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급 작가'의 세계
'넝굴당' 박지은 新흥행보증수표 급부상
몸값 최고 1억원… 배역 비중 조절 중추

박지은
SBS 수목미니시리즈 '드라마의 제왕'(극본 장항준 이지효ㆍ연출 홍성창) 1회를 보면 제작사 대표에서 물러나게 된 앤서니김(김명민)이 작가를 포섭하기 위해 쉴틈없이 전화를 돌리는 장면이 나온다.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이름값 높은 작가 확보는 필수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기존 작가 영입에 실패한 앤서니김은 결국 신인 작가 이고은(정려원)과 계약하면서 다시 드라마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이 장면을 보며 적잖은 드라마 제작자들이 가슴을 쓸어 내렸다. 좋은 작가를 확보하기 위해 연일 전쟁을 치르는 그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됐기 때문이다. 한 외주 제작사 관계자는 "영화가 감독의 예술이라면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다. 잘 쓰는 작가 한 명만 붙잡아도 드라마 제작의 7부 능선은 넘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편성'이다. 채널이 많아졌다지만 지상파 3사의 영향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외주 제작사들은 수시로 지상파 3사의 문턱을 넘는다. 이 때 외주 제작사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가 바로 작가다.

김수현 김은숙 김영현 등 흥행보증수표로 불리는 작가를 붙잡는다면 편성은 떼어놓은 당상이라 할 수 있다. 요즘은 이 대열에 박지은 작가가 합류했다. 올해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집필한 박지은 작가는 '대세'라 불리며 숱한 외주 제작사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몇몇 드라마국 고위 관계자들은 외주 제작사를 상대로 "박지은 작가를 잡아오면 편성은 문제없다"고 솔깃한 제안을 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중견 외주 제작사 대표는 "배우와 방송사는 대본을 보고 각각 출연과 편성을 결정한다. 대본이 드라마의 시작이자 끝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작가의 중요성은 수백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수현
그렇다면 드라마 작가들의 몸값은 얼마나 될까. 톱 중의 톱인 김수현 작가는 종합편성채널 JTBC '무자식 상팔자'를 집필하며 회당 1억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현 작가를 제외하면 대부분 A급 작가들이 통상 회당 3,000만~5,000만원의 집필료를 챙긴다.

하지만 작가를 '모시기' 위해서는 집필료 외에 또 다른 투자가 필요하다. 작가실을 마련하는 등 부대 비용도 만만치 않다. 요즘 소위 '잘 나가는' 작가들의 메카로 불리는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 있는 한 고급 아파트의 경우 전세 비용만 4억원에 육박한다.

A급 작가들이 각광받고 대접받는 이유는 단순히 글만 잘 쓰기 때문이 아니다. 작가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PPL을 작품 속에 잘 녹이는 것이다. 외주 제작사가 방송사로부터 지급받는 회당 제작비는 실제 제작비의 50% 안팎. 나머지 비용은 제작협찬 및 PPL 등을 통해 충당한다.

하지만 어떤 제품의 협찬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최초 대본에는 간접광고에 대한 부분이 명시돼 있지 않다. 제작사가 따온 PPL을 드라마 속에 자연스럽게 녹이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예술이다. 서툰 작가는 지나치게 티 나는 간접광고 때문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지적을 받는 반면, 베테랑 작가들은 제품의 호감도를 급상승시킨다. MBC 드라마국 관계자는 "무리한 간접 광고는 드라마에 대한 반감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다. 잘 쓰는 작가는 이런 부분까지 매끄럽게 처리한다. 때문에 외주 제작사가 좋은 작가를 내세우면 방송국 입장에서는 편성을 결정할 때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높은 인기를 앞세워 입김이 센 배우들도 작가 앞에서는 작아지곤 한다. 작품 속에서 그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이가 작가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마음에 드는 배우의 역할을 키워줄 수 있는 반면 눈 밖에 나면 비중을 줄이기도 한다. 이 관계자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은 배역에 무게를 실어주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을 결정하는 이가 바로 작가다. 작가 역시 작품이 망가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상식적인 수준에서 역할 비중을 조정하지만, 특정 배우의 연기력이나 태도 등이 문제가 돼 기획 단계보다 비중을 현저히 줄이기도 한다"며 "이 역시 작가의 고유 권한이다. 드라마에서 작가는 권력의 정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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