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밤'으로 안방 돌아온 정선희
그동안 스스로 벌 줬다… 이제 시청자에 다가가고 싶다
가족의 무게가 나의 힘… 사랑? '여자 정선희'는 없다

18일 첫 방송된 MBC '우리들의 일밤'의 코너 '남심여심'. 전국시청률 2%(AGB닐슨미디어리서치 기준)대 프로그램치고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방송인 정선희가 '남심여심'의 MC로 돌아왔다. 지상파 예능프로그램 고정 출연은 7년 만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슬픔을 잊을 만큼 고통스러운 항간의 루머가 7년 만에 회자된 순간이기도 했다.

"'방송은 보지도 않고 욕하네'란 억울함은 없었나"고 묻자 "낮은 시청률이 위안이다"며 웃는다. "그 미소는 카카오 함량 72%의 씁쓸한 초콜릿 같다"고 하자 "이제 정말 괜찮은데?"라며 여유를 부린다.

강한 긍정은 부정이라는데 신기하리만큼 밝은 모습을 보며 '정말 괜찮은 걸까'라는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2시간에 걸쳐 그가 밝힌 7가지 '예스 or 노'를 공개한다.

▲ '힐링캠프'? NO!

말도 탈도 많았던 연예인의 복귀에는 대게 '심경고백'이란 단어가 따라온다. 속내를 들여다봐주고 마음의 치료까지 도와주는 토크프로그램도 많은 요즘. 차라리 '힐링캠프'를 출연하지 그랬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배우는 장막이 있다. 드라마와 예능, 카메라 안과 밖. 전혀 다른 사람으로 오갈 수 있다. 개그맨은 다르다. 삶에 지친 시청자들은 우리를 보며 웃는다. 그런데 좋지도 않은 이야기를 주절주절 털어놔봐라. 스트레스 받지 않겠나."

▲ '일밤'의 이슈메이커? NO!

시청자는 개그맨을 보며 즐거워야 한다지만 정작 자신의 이미지는 마냥 즐거운 아이콘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밤'으로 돌아온 건 왜였을까? KBS 2TV '해피선데이'와 SBS '일요일이 좋다' 사이에서 고전한 '일밤'이 화제 만들기의 수단으로 자신을 섭외했다는 생각은 없을까.

"내 위주로 생각했다. 호흡을 타는 직업이기 때문에 '나 이제 괜찮아 방송할래' 이런 생각은 절대 아니었다. 내 인생에 매너를 지키고 싶었다. 스스로 그 동안 벌 줬다.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죄밖에 없지만. 과반수 이상의 시청자가 날 반겨줄 때가 올 거다. 그 시간이 언제인지 알려면 계속 얼굴을 들이밀어야 하지 않겠나. 시청자와 짝사랑도 너무 길었다."

▲ 자기만족 복귀? NO!

'이 정도 고생했으면 됐다'는 자기위안 덕분에 복귀가 성사됐지만 정선희는 더 이상 홀몸이 아니다. 어느덧 데뷔 19년차가 된 정선희. 수 많은 개그맨 후배들이 돌아온 그를 보고 있다. "당신의 복귀가 후배들에게는 힘이라더라"는 귀띔에 정선희는 눈물을 보였다.

"아, 자식들. 그렇게 생각해준다니 고맙다. 내가 잘 돼야 후배들을 끌어 줄 텐데….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안 된다 싶어도 되고, 된다 싶어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처지가 괴롭다면 '내가 남 다른 길을 가는 거구나'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죽어라 기억하지 말고 이걸 어떻게 웃음으로 승화시킬까를 고민하라는 거다. 그렇지 않고는 시청자들과 평범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없고 웃음도 줄 수 없다."

▲ 기구한 인생? NO!

후배들을 위한 조언은 방송을 쉬는 동안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진 주문이었다. "추억은 없고 기록만 남았다"고 표현한 자신의 인생을 원망한 적은 없었을까.

"어느 날은 집에서 TV를 보는데 내 옛날 모습이 화면에 나오더라. 모자이크 처리로 말이다. 방송하는 사람들한테 모자이크는 세상과의 단절이다. 한창 힘들어했을 때 안 좋은 생각도 들었다. 어느 순간 내 인생은 나만의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더라. 내가 쓰러지면 우리 엄마가 슬프겠지, 그럼 우리 아빠도 힘들겠지…. (김)제동이가 그러더라. '가족의 무게가 버겁지만 그걸 업고 오르막을 걷는 내 다리는 튼튼해진다'고. 나도 그렇게 단련됐다."

▲ 난 지금 행복하다? YES!

하나를 잃으면 또 다른 하나를 얻는 게 인생의 진리. 한때 '상실의 시대'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들었다는 그의 인생이라 빛을 본 것도 많았다.

"그 일을 겪기 전의 정선희와 후의 정선희는 달라졌다. 나는 같지 않은데 사람은 남았더라. 사랑한 사람을 많이 데려간 만큼 주변에 좋은 이들을 얻었다. 그리고 난 속수무책의 낙천주의자였다. 단기기억상실증에 단순하다. 울다가도 누가 드라이브를 시켜주면 그 한 시간이 행복했다. 나는 내가 견뎌낼 거다. 참 좋은 이 성향을 가지고 말이다."

▲ 방송보다 라디오? YES!

그가 새삼 깨달은 낙천적인 성향이 빛을 발한 곳은 라디오. 얼굴보다 목소리, 정오보다 심야라면 대중 앞에 나설 용기가 났다. 지난 2009년 SBS 파워FM '오늘 같은 밤'으로 활동을 재개했을 때의 이야기다. 정오에 희망곡을 틀어주던 정선희는 심야에 사연 읽어주는 친구로 돌아왔다.

"소심하고 두려운 자신을 마주하는 건 낮이 아닌 밤이다. 나도 심야에 생각이 많았다. 괴로움도 부풀려졌고. 심야를 더 어둡게 하진 않을까 걱정도 됐다. 그런데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이 맞다. 예전에는 고민이 담긴 사연을 읽으면 '내가 어떤 답을 줘야 하지'라는 부담이 컸다. 지금은 청취자의 사연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렸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덜어질 거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숭고한 인간이 아니다. 먹고 또 싸는 그런 인간이다. 삶에 대한 소리에 더 귀 기울이면서 열심히 살면 된다."

▲ 사랑? NO!

열심히 살면 된다는 그가 바라보고 있는 인생의 목표점은 어딜까. 다시 일어선 정선희, 후배들의 지원군, 날 닮은 청취자들의 친구…. 분명한 건 이 많은 그림 중 한 남자의 여자, 사랑에 빠진 여성으로의 모습은 꿈꾸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여자…. 머리가 너무 아프다. 사랑 이야기는 골치가 아프다. 일부러라도 '사랑은 생각이없다'고 말하는데 정말 그렇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여자 정선희'는 내 인생에서 페이지를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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