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 출신 어머니 덕분에 '남장 연기' 도움 받아
연기 도전 끝내고 무대 서니 신인으로 되돌아간 느낌

고양이처럼 꼬리가 솟은 눈매, 날렵한 콧날과 깎아진 듯 매끄러운 턱선까지. 여성스러움의 끝을 보여주는 그를 우린 '여신'이라 부르지 않았던가. 최근 마주한 걸그룹 카라의 박규리는 달라져 있었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에 조신한 표정과 침착한 말투, '여신의 조건'은 유효했지만 어느덧 그에게서 남자의 향기가 느껴졌다. 이게 다 이달 초 첫 방송된 케이블채널 MBC 퀸 10부작 드라마 '네일샵 파리스'(극본 성민지ㆍ연출 박수철) 때문인가 싶었다.

'네일샵 파리스'는 드라마표절시비에 설욕하기 위한 참신한 소재를 찾던 소설가 홍여주(박규리)가 '꽃미남' 네일리스트 알렉스(전지후), 케이(송재림), 진(천둥)이 주인인 네일샵 파리스에 위장 취업하면서 일과 사랑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 물이다.

박규리는 남자 네일리스트만 일할 수 있는 네일샵 파리스에 위장 취업하는 소설가 홍여주 역을 맡았다. 짧은 헤어스타일에 헐렁한 티셔츠, 바지, 운동화 차림이 제법 잘 어울린다. 남자처럼 말하는데도 억지가 없고 여자로서 지켜야 할 선을 정해둔 것도 자연스럽다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엄마가 성우였기 때문에 '남장연기'를 하는 데 도움을 굉장히 많이 줬어요. 어떻게 보면 연예계 선배님이죠. 평소에도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라 '네일샵 파리스' 모니터도 더 꼼꼼히 해주시고 톤도 세심하게 바로 잡아주세요."

오랜만에 배우로 나선 박규리가 '네일샵 파리스'로 호평을 받기까진 어머니의 역할만 있었던 건 아니다. 현장에서 그의 '수다'를 다 받아주는 박수철 PD와 연기경력으로 따지면 후배임에도 "선배"라 꼬박꼬박 부르는 전지후 송재림 등 동료 배우들의 응원이 컸다.

"기분이 이상하죠. 선배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카라가 아무래도 6주년을 맞는 그룹이라 그런가 봐요. 다들 저에 대한 믿음을 가져주셔 감사하고 든든해요. 사실 늘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갈망이 컸는데 기회를 잡긴 어려웠거든요. '네일샵 파리스'는 그런 의미에서 배우는 게 참 많은 작품이에요."

실제로 박규리는 '네일샵 파리스' 촬영을 마친 뒤 최근 한 대형 콘서트 무대에 섰을 때 신인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떤 컴백 무대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신선한 충격'에 사로잡혔단다.

"무대 앞 카메라와 드라마 현장 카메라가 다르다는 걸 새삼 알게 됐어요. 표정연기, 노래를 부르는 데 필요한 감정표현, 모든 게 달라진 것 같아요. 짧다면 짧은 촬영으로 이렇게 많은 걸 얻었으니, 그 동안 제가 연기도전을 '숙원사업'에 비유했던 게 과장은 아닌 것 같아요.(웃음)"

그 숙원사업을 '네일샵 파리스'로 풀게 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을까. 출연소식만으로도 아시아 드라마시장을 술렁이게 하는 카라의 박규리가 아니던가. 지상파방송이 아닌 케이블TV의 작품인데다 MBC 퀸의 개국 첫 드라마라 부담도 컸을 법했다.

"내용이 좋아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했을 따름인걸요. 현장스태프 모두 박규리라는 사람을 넘어 홍여주라는 캐릭터로 절 아껴주시는 게 느껴졌어요. 전 채찍보다 당근에 반응하는 스타일이거든요.(웃음) 기대를 해주시니 실망시키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죠. 카라로서 박규리로서 적당한 타이밍에, 최고의 작품을 만나, 최상의 가르침을 얻은 건 축복이에요."

이런 기운을 이어 받아 박규리는 SBS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간다'로 흥행불패 신화를 쓴 김규태 PD와 작업을 앞두고 있다. 카라 멤버 5명 전원이 각각 1부작을 책임지는 주인공으로 옴니버스 식 5부작 단막극이 제작되고 있다.

"5부작의 장르도 다 달라요. 저는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이 될 것 같고요. '네일샵 파리스'에 처음 임할 때 '아이돌 출신 배우의 타이틀을 떼자' '절대 가볍게 생각하지 말자' 이런 각오를 다졌거든요. 그 마음가짐을 쉼 없이 이어갈 수 있게 돼 행복해요. 가수로든 배우로든, 이렇게 머물러 있지 않다는 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한 번 걷기 시작한 연예계라는 길인데, 이왕이면 최대한 멋지고 당당하게 걸어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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