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음악 등 손댄 장르마다 호평… 20년 전 음악, 지금 들어도 완성도 뛰어나
음악평론가 조성진 "그는 항상 새로운 음악을 시도했다… 시대 앞서간 뮤지션"

‘마왕’이라는 별명이 딱 어울릴 정도로 신해철의 음악적 자신감과 집착은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뮤지션 신해철은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 이듬해인 2004년 문화부장관 후보 물망에 올랐다. 그는 당시 한 인터뷰에서 "내가 장관 나부랭이나 하려고 음악을 해온 줄 아느냐"고 일갈했다. 그는 간통죄 폐지를 논하는 TV 토론(MBC '100분토론')에 후드 티, 장갑 차림으로 나와 음악인으로서의 자의식을 거침없이 표출하기도 했다. 장관을 '나부랭이'로 대하는 호연지기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전인미답의 경지를 개척한 음악적 자신감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는 대마초, 간통죄, 체벌 등 민감한 사회 현안에 대해 뚜렷한 자기주장을 가진 논객이었지만 본업은 역시 음악이었다. '마왕'이라는 별명이 딱 어울릴 정도로 그의 음악적 집착은 남다른 구석이 있다.

신해철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여러 장르에 누구보다도 먼저 자신의 이름을 돋을새김한 선구자였다. 장르와 매체를 넘나드는 전방위적 활동은 그의 전매특허였다. 놀라운 점은 여러 장르의 끝 간 데까지 닿은 뮤지션 역시 신해철이라는 점이다. 생각보다 훨씬 대단했던 신해철의 음악 인생을 되짚어봤다.

신해철이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의 OST에 참여했다는 점은 익히 알려져 있다(1997년 발표된 넥스트 4집이 '영혼기병 라젠카'의 OST다). 애니메이션 완성도는 처참했지만 신해철이 만든 음악만큼은 한국 애니메이션 음악의 질을 세계적 수준으로 단번에 끌어올린 수작이다. 특히 '라젠카, 세이브 어스('Lazenca, Save Us)'는 17년 전에 만든 음악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세련미를 과시하는 록 넘버다. 웅장한 오케스트라, 성가대의 전위적 합창, 귀를 작렬하는 신해철의 호쾌한 샤우팅이 어울린 걸작이다. 그는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란 걸 음악으로 보여주겠다"는 호언장담을 처음 만든 애니메이션 OST에서 보란 듯이 증명했다.

그가 게임음악에도 손을 댔다는 건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의 격투 게임인 '길티기어 XX 샤프리로드'의 한국판 OST(2003년)가 신해철 작품이다. 음악적 완성도를 위해 그는 넥스트 멤버들과 한 아파트에서 숙식하며 종일 게임 캐릭터를 연구했다. 음악을 통해 각 캐릭터 고유의 성격을 돋보이게 하는 게 그의 목표였다. '편집증'에 가까운 작업 끝에 탄생한 OST는 음악성에 감탄한 일본 게임마니아들의 성화에 힘입어 일본에 역수출되기도 했다.

이렇게 문을 열고 닫은 이가 모두 신해철이라는 점에서 그에게 '천재'라는 칭호가 붙는 건 당연하다. 한대수 김태원 서태지 등 당대의 뮤지션들이 신해철을 '위대한 음악가' '고독한 천재' '산과 같은 존재'라고 부르는 건 망자에 대한 예우성 상찬이 아닌 셈이다.

신해철은 안주를 거부하는 뮤지션이었다. '익숙해 가는 거친 잠자리도 또 다른 안식을 빚어 그마저 두려울 뿐인데'('민물장어의 꿈')라면서 현실의 고난마저도 안주의 징후로 받아들일 정도로 한 곳에 머무는 걸 증오했다. 이런 자의식이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안녕' '재즈카페' 등 수려한 팝 넘버를 부른 '핫한 오빠'를 '록의 사도'가 되도록 이끌었다. 현대인으로서 겪는 우울증, 시대와의 불화, 죽음, 영원 등의 주제를 담기엔 발라드 등 기존 장르의 터가 지나치게 좁았다.

그는 넥스트를 결성해 1993년 '도시인' '인형의 기사' '아버지와 나' 등을 담은 1집을 발표했다. "아무런 말없이 어디로 가는가. 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도시인')이라고 외치는 장발의 로커에서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를 부르던 곱상한 오빠의 모습을 찾기란 어려웠다.

이듬해 발표한 넥스트 2집('The Return of N.EX.T Part 1 : The Being')은 놀랍게도 헤비메탈 앨범이었다. 2집은 사운드 측면에서 한국 대중음악계에 충격을 안겼다. 당시까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헤비메탈을 표방한 밴드는 많았지만 넥스트처럼 세련된 사운드를 구사하는 밴드는 없었다. 넥스트의 2집은 면도날처럼 날카롭고 대포처럼 강렬한 연주, 심장을 자극하는 샤우팅 등 헤비메탈의 파괴성을 드러내는 곡에서부터 듣는 이의 감정을 뒤흔드는 발라드 넘버에 이르기까지 온갖 장르를 뒤섞어 차린 '진수성찬'이었다. 기타리스트 김세황 등의 명연에 맞춰 그는 도발한다. 자기 존재를 사유하지 않고 사는 건 이미 죽은 거라고. "세상이 날 길들이려 하네. 세상의 모든 고통과 좌절과 분노를 내게 다오. 영원히 마르지 않을 눈물을 핥게 하고 고독의 늪에서 헤매게 하라."('껍질의 파괴') 다른 한편으로는 '굿바이 얄리'를 통해 병아리의 죽음을 목격한 뒤 "세상에 머무르는 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고백한다.

