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종영한 SBS 주말극 '끝없는 사랑'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서인애로 분한 배우 황정음. (사진=이규연 기자 fit@hankooki.com)
배우 황정음(29)은 거침이 없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의 연기를 그 누구보다 냉정하고 솔직하게 평가했다. 그룹 슈가 시절을 떠올릴 만큼 상큼한 외모를 뽐낸 그였지만, 배우로서의 10년 내공은 그 자리에 우뚝 솟아있는 바위처럼 단단하게 느껴졌다.

황정음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SBS 주말극 '끝없는 사랑'(극본 나연숙·연출 이현직)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산 서인애로 분해 37부작을 이끌어왔다. 서인애는 벼랑 끝에 선 인물이었다. 출생의 비밀을 안고 태어난 인애는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했고 억울한 누명으로 고된 옥살이를 경험했다. 고문과 폭행을 당했고, 성폭행으로 아이를 임신하기도 했다.

"우리 드라마는 어려웠어요. 소재도 무거웠죠. 출생의 비밀, 복수 등 풀어내야할 이야기도 많았어요.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제가 좀 자만한 것 같아서 반성도 됐죠. 그래도 제 자신에게 칭찬해주고 싶어요. 잘 이끌어오지 못했지만 그렇게 어려운 작품을 도전하고 애쓴 저한테 고생했다는 말은 꼭 해주고 싶네요."

마지막 회에 인애가 법무부장관이 되며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 과정이 매끄럽지는 않았다. 애초 40부작으로 편성된 드라마는 3회가 축소됐고 마지막 회에서는 23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었다. 모든 갈등은 단 1회만을 남겨놓고 황급하게 마무리됐다.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친절한 전개는 계속됐고, 시청률은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어떤 작품이든 문제가 없는 작품은 없어요. 아무래도 작품이 길다보니까 더 많은 문제들과 부딪혔죠. 40회를 37회로 풀어내야 했기에 작가님도 쉽지 않았을 거예요. 누구를 탓할 것도 없어요. 연기자는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해내야 하는 거니까요."

그는 MBC '골든타임'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이성민을 언급했다. '끝없는 사랑'을 찍으면서도 이성민 선배가 많이 떠올랐던 이유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해내는 그의 집념 때문이었다.

"작품이 끝나면 저는 매번 다른 사람이 돼요. '비밀'이 끝난 뒤 저는 굉장히 친절하고 베풀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죠. 칭찬을 많이 받으니 기분이 좋아지고 여유가 생겼어요. '끝없는 사랑'이 끝난 뒤에는 동네 아줌마가 됐어요. 남 탓하고 불평하고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비했죠. 이성민 선배가 생각났어요. '골든타임'이 의학드라마였는데 쪽대본으로 진행됐죠. 정말 힘들었어요. 눈알이 핑핑 돌 지경이었죠. 그런데 성민 선배는 어떻게든 해냈어요. 그것도 훌륭하게요. 대본이 어떻든 간에 해내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장애물은 별로 중요하지 않죠. 저는 아직도 멀었어요."

자신의 연기에 대해 야박한 평가를 내렸지만 시청자들은 어느새 그를 '믿고 보는 배우'라 칭송했다. 2002년 걸그룹 슈가로 데뷔한 황정음은 2005년 SBS '루루공주'로 배우 신고식을 치렀다. 연기력 논란을 달고 살았던 그였지만 2009년 MBC '지붕 뚫고 하이킥'을 기점으로 다른 평가를 얻었다. SBS '자이언트'(2010)에서는 고생 끝에 은막의 스타가 되는 이미주 역을 무난하게 소화했고, MBC '내 마음이 들리니'(2011)에서는 정신 연령이 7세인 아버지를 부양하는 착한 딸 봉우리로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전했다. 의학드라마인 '골든타임'(2012)과 특수 분장을 했던 SBS '돈의 화신'(2013) 등 매번 다른 장르와 캐릭터를 소화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지난해에는 KBS 2TV '비밀' 속 강유정 역을 통해 '눈물의 여왕' 자리에 등극하기도 했다.

"작품을 고를 때 내가 해보지 못한 것, 못하는 것을 선택해요. '끝없는 사랑'도 너무 어려워서 택했죠. '지붕뚫고 하이킥'을 찍고 난 뒤부터 끊임없이 달려왔어요. 편하게 누워서 텔레비전을 본 적이 없을 정도죠."

가수 출신 연기자라는 꼬리표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신경이 쓰였다"던 그지만 지금은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는단다. 그 꼬리표가 배우로서 그를 더욱 성장시켜줬다.

"가벼운 이미지 때문에 좋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더 노력했죠. '돈의 화신' 때 오윤아 언니랑 함께 연기 했는데 정말 열심히 했어요. 윤아 언니가 레이싱 모델로 데뷔했는데 연기를 한다고 했을 때 '네가 뭘 해?' 이런 시선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 말이 너무 싫어서 죽기 살기로 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가수 출신 연기자라는 타이틀은 배우로서 더 열심히 연기를 하게 만든 원천이었죠.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황정음의 20대는 어느 누구보다 치열했다. 그는 새해가 되면 꼭 다이어리에 하고 싶은 것을 적는다. 다음해 목표를 돌이켜보면 열 개 중 다섯 개 이상은 이루어져 있었다. 얼마 전 그는 부모님과 함께 전원 생활하는 목표를 달성했다.

"꿈과 목표가 언제나 무서워요. 사람을 계속 달리게 해요. 행동 없는 결과는 없어요. 그런데 요즘은 도전보다는 좀 즐기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너무 힘든 드라마를 끝내서 그런가 봐요. 집에 누워서 제가 여태껏 찍었던 드라마를 몰아서 볼 예정이에요. 그러면서 저를 한번 되돌아보려고요. 연기가 절실해질 때까지 기다리려고요. 차기작이요?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무조건 밝은 역할로 돌아와야죠!"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