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철 작가가 '비밀'의 원작자

지난 9월 서울 삼성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KBS 2TV 수목미니시리즈 '비밀'(극본 최호철 유보라, 연출 이응복)의 제작발표회. 잔칫날이었지만 행사장 뒤 켠에 모인 각 배우들의 담당 매니저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각 사의 야심작이라 할 수 있는 MBC '메디컬탑팀'과 SBS '상속자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 게다가 전작인 '칼과 꽃'은 5% 시청률로 바통을 넘겨줬다. "2등이라도 하면 잘 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이곳저곳에서 나왔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뚜껑은 열어봐야 한다고. '비밀'은 SBS '주군의 태양'이 끝나자마자 동시간대 시청률 1위로 치고 올라온 후 마지막까지 기세를 유지했다. 단순한 운이 아니다. 탄탄한 시나리오와 빼어난 연출, 배우들의 호연이 빚어낸 멋진 역전 홈런이었다.

그 시작은 이응복 PD와 최호철 작가였다. 최작가는 지난해 '비밀'로 KBS 미니시리즈 극본 공모전 우수상을 받았다. 이 작품을 눈여겨 본 이PD는 경남 양산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최작가를 찾아갔다. 삼고초려 끝에 최작가의 승낙을 받아내면서 '비밀'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비밀'를 소개하는 기사를 보면 '유보라 최호철 작가'가 병기돼 있다. 유보라 작가의 이름이 먼저 적혀 유작가가 메인 작가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유작가는 원안을 만든 최호철 작가가 집필을 결정한 후 뒤늦게 합류했다. 최호철 작가가 슛을 던지는 오른팔이었다면 유보라 작가는 정확한 슛을 위해 거드는 왼팔이었다.

한 방송 관계자는 "아직 장편을 써본 적이 없는 신인 작가였기 때문에 KBS 입장에서도 '보험'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야기의 구성을 잘 하는 작가와 대사를 잘 쓰는 작가를 함께 배치한 것"이라며 "하지만 '비밀'의 시작과 끝은 당연히 최호철 작가"라고 말했다.

우려를 뛰어넘은 최호철 작가의 필력도 대단하지만 그를 알아본 이응복 PD의 안목 또한 탁월하다. 그 동안 '드림하이' '학교 2013' 등 학원물을 연출한 이응복 PD가 정통극인 '비밀'을 만든다고 했을 때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많았다. 게다가 검증되지 않은 파트너로 신인 작가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비가 초야에 묻혀 살던 제갈량을 삼고초려 끝에 등용했든 이응복 PD는 최호철 작가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를 메이저 무대에 데뷔시켰다. 그리고 최작가는 이PD의 기대에 부응했다.

'비밀'은 14일 마지막회를 남겨두고 있다. 어떤 결말을 맺을지, 시청률 20%를 돌파할지 등 관심도 높고 궁금증도 많다. 하지만 이런 물음을 모두 뒤로 하고 '비밀'은 이미 진정한 승자다. 몇 년 전 '제빵왕 김탁구'가 '로드넘버원'과 '나쁜 남자'를 이겼듯, KBS는 멋진 역전극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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