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창작자 아닌 전달자… 피해자 아픔 팔아 장사할 순 없죠
최대한 '예의 있게' 찍으려 노력… 연기경험 전무한 주인공 이례 캐스팅
목소리와 눈만 봤죠"

영화 ‘소원’(제작 필름 모멘텀)의 개봉을 앞둔 이준익 감독은 “나는 ‘창작자’가 아니라 ‘전달자’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동 성폭행이란 민감한 소재를 다룬 터라 그는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보다 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소원’에 대해 입을 뗐다.

그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소재가 주는 부담 때문에 걱정하던 영화 관계자와 언론도 첫 시사회가 끝난 후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 곳곳에는 이준익 감독의 온기가 가득 배였고 관객들의 눈가는 촉촉해지지만 입가에는 웃음이 번질 것이다. 분명 ‘소원’은 고통이 아니라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2010년작 ‘평양성’ 이후 3년 만에 돌아온 이준익 감독은 역시 명장이었다. 웰컴백 이준익.

@ㆍ사진=김지곤기자

▲다루기 쉽지 않은 소재였을 것 같다.

=분명 소재는 아동 성폭행이지만 주제는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가족들의 사랑이다. 무엇보다 ‘예의 있게’ 찍으려 노력했다. 신파 티를 내면 ‘그들의 아픔을 팔아먹고 장사한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말 정중하고 공손하게 담으려 노력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의 그런 의도가 읽혔다. 성공한 거 같다.

=시사 후 무엇보다 욕을 안 먹어 다행이다. 소재에 끌려갔다고 공분을 일으키고 가해자를 어떻게 처벌하고 복수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졌을 것이다. 하지만 ‘소원’은 사건을 들추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보듬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피해자 단체와도 소통하며 항상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실제 피해자들과 만나봤나.

=정말 중요한 건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보다 피해자를 보살피는 거다. 피해 당사자와 부모들이 속한 ‘아이가 웃는 세상’이라는 단체 관계자와 만나고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겁도 나더라. 조금도 불손한 태도가 들어가면 안 되지 않나. 흥행과 상업성은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상업 영화로서 흥행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지 않나.

=난 ‘창작자’가 아니라 ‘전달자’였다. 시나리오에는 내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겼다. 시사회 후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하는 이들이 있었다. 기뻤냐고? 아니다. 정확한 내 마음은 ‘참 다행이다’였다. 그들에게 다시 상처를 주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라디오 스타’의 감성이 떠오르더라. 이준익 감독은 세상을 따뜻하게 보는 눈을 가진 것 같다.

=맞다. 난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보려 노력한다. ‘소원’은 사실 동화에 가깝다. 때문에 영화를 찍으며 내 안에 남은 동심을 찾아봤다. 갈비뼈 한 쪽에 조금은 남아 있더라.(웃음)

▲왜 이 영화를 동화라 생각하나.

=극중 소원(이레)이는 비 맞는 아저씨에게 우산을 씌워졌다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당한다. 비 맞는 사람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것은 옳은 행동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소원이를 칭찬하지 않았다. 우린 오히려 ‘도망가라’고 가르친다. 점점 ‘동화가 없어진 세상’이 돼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에게는, 이들과 소통하는 아빠와 아이 사이에는 동화가 남아 있다.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연기 경험이 거의 없는 이레를 주인공으로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딱 두 가지를 봤다. 목소리와 눈이다. 말과 글은 거짓말을 하지만 눈은 거짓말을 못 한다. 이레의 눈에는 구김이 없었다. 목소리 역시 맑았다. 때문에 경상도 사투리를 써야 하는 역할에 전라도 광주 출신인 이레를 선택했다. 연기 경험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호흡을 맞춰본 설경구는 어떻던가.

=정말 존경스러운 배우였다. 촬영 전 잔뜩 감정을 싣고 현장에 와서 벽만 보고 있다가 촬영이 시작되면 무섭게 감정을 쏟아냈다. 설경구가 있었기에 ‘소원’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는 대단한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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