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군에 강심제 주사 장면 내가 봐도 섬뜩
살아있는 연기… 양보다 질로 존재감 부각

'각시탈'은 끝났다. 주인공 이강토(주원)에 맞서던 ??지(박기웅)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지는 일본인이었다. '각시탈'에서 그는 악역이었다. 하지만 그의 최후를 보며 많은 시청자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라는 인물에 대한 연민이었다. 일본의 애국청년이었던 그가 누구보다 대한민국을 사랑했고, 한국인 친구와 우정을 나눴으며, 한국 여성을 사랑했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장면은 '각시탈'의 백미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지를 연기한 배우 박기웅이 있다.

박기웅은 KBS 2TV 수목미니시리즈 '각시탈'에서 스펙트럼 넓은 연기를 보여줬다. 순수하고 착했던 소학교 교사가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해 앞장서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연기하며 '각시탈'에 힘을 불어넣었다. 각시탈이 돋보일 수 있었던 것은, 어찌보면 상대역인 ??지가 점점 더 강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독립군에게 강심제 주사기를 찌르는 장면은 제가 봐도 제 모습이 낯설었어요. 주변에서 '너 그만 몰입해, 눈이 돌아갔어'라고 말할 정도였죠. ??지의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마지막에는 힘이 부칠 정도였죠. 날카로움을 잃지 않기 위해 마지막 몇 주는 소금기를 끊고 다이어트를 했어요."

'각시탈'을 본 후 박기웅의 배우 인생에 전환점이 될 만한 작품이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만큼 그의 연기는 쉬지 않고 꿈틀거렸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살아 있는' 연기였다. 그 뒤에는 박기웅을 굳게 믿어주는 윤성식 PD가 있다. 윤성식 PD는 자신이 연출한 드라마 '연애결혼' '남자 이야기' 등에 박기웅을 기용했다. 그는 윤 PD의 전폭적인 지지에 탄탄한 연기력으로 화답했다.

"단막극까지 합치면 네 작품을 함께 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왜 계속 나를 쓰지? '왜 전폭적으로 믿지?' 궁금했어요. 하지만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부족함을 들키기 싫어 더 열심히 연기했고, 덕분에 실력이 조금씩 늘 수 있었죠."

박기웅의 시작은 '스타'였다. 2006년 한 CF에서 목을 기막히게 돌리는 일명 '맷돌춤'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유명세를 바탕으로 이듬해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2'의 주연으로 발탁되며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는 서두르고 조바심을 내기 보다는 조금씩 바닥을 다지며 '배우'의 영역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데뷔 초기에는 '연기를 잘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아등바등 일한 것 같아요. 하지만 연기를 시작한 지 10년이 되니까 이제는 보다 초연해졌어요. 제가 하고 싶은 배역을 고를 수 있고, 먹고 사는 데 지장도 없어졌죠. 이럴 때 욕심을 부리기 보다는 주ㆍ조연 가리지 않고 제가 가장 잘 하고, 하고 싶은 연기를 하려 해요. 늘 이 자리에서 똑같이 연기해 왔듯, 시간이 흐른 후에도 이 자리에 있고 싶어요."

사실 박기웅에게 분량은 그다지 중요치 않았다. 그는 매 작품마다 자기 만의 색을 담아 눈에 띄는 캐릭터를 만들어왔다. 양보다 질로 존재감을 부각시킨 셈이다. 지난해 개봉된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는 청나라의 왕자 도르곤으로, 드라마 '추노'에서는 '그분'이라는 독특한 역을 멋지게 소화했다.

"캐릭터가 분명한 '캐릭터 연기'를 할 기회가 많았어요. 이런 배역은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죠. 사실 그 동안 연기하면서 악역은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악역을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추노'와 '최종병기 활'의 역할은 단편적이고 성격이 뚜렷했지만 ??지는 보다 복합적인 악역이었죠. ??지가 악해질수록 각시탈이 '절대선'으로 보이게 되기 때문에 하기 위해 중요한 역이라 생각했어요. 제 연기가 '베스트'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름 만족하고 있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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