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역배우 여진구와 배우 김수현은 닮은꼴이다. 소년과 남자의 경계에 놓였다는 데서 그렇다. MBC 수목미니시리즈 '해를 품은 달'(극본 진수완ㆍ연출 김도훈)에서 극중 조선의 왕 이훤을 연기한 두 사람. 여진구의 어린 훤을 보며 시청자들은 '내가 이 소년을 남자로 느껴도 되나'라는 죄책감(?)을 느꼈다. 김수현의 어른 훤을 보면서는 '소년의 티를 벗지 못한 이 남자, 섹시하게 보이는 게 정상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결론적으로 여진구도 김수현도 시청자의 마음을 뺏었다. '김수현이 좋아, 여진구가 좋아?'라는 질문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보다 유치하지만 갈등되는 질문일 터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캐릭터를 만든 진수완 작가는 어땠을까.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초동 팬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만난 진 작가는 "첫 정을 생각해서…"라며 수줍게 웃었다.

"하하. 첫 정이 무서운 거죠. 아역배우들의 분량을 오랜 시간 걸쳐서 썼어요. 7,8부 쓸 때 돼서야 1회가 방송됐으니까요. 굳이 선택하라고 하면 진구의 훤이 수현이의 훤보다 제 심장을 더 울렸던 것 같아요."

진수완 작가가 여진구에게 손을 든 이유는 단순히 첫 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다른 미니시리즈에 비해 아역배우들의 분량이 많았던 '해를 품은 달'을 잘 소화해준 고마움 때문이기도 했다.

진수완 작가
"주변에서 걱정 많이 했어요. 아역배우가 길다고요. 사실 제가 고집을 피워서 길게 간 거였거든요.(웃음) 어느 순간 '성인배우들에게 정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아, 아역배우 분량 짧게 가라고 할 때 짧게 갈 걸 그랬나'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6회가 끝날 때 저도 참 허하더라고요. 아역배우들에게 빠져 나오기가 저도 힘들었어요. 고마워요. 예쁘고요."

진수완 작가는 여진구에게 한 표를 던진 듯 말하면서도 김수현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런데 진구한테는 미안하지만 7회가 시작되니까 '그래 수현이의 훤도 멋있어'라는 생각에 진구한테 느꼈던 감정도 정리가 되더라고요"라며 웃었다.

"김수현은 대본 연습부터 정말 많이 해왔던 배우에요. 오히려 연습이 과해서 틀에 박히면 어쩌나 걱정도 됐고요. 그런데 그 틀을 깨고 영리하게 연기를 해주더라고요. 이렇게 말하면 식상하지만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게 재미있는 배우에요. 앞으로가 궁금한 배우요."

여진구와 김수현에 대한 애정을 가감 없이 표현한 진수완 작가. 그가 꼽은 '해를 품은 달' 최고의 명장면 역시 두 사람에게서 나왔다. 여진구 김수현 각각의 신이 아닌 두 사람이 묘하게 오버랩된 장면이었다.

"8회에서 수현이의 훤이 팔굽혀펴기를 마구 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형선(정은표)에게 '돌아서있으라'라고 명령했던 장면이요. 오랜만에 왕이 된 훤에게서 세자 때의 장난스런 말투가 나왔던 신이었죠. 어린시절과 성인시절이 마치 1,2막처럼 나뉘어서 성인배우들이 상처를 받으면 어쩌나 고민이 많았던 때였거든요. 그 장면에서는 진구의 훤과 수현의 훤이 겹쳤다고 해야 할까요? 차갑게 변모됐던 훤이 형선과의 코믹 신으로 과거의 순수했던 모습으로 돌아온 느낌이었어요. 김수현과 정은표 두 분이 연기도 정말 잘 해줬고요. 어른 훤에게서 어린 훤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알고 연기해주신 것 같았어요. 많은 분들이 오열하는 신, 감정이 표출된 강한 신을 명장면으로 꼽는데 저는 그렇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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