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자'서 줄기 세포 진실 좇는 PD역 열연
줄기세포보다 치열한 언론인 묘사에 중점
평소보다 정신적인 에너지 소모 컸다

사진=권영민 인턴 기자 multimedia@hankooki.com
[스포츠한국미디어 최재욱기자] 영화 기자를 오래 하다보면 같은 배우를 1~2년마다 만나 인터뷰하곤 한다. 어떤 이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눌했던 말솜씨가 프로페셔널해지고 세계관도 넓어져 신선한 충격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나 몇몇은 10년이란 세월 속에 주름살 한두 개 늘어난 거 이외에는 전혀 변치 않은 이들이 있다.

영화 '제보자'(감독 임순례, 제작 영화사 수박)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배우 박해일이 바로 그런 경우다. 개봉을 앞두고 서울 홍대 근처 카페에서 만난 박해일은 육체와 정신에 방부제를 뿌린 듯 20대 청년의 느낌을 여전히 갖고 있었다.

뱀파이어가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동안 외모를 지닌 그는 결혼 전보다는 많이 유연해졌지만 섬세하고 예민한 성품은 그대로였다. 말을 나눌수록 살포시 짓는 미소 뒤 그의 머리 속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갈까 궁금해지는 '미스터리맨'이었다. 늘 관객들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천생 배우'인 것이다. "도대체 어떤 관리를 받기에 늙지를 않느냐"는 질투어린 인사말을 건네자 박해일은 쑥스러운지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그 어떤 관리도 안 해요. 주위에서 선크림 좀 바르라고 하는데 저는 얼굴에 뭘 바르는 게 답답하고 싫어요. 건강을 위해 운동을 좀 하라고 많은 분들이 말하시는데 게을러선지 아무 것도 안해요. 그냥 걷는 걸 좋아해요. 산책을 하면서 땀을 좀 빼는 게 제 유일한 관리라 할 수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냐고요? 전혀요.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나봐요? 하하하"

박해일이 임순례 감독과 다시 만난 '제보자'는 2005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복제 논문 조작 사건을 모티프로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조명한 작품이다. 실제 사건과 인물을 다뤘기 때문인지 박해일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의 기억을 묻자 극도로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

사진=권영민 인턴 기자 multimedia@hankooki.com
"그 당시에도 영화를 한창 촬영하고 있었어요. 전 국민이 모두 지켜보는 사건이었기에 저도 관심 있게 뉴스를 봤었어요. 줄기세포에 대한 지식은 그냥 모든 사람이 아는 수준 정도였지 찾아서 공부를 하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해요. 소재 때문에 출연을 결정한 건 절대 아니에요. 저를 데뷔시켜준 임순례 감독이 10년 만에 시나리오를 줬는데 마침 줄기세포스캔들이 소재였던 거죠. 처음에는 저도 깜짝 놀랐어요. 많은 분들이 우리 영화를 줄기 세포에 중점을 둔 영화라 생각하는데 전 그보다 진실을 좇는 언론인에 초점을 맞춰 연기했어요. 그 끈질김과 치열함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과정이 마음에 와닿았어요."

박해일은 영화 속에서 익명의 제보 전화로 시작된 취재로 인해 대한민국을 뒤흔든 거대한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시사 프로그램의 PD 윤민철 역을 맡았다. 주위의 방해와 반대 속에서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진실을 추구하는 윤민철은 어찌 보면 우리 주위에서 찾기 힘든 극히 이상적인 인물. 그러나 서민적이면서도 열정적인 느낌의 박해일이 연기하기에 현실성이 살아나면서 살아 숨쉰다.

마지막에 방송이 결정되고 진실이 밝혀질 때 관객들은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상복이 별로 없는 박해일에게 한번 상을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 만큼 혼신의 열연을 펼친다. 잇달아 찬사를 던지자 민망한지 폭소를 터뜨렸다.

"왜 갑자기 상 이야기를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에 욕심이 없냐고요? 나도 사람인데 주면 좋죠.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그런 욕심 안 내요. 윤민철은 괴짜지만 참 근성 있는 인물이에요. 그가 하는 일들이 어쩌면 슈퍼히어로처럼 보일 수 있어요. 그러나 전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인물로 묘사하려고 노력했어요. '최종병기활'처럼 육체적으로 힘들 일은 없었지만 정신적으로 에너지 소모가 심했어요. 영화를 보면서 윤민철의 진심을 느껴줬으면 좋겠어요. 영화가 우리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고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또한 줄기세포에 너무 초점을 맞추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장르적으로도 상업영화로서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박해일은 올 가을 '제보자' 이외에도 '나의 독재자'(감독 이해준, 제작 반짝반짝영화사) 개봉을 앞두고 있다. 지난봄 '경주'가 개봉됐으니 올해 무려 세편이나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이제 '다작 배우가 된 것이냐'는 물으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진=권영민 인턴 기자 multimedia@hankooki.com
"결코 다작을 의도한 건 아니에요. 배우는 선택을 받아 일하는 직업이에요. 오랜만에 정말 하고 싶은 작품들이 연달아 들어온 거죠. 정말 행복한 일이에요. 다행히 촬영 일정이 잘 맞아떨어져서 힘들지 않게 촬영을 마쳤던 거 같아요. 차기작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어요. 1년 넘게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 두 작품 개봉을 끝내놓고 천천히 쉬면서 결정하려고 해요. 하하하"

박해일은 10여년 넘게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관객들에게 늘 신선함을 주며 사랑받아 왔다. 앞으로 어떤 인물을 연기하고 싶은지 물어보자 의외의 답이 나왔다.

"작품을 선택할 때 감독이나 화제성은 중요치 않아요.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를 주로 보곤 해요. 우리 나라 영화는 사극이나 현대극은 많지만 미래를 소재로 한 SF 영화들이 없어 아쉬워요. 정말 영화 속에서 우주로 한번 나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산드라 블록 주연의 '그래비티'를 정말 재미있게 봤거든요. 연기적으로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사진=권영민 인턴 기자 multimedia@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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