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김윤지기자] 막장은 갱도의 막다른 곳을 뜻한다. 어느 날부터 드라마 속 극단적인 상황을 '막장'이라 칭하게 되면서, 밑바닥을 의미하는 단어가 됐다. 개연성이 결여되고 무리한 설정이 난무하는 드라마를 통상 '막장 드라마'(줄여서 막드)라 부른다. 자극적이기 때문에 보는 재미는 있다. 맛있지만 유해한 불량식품처럼 말이다. 문제는 '막드'가 지상파 3사 일일극 전반을 지배하며 하향 평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최근 케이블채널과 종합편성채널의 약진과도 대비된다. '예능형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연상연하 커플의 불륜'이란 소재를 택했지만 섬세한 연출로 밀도 있게 그려낸 종합편성채널 JTBC 드라마 '밀회' 등이 좋은 예다. 케이블채널과 종편이 끊임없이 도전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사이 지상파는 뒤쳐지고 만 셈이다.

책임을 묻는다면 원인은 다양하다. 책임질 사람도 찾기 힘들다. 지난해 '오로라 공주'가 막무가내로 출연진을 하차시키고 "암세포도 생명이다"라는 대사들을 만들어 냈지만 해명하는 이는 없었다. 전파를 내준 MBC는 외주 제작사의 소관이라고 수수방관했고, 드라마를 만든 임성한 작가와 외주 제작사는 입을 다물었다. '발암 드라마'(보는 사람의 짜증을 넘어 질환까지 유발할 것 같은 드라마) '쓰라마'(쓰레기+드라마)라 질타하면서도 즐겨보는 시청자가 있었다.

김영섭 SBS 드라마 국장은 지난 28일 저녁 일일극 '사랑만 할래' 제작발표회에서 '막장' 소재를 최대한 배제하겠다고 발언했다. 실제 '사랑만 할래'는 가능성이 보이는 젊은 배우들을 캐스팅해 그들의 풋풋한 로맨스로 채웠다. 전작인 '잘 키운 딸 하나' 역시 착한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았다. 시청률로 보답 받진 못했지만 '일일극=막드'라는 인식이 만연한 요즘, 이들의 소신 있는 행보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5일 열린 KBS 1TV 새 일일극 '고양이는 있다' 제작발표회에서 연출을 맡은 김원용PD는 "120부작인 일일극을 매일매일 재미있게, 힘있게, 시청자들의 관심을 놓치지 않고 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120부를 끌고 갈 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쉽지가 않다보니까 많은 일일극에서 '출생의 비밀'처럼 쉬운 코드를 따라간다. 비밀 중에서 가장 강력한 비밀이 출생의 비밀인 것 같다"고 고충을 토로하며 "'고양이는 있다'는 '출생'을 빼고 '비밀'만으로 만들자고 했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막드'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범람하는 '막드'로 결국 피해를 보는 것도 시청자다. 비슷한 '막드' 사이에서 선택권을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콘텐츠의 경쟁력 약화로, 한류 열풍의 악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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