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사전제작 대안으로 떠올라
대본·방송분량 충분히 확보해
스케줄 과부하 없고 연기도 탄탄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왜 사전제작드라마가 만들어져야 하나?

쪽대본이 없어 배우들의 연기가 좋아지고 충분한 후반작업을 통해 영상미를 높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드라마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시청자들의 만족감도 커진다. 제작 환경이 좋아지니 작품의 퀄리티가 상승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왜 사전제작드라마를 만들지 않나?

편성을 장담할 수 없고 시청자들의 반응에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없으며 PPL을 받기도 힘들다. 게다가 주연 배우들조차 사전제작드라마에 대한 불신이 크다. 성공 사례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도 절충점은 있다. 반(半) 사전제작시스템이다. 송출과 제작을 동시에 진행하지만 방송 분량을 충분히 확보해 무리한 스케줄로 인해 제작진과 출연진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을 막는 시스템이다. 얼마 전 화제 속에 종방된 SBS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극본 노희경ㆍ연출 김규태)에 적용됐고 현재 방송 중인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나인:아홉 번의 시간여행'(극본 송재정ㆍ연출 김병수ㆍ이하 나인) 또한 그렇다.

tvN ‘나인:아홉 번의 시간여행’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방송이 시작될쯤 이미 노희경 작가가 이미 15부 대본까지 탈고한 상태였다. 감정 표현이 어렵기로 소문난 노 작가의 작품이었지만 이미 대본 전반을 숙지해 작품 전체의 흐름을 알고 있는 조인성과 송혜교는 호연을 펼칠 수 있었다. 제작사 조정호 대표는 "출연진과 제작진은 일주일에 하루씩 휴식이 보장됐다. 마지막회 방송 1주일 전 대부분의 촬영을 마쳤기 때문에 후반부에 더 힘을 줄 수 있었다. 드라마 자체의 성공도 기쁘지만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시스템 속에서 작업이 진행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나인' 역시 마찬가지다. 방송이 시작되기 전 이미 20부작 중 절반 넘게 대본이 완성됐다. 11부까지 방송된 지금은 16부 대본까지 나왔다. 완성된 대본을 갖고 대본 리딩까지 마친 후 연기에 임하는 터라 배우들의 연기가 탄탄하고 연출 역시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방송 시작 전 송재정 작가는 스포츠한국과 인터뷰에서 "'나인'은 전작인 '인현왕후의 남자'보다 먼저 구상했던 만큼 준비 기간이 길었고 대본 작업도 충분히 마쳤다. 후반부의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는 만큼 복선도 많고 각 에피소드도 충실할 것이다. 쪽대본 없이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은 허언이 아니었고 작품의 높은 퀄리티로 반영됐다. 그 결과 시청자들은 열광하고 있다.

대부분의 제작자들이 사전제작드라마의 장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실천으로 옮기긴 힘들다. 대부분 제작사가 '남의 돈'으로 제작하는 것도 큰 이유 중 하나다. 일단 방송이 시작돼야 방송사로부터 제작비를 받고 간접광고비를 끌어올 수 있으며, 이 돈을 제작비로 돌리는 구조로 드라마를 만든다. 때문에 어느 한 부분에서 누수가 일어나면 미지급 사태가 일어나고 제작 중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돈의 흐름을 좇다 보면 드라마의 완성도는 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일단은 작가들이 대본을 충분히 집필한 후 제작에 돌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드라마의 근간은 대본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간접광고 물품이 들어올지 모르고 시청자들이 어느 지점에 열광할지 몰라 대본 수정이 불가피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까지 감안해 좋은 대본을 내놓는다면 좋은 배우를 확보하고 방송사와 편성을 논할 때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물론 PPL에 따라 대본을 수정해달라는 요구를 쉽게 받아들일 작가는 없겠지만 말이다.

'나인'을 담당하고 있는 CJ E&M의 김영규 책임 프로듀서는 "드라마 시장이 발전될수록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의 눈높이 또한 높아지고 있다. 산업적으로 덩치만 키울 게 아니라 드라마 콘텐츠가 탄탄해져 내실을 기해야 한다. 더 이상 '생방송 촬영'과 '쪽대본'으로는 승산이 없다. 반 사전제작시스템의 점차적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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