다(유감스럽게도 4위에 올랐다)는 소망을 비롯한 가십거리들이 연일 폭로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큰 화제와 논란거리가 된 것이 패스칼의 오바마에 대한 인종편견적인 농담. 패스칼은 제작자 스콧 루딘과의 서신교환에서 오바마에게 '버틀러'와 '쟁고 언체인드' 같은 흑인영화들을 더 좋아하느냐고 물어볼 것인가 라고 물었다. 이 내용이 공개되자 패스칼과 루딘은 공개사과를 했다.

'평화의 수호자들'은 처음부터 소니작품으로 크리스마스에 개봉될 예정이었던 김정은 암살을 그린 '더 인터뷰' 개봉 중지를 줄기차게 요구했으나 소니측은 개봉을 강행하기로 했었다. 그러자 '평화의 수호자들'은 16일 다시 성명을 내고 이번에는 '더 인터뷰' 관람객들에 대해 보복을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에 일부 극장체인이 영화 상영을 취소한데 이어 다른 스튜디오들의 압력에 못 견뎌 소니는 두 손을 들고 전격적으로 영화 개봉을 취소했다. 할리우드는 지금 소니측의 이런 결정을 두고 이 것이 과연 앞으로 어떤 전례로 남게 될지 갑론을박을 하고 있다.

세스 로갠이 감독(공동)하고 제임스 프랭코와 공연하는 이 영화는 김정은을 인터뷰하게 된 미 TV 토크쇼의 사회자(프랭코)와 제작자(로갠)에게 CIA가 김정은 암살지령을 내리면서 일어나는 야단스런 코미디다. 거칠고 상스럽고 음탕하고 어리석지만 우스운데 특히 김정은으로 나오는 한국계 코미디언 랜달 박의 김정은 흉내가 볼 만하다.

소니에 대한 해킹의 주원인이 '더 인터뷰'로 밝혀짐에 따라 영화제작에 파란 불을 켜준 패스칼의 판단력이 새삼 검증되고 있다. 현재 살아 있는 한 국가의 수반을 암살하는 내용의 영화를 만드는 것이 과연 현명한 결정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을 원수처럼 여기는 북한의 신성불가침적인 위대한 지도자 김정은을 암살하는 영화를 일본 회사인 소니와 그것의 미국 자회사인 컬럼비아가 만들었으니 그들이 지금 겪는 고통은 자업자득이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그런데 일본 소니 본사와 패스칼은 영화를 만들기 전에 이미 이같은 문제를 놓고 논의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과 김정은을 가공국가의 가공인물로 바꾸는 문제가 논의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미 국토안보부도 컬럼비아에 대해 이 영화로 인해 미국과 북한과의 긴장관계가 더 악화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보낸 바 있다.

'더 인터뷰'는 끝 부분 클라이맥스에서 헬기에 탄 김정은이 탱크포탄에 맞아 불길에 휩싸여 타죽는데 이 장면은 원래 장면을 덜 끔찍하게 손질한 것이다. 카주오 히라이 소니 회장이 일본과 북한 간의 긴장관계를 염려해 패스칼에게 가급적 영화에서 정치적 색채와 함께 김정은의 처참한 죽음도 완화해달라는 요구에 따른 것이다.

패스칼은 이같은 요구에 대해 "김정은의 얼굴과 머리털이 불길에 타 녹고 머리가 터지는 장면을 약하고 어둡게 손질했다"고 히라이 회장에게 답신을 보냈다. 히라이 회장은 현재 일본이 북한과 피랍 일본인 송환문제를 협상 중이라는 점과 긴장관계에 있는 두 나라의 지역적 근접성을 거론하면서 패스칼에게 영화 제작과 개봉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북한이 '더 인터뷰' 개봉을 놓고 미국에 대한 보복을 선언한 것에 대해 최근 주한 미대사를 지낸 성 김 미 북한문제 특별대표는 얼마 전 베이징에서 "북한은 그 영화에 집착하기보다 인권과 경제문제에 신경을 쓰기를 바란다"고 성명까지 냈다.

영화 하나를 놓고 미국과 일본이 들썩거리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영화의 막강한 위력을 느끼게 된다. 한편 소니가 이번 해킹으로 당한 컴퓨터 체계 복구비가 수천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다. 전미 미디어들이 소니의 집안사정을 시시콜콜히 보도하자 견디다 못한 소니 측은 최근 LA타임스를 비롯한 언론매체에 '도둑맞아 새어 나간 회사의 정보를 파괴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언론으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소니의 이번 불상사의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하는데 그 책임을 지고 목이 날아갈 사람은 패스칼과 그의 공동 사장인 마이클 린턴이라는 설이 지금 할리우드에 파다하게 나돌고 있다. 한편 '평화의 수호자들'은 '인터뷰'가 개봉되는 크리스마스에 소니에게 큰 선물을 보내겠다고 통보했다. 과연 소니가 영화 개봉을 취소했는데도 그 선물이 배달 될 것인지 그렇다면 선물 보따리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박흥진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겸 할리우드 외신기자 협회 회원 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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