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다가 고객되더라" 사업 알리기 악용
제작진 속이기 치밀… "그것도 재주·능력"

'누가 감히 사랑을 시험하는가.' SBS 교양프로그램 '짝'(연출 남규홍)에 자주 등장하는 '명자막' 중 하나다.

'짝'이 또 시끄럽다. 출연자들의 프로필이 한 주가 멀다 하고 말썽이다. 'ROTC 특집'에 출연한 여자3호는 요리사로 소개된 것과 달리 온라인쇼핑몰 모델에 과거 성인 방송에 출연한 이력까지 드러나며 '대국민 사기극'이란 오명을 썼다. 급기야 제작진이 여자3호를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출연자에 문제가 생기면 화살은 제작진에게 돌아간다. 출연자 검증실패,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에 흠집 난 진정성 등 돌아오는 말은 아프다. 옳다고만 볼 수 있는 상황일까. 요리사라는 출연자에게 "쇼핑몰 모델은 아닌가요?"라며 의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알아봤다. '짝'을 비롯해 KBS 2TV 예능프로그램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이하 안녕하세요)와 케이블채널 tvN '화성인 바이러스' 등에 출연을 희망하는 일반인들에게 물었다. '누가 감히 시청자를 그리고 방송을 시험하는가. '일반인 출연자 천태만상'을 공개한다.

#"쇼핑몰 오픈에 맞춰 출연하려고요"

지난 주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남자 4명과 여자 2명을 전화인터뷰로 만났다. 일찍이 사업에 성공한 젊은 CEO나 피팅모델을 겸하고 있는 온라인쇼핑몰 운영자와 진행됐다.

자기소개서 면접족집게전략 등 취업관련 사이트를 신설 중인 31세 남성 김모 씨. 그는 올 하반기 '짝' 출연을 목표로 지원서 접수를 준비 중이다. 결혼을 생각할 나이기도 한 그는 "인연이 된다면 좋겠지만 안 되도 그만"이라고 소신을 전했다. 앞서 '짝'에 출연한 지인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그는 "친구도 처음부터 그런 목표로 나가진 않았지만 홍보효과가 톡톡했던 건 사실이다"며 "'신상털이'가 문제라는데 우리 같은 사업자들에겐 자동홍보 수단이다"고 말했다. "처음엔 비방하려고 찾아내지만 나중엔 고객이 돼 있다"는 전례가 이들을 혹하게 만드는 셈이다.

지난 달 액세서리 전문 인터넷 쇼핑몰을 창업한 28세 여성 최모 씨는 '짝'을 보는 관점부터 달랐다. 최씨는 "남녀관계도 재미있지만 누가 어떤 목적으로 출연했는지도 빤히 보인다"고 자신했다. 요리사라고 신분을 속인 여자3호도 "단번에 거짓임을 알았다"고.

그는 "나도 '짝' 출연을 홍보차원에서 고민했던 사람인지라 여자3호의 옷차림부터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방송 바로 다음 날 논란이 되는 걸 보며 '벼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내가 출연할게, 너는 글을 올려"

'벼르고 있었다'는 직감은 어디까지 확신할 수 있을까. 인터뷰를 통해 확실한 사안을 접할 순 없었지만 구체적인 정황은 포착할 수 있었다. A는 출연하고 B는 글을 올린 뒤 C는 댓글을 달고 D는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다단계'로 방송을 이용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

29세 여성 정모 씨는 지난 해 '화성인 바이러스'에 출연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친구가 피팅모델로 활동하다 쇼핑몰을 손수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강력한 마케팅이 필요했던 찰나에 '화성인 바이러스' 출연이 성사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청자를 속인다는 게 무서워서 포기했지만 친구가 출연한 뒤 내가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려서 논란거리를 만들어보자는 전략도 짰다"고 털어놨다.

최근 '짝'이 방송 직후 논란이 불거지는 현상이 두드러지기도 했다. 과거 성인방송 출연 경험이 있거나 유부남과의 불륜설로 구설에 오른 여성 출연자들이 뒤늦게 비난의 대상이 된 것과 달리 요즘은 반응도 즉각적이다. '신상털이'의 속도가 LTE급으로 빨라졌다는 우스갯소리가 일반인들 사이에서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한 프로그램의 제작관계자는 스포츠한국에 "논란이 짜인 각본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지만 왜 진실된 태도로 방송에 임해주지 않는 것일지 원망스러웠던 적은 많다"고 토로했다.

#"제작진 속이기? 그것도 재주"

제작진의 속은 탄다. 프로그램의 취지에 진지하게 임해준 다른 출연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시청자에게 실망감을 안기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방송 초반 논란거리가 많았을 땐 '인기의 척도'라 여겼지만 이제는 아니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은 물론 방송을 보는 사람들 모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없다는 지적이 방송가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반면 몇몇 비양심적인 예비 출연자들의 태도는 충격적이다. "제작진을 속이는 것도 그 사람의 재주고 능력이다"는 떳떳한 발언을 일삼는 이도 있었다.

중소기업 기획전략팀 직원에서 이미지트레이닝 사업에 뛰어든 33세 강모 씨는 어떤 프로그램의 취지든 '맞춤 출연'이 가능하다고 자부했다. 예를 들면 '화성인 바이러스'에서는 33년 동안 단 한번도 웃어본 적이 없는 사람, '안녕하세요'에서는 흉악범 인상 때문에 취업에 실패하는 사람으로 변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강 씨는 "결과적으로 내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출연하는 거 아니냐"며 "조작이나 거짓이 아니라 노력이고 능력을 살린 결과인데 비난 받을 일만은 아니란 생각도 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계속 반복되는 논란을 지켜만 봐야 할까. 문제는 현재 일반인 출연 프로그램이 이미 철저한 검증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점이다.

'화성인 바이러스'는 출연에 앞서 VJ와 화성인이 일주일 간 함께 생활하며 진실 여부를 평가하고 있다. '안녕하세요'도 제작 과정에서 사연검증에 가장 긴 시간을 투자한다. '짝'도 심층면접과 각종 서류증빙으로 확인작업을 거친다.

KBS 예능국의 한 관계자는 스포츠한국과 전화통화에서 "처음부터 그런 목적으로 접근한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솎아낼 수 있겠나"며 "1,000명 중 1명의 경우라 믿는 게 속이 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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