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랩 배틀·쫄깃한 긴장감…과한 욕설은 눈살

스타 래퍼 탄생·음원차트서도 반향…10~30대 시청층 사로잡아

"지코가 오든 개코가 오든 다 이기겠다."(바비)

"바비는 여전히 내게 인형으로 보인다. 바비 인형이니 갖고 놀아야지."(올티)

맞대결을 펼친 래퍼 올티가 블락비의 지코와 협업 무대를 꾸미자 래퍼 바비가 자신감을 나타내며 도발했다. 올티도 아이돌 래퍼를 꼬집듯 YG엔터테인먼트 연습생인 바비를 인형에 비유하며 맞섰다.

오는 9월 4일 우승자가 가려지는 최종회(10회)를 앞둔 엠넷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3'는 매회 방송마다 래퍼들의 경연 무대와 랩 실력, 날 선 신경전으로 화제가 됐다.

래퍼들의 이름은 포털 실시간 검색어 10위권을 채웠고 경연곡은 음원차트 1위와 최상위권을 찍었다. 이들이 상대를 향해 날리는 독설은 '쇼미더머니3 어록'이란 제목으로 온라인에 퍼져나갔다. 시청자게시판은 재수생, 입대를 앞둔 20대, 힙합에 빠졌다는 모자(母子) 등 방청을 신청하는 글로 도배됐다.

이번 시즌에서는 타블로-마스타우, 도끼-더콰이엇, 산이-스윙스, 양동근(YDG)이 프로듀서 진으로 나서 도전 래퍼들로 네 팀을 꾸리고 지난 2개월간 경연을 펼쳤다.

3천여 명의 지원자 중 바비(도끼-더콰이엇 팀), 바스코(산이-스윙스 팀), 아이언(YDG 팀), 씨잼(산이-스윙스 팀)이 준결승(톱 4)에 올랐고 지난 28일 방송에서 1년차 래퍼 바비가 14년차 래퍼 바스코를 누르고 결승에 진출했다. 마지막 방송에서는 아이언과 씨잼이 겨룬 뒤 이들 중 승자가 바비와 경쟁해 최종 우승자가 결정된다.

이 프로그램은 신예 래퍼의 발굴, 오래된 연륜에도 빛을 못 본 언더그라운드 래퍼의 재발견 등 여러 측면에서 안방 시청자들에게 보는 재미를 선사했다.

물론 때로는 래퍼들이 막말과 욕설을 거침없이 내뱉고, 과한 허세를 부리는 모습에서 눈살이 찌푸려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힙합이란 장르의 저변을 다양한 연령층으로 넓힌 건 분명해보인다.

◇ 개성 강한 랩 배틀…라이벌 구도의 팽팽한 신경전

'쇼미더머니3'의 인기 비결은 뭐니뭐니해도 뜨거운 랩 배틀이다. 마치 링 위에 오른 복서처럼 참가 래퍼들은 자신의 메시지를 담은 랩 가사를 개성 강한 플로우(목소리 톤, 박자를 밀고 당기는 스타일 등 랩의 흐름)로 토해내며 객석의 열기를 고조시켰다.

이처럼 저마다의 실력으로 래퍼들은 뚜렷한 캐릭터가 잘 살아났다.

14년 차 베테랑의 존재감과 카리스마를 보여준 바스코, 프로듀서들로부터 "타고났다"는 평가를 받은 '슈퍼 루키' 바비, 가사 전달력이 뛰어난 씨잼, 수트가 잘 어울리는 훈훈한 외모의 아이언, 아이돌 래퍼의 실력을 보여준 비아이, 귀여운 외모로 여성 팬을 사로잡은 기리보이 등이 안방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뜻하지 않게 연출된 극적인 장면도 긴장감을 배가시켰다.

도끼-더콰이엇 팀의 바비가 같은 소속사(YG) 선배인 타블로-마스타우 팀의 마지막 생존자 올티를 눌러 팀 전체를 탈락시켰고, 같은 레이블(저스트뮤직) 소속인 씨잼과 기리보이는 '짜기라도 한 듯' 여러 차례 맞대결을 펼쳐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러한 과정에서 참가 래퍼들과 프로듀서들이 보여준 날 선 신경전은 쫄깃한 맛을 더했다. 이들은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듯 상대를 도발하며 불꽃 튀는 자존심 대결을 벌였다.