1995년 발표한 넥스트 3집(The Return of N.EX.T Part 2 : World')은 2집과 함께 넥스트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세계의 문' '머니(Money)' 등이 히트했다. 세계 시장에 당장 내놓아도 통할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실제로 일본에서 해적판 음반이 크게 히트했다. 일본의 음악평론가 마쯔다 야스히로는 넥스트의 9분23초짜리 대곡 '더 월드 위 메이드(The world we made)'에 대해 "곡들이 반복되는 사이사이에 들어가는 테크니컬한 솔로, 특히 첫 번째 솔로의 긴박감은 처음 들어본다면 엉덩이의 구멍이 닫힐 정도"라고 감탄했다. 그는 넥스트 3집이 그 해 나온 음반 중 최고라고 평가했다.

넥스트 4집(Lazenca)에 이르기까지 신해철은 헤비메탈, 프로그레시브, 아트록, 오페라록 등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적 모험을 감행했다. 그 해 신해철은 "더 이상 올라 갈 자리가 없다"며 넥스트 해체를 선언했다.

넥스트 해체 후에도 그의 음악적 실험은 멈추지 않았다. 이미 윤상과 프로젝트 그룹 노땐스를 결성해 1996년 테크노 음악을 선보였던 그는 한동안 테크노 음악에 경도돼 크롬이라는 이름으로 솔로 앨범('Crom's Techno Works')을 발표하고 크리스 샹그리디와 프로젝트 그룹 모노크롬을 결성해 동명 타이틀을 내놓았다. 이 과정에서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는 명곡이 탄생했다. 2000년에는 3인조 밴드 비트겐슈타인을 결성해 저예산 홈레코딩 방식을 도입했다. 그는 전자악기 연주와 록 사운드가 충돌하는 데서 오는 묘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수컷의 몰락' 시리즈로 음악적 재능이 식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물론 신해철도 완벽한 음악적 결과물만 내놓은 건 아니다. 2004년 발표한 5집('The Return Of N.EX.T Part III : 대한민국'), 2007년 내놓은 6집('666 Trilogy Part I')은 4집까지 이어온 웅장하면서도 꽉 짜인 연주 방식에서 벗어난 앨범이다. 음반 제작의 주체가 뮤지션에서 대중에게 넘어갔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홈레코딩 방식으로 녹음한 때문이다. 지나치게 적나라한 가사, 헤비메탈의 호쾌한 맛이 사라진 연주 등이 일부 팬에게 아쉬움을 남겼지만 홈 레코딩만으로 이 같은 사운드를 만들어낸 데 대한 호평도 많았다.

한동안 정규 앨범을 내놓지 않은 신해철은 재즈 풍의 작품 정규 5집 '더 송스 포 더 원(The Songs for the One)' 이후 7년5개월 만인 지난 6월 정규 6집인 리부트 마이셀프(Reboot Myself)'를 발표하며 녹슬지 않은 감각을 과시했다. 무려 1,000개 이상의 녹음 트랙에 자신의 보이스를 중복 녹음해 만든 원 맨 아카펠라 곡 '아따(A.D.D.A)'는 단연 돋보인다. 테크노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사운드 완성도와 함께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곡 전반을 장악하는 변화무쌍한 보컬이 감탄스럽다. 분위기는 전혀 다르지만 비요크가 '메둘라(Medulla)'에서 아카펠라로만 테크노사운드를 구현한 것과 비견할 만하다. '단 하나의 약속'은 신해철식 발라드의 진화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서서히 감정을 고양하다가 폭발시키는 전형적인 구성이지만 세련된 사운드, 지나치게 사소해서 되레 서정적인 가사가 잘 어울리는 수작이다. 신해철 사후에 듣는 청자라면 "하나만 약속해줘. 어기지 말아줘. 다신 제발 아프지 말아요"라는 가사와 그의 죽음이 오버랩돼 기묘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신해철과 절친했던 음악평론가 조성진씨는 "항상 새로운 걸 시도했다. 시대를 앞서간 뮤지션이라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면서 "2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좋을 만큼 사운드가 세련된 점도 신해철 음악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조씨는 "신해철의 음악이 뛰어난 점은 그가 뛰어난 뮤지션이었으면서도 음악적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 덕분"이라면서 신해철과 관련한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그는 "잉베이 맘스틴이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적이 있다. 일본에 있는데 신해철에게 '잉베이 맘스틴을 만나게 해줄 수 있냐'는 전화가 왔다. 소개를 해줬더니 곧장 일본으로 날아와 다음날 둘이 따로 만났다고 하더라. 뭔가 음악에 대한 얘기를 나누지 않았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나를 비롯한 신해철 지인이 모두 충격에 빠진 상태"라면서 "아직도 신해철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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