아이언의 팬이라는 회사원 정수진(34) 씨는 "경연의 스릴도 있었지만 래퍼들이 무대 밖에서 자기 과시, 자화자찬을 하거나 상대를 직설적으로 공격하는 대화의 재미도 쏠쏠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관전 포인트 덕에 프로그램은 타깃 시청층인 남녀 15~34세에서 7주 연속 동시간대 1위 자리를 고수했다.(닐슨코리아/유료플랫폼 기준/Mnet+KM 채널 합산)

'쇼미더머니 3'의 한동철 CP는 인기 비결에 대해 "이번이 세 번째 시즌인데 지난 몇 년간 힙합이 주류 음악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으며 관심이 높아진 영향이 있다"며 "힙합은 대중이 접할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다른 음악 못지않게 감동적인 장르다. 시청자들에게 그 접점을 만들어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참가 래퍼들에 대한 평가는 프로듀서 진이 아니라 경연을 본 관객 투표로 가려졌는데 랩은 스타일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니 사실 온전히 1, 2등을 심사하기 힘들다"며 "'누가 누구보다 더 랩을 잘해'란 기준이 없으니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가 주는 재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 과한 욕설·비방은 글쎄…일부 출연자 자질 논란도

그러나 래퍼들이 무대에서 내뱉는 직설 화법과 욕설이 담긴 가사는 곧잘 '삐~' 처리가 되며 일부 시청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 시청자(아이디 ros*****)는 "힙합이 부조리한 세상을 시원하게 까야 되는데 상대편을 미묘하게 견제하는 분위기가 지나쳐보였다"며 "멋지기보다 왠지 치졸한 느낌도 있다. '악마의 편집'이라면 정말 심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바비는 제작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엄마가 방송보고 잘했다고 칭찬해줬다. 그런데 욕은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동철 CP는 "래퍼들은 가사에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담는다"며 "그 나이 때 친구들이 실생활에서 때론 욕을 하는데 랩을 하면서는 순화된 다른 언어로 하는 게 솔직하지 않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 모습이 우리나라의 정서상 불편해 보였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힙합듀오 일렉트로보이즈의 마부스도 통화에서 "힙합은 많은 가사를 담을 수 있는 랩을 통해 다른 장르보다 자유롭고 뚜렷하게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며 "특히 이 프로그램이 경쟁이란 틀을 갖고 있어 거침없는 화법은 있는 그대로의 솔직함과 진정성을 강조하는 표현의 일종"이라고 설명했다.

방송 초반에는 참가자인 여고생 래퍼 육지담의 사생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육지담이 전파를 타자 온라인에는 '일진 루머' 등 학생으로서 적절하지 않은 행동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당사자와 제작진이 논란에 대해 해명하기도 했다.

또 래퍼 타래 등 일부 참가자들은 SNS를 통해 편집 상의 문제 제기를 해 '악마의 편집' 논란을 일으켰다.

◇ YG 연습생·탈북 래퍼 등 화제의 주인공들…유행어·별명도 잇달아

화제의 주인공들도 탄생했다.

YG 연습생인 바비와 비아이는 출연 소식이 알려지며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특히 바비가 온라인에 발표한 프로그램 경연곡은 잇달아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대선배 바스코의 출연도 의외였다. 그는 홀로 키우는 아들 '섭이'에 대한 감성 메시지, 록 스타일을 가미한 무대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로 인해 때론 '힙합이 아니라 록'이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바비와 대결한 준결승에서 정통 힙합 무대를 선보이며 '언더부심'(언더그라운드+자부심)을 보여줬다.

탈북자 출신 래퍼 강춘혁도 북한 사회를 고발하는 랩으로 화제가 됐다. 그는 긴장한 탓인지 "총살이 두려워 숨죽인 채"라고 첫 음을 뗀 후 랩을 끝까지 선보이지 못해 방송 초반 탈락했다. 그러나 경연에서 끝까지 들려주지 못한 랩 가사를 SNS에 올렸고 이후 미국 워싱턴포스트 등 해외 언론에 소개되며 반향을 일으켰다.

프로듀서 진 중에는 '만담꾼' 같은 찰떡궁합을 보여준 도끼와 더콰이엇 팀이 크게 주목받았다. 힙합계에선 이미 실력을 인정받고 상당한 인기를 누리지만 대중적인 스타성이 다소 떨어진 이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참가자들 이상으로 사랑받았다.

한동철 CP도 "이 친구들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게 우리로선 보람된 일"이라고 말했다.

방송이 거듭할수록 래퍼들의 인상적인 말과 랩 가사가 유행처럼 퍼지거나 별명이 되기도 했다.

육지담은 공연 미션에서 "비트와 밀당을 하는 나, 힙합 밀당녀'란 랩 두 마디를 던진 후 가사를 잊어버리자 네티즌 사이에서 '힙합 밀당녀'로 불렸다. 이 프로그램의 프로듀서로 나선 산이는 SNS에 자신의 신곡을 알리며 "회사와 밀당을 하는 나, 힙합밀당남"이라고 패러디하기도 했다.

또 아이언은 동묘 앞 구제 옷을 즐겨 입는 "구제 스웨거"(swagger: 자신을 과시하거나 으스대는 랩을 하는 래퍼)라고 소개해 '구제 스웨거 래퍼'로, 바스코는 록 스타일 무대 이후 '락스코', '바스락'으로 불렸다.

도끼는 '턴 업'(Turn up: '소리를 높이다'란 뜻이지만 '분위기 살리고'란 의미로 사용)이란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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