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들 "출연 의욕도 꺾였어요"
B급 주연이나 조연들은 "그나마 괜찮아"

김수현 작가-배우 김희애
"그래도 개국할 때는 조금이라도 기대를 했는데 이젠 아무런 기대가 남아있질 않네요. 김수현 작가(TV조선 드라마 '아버지가 미안하다'), 김희애(JTBC 드라마 '아내의 자격') 등이 들어가도 외면 받잖아요."

국내 손꼽히는 매니지먼트사 대표의 말은 종합편성채널을 바라보는 연예계의 냉랭한 시선을 함축한다. 처음엔 혹시나 했는데 생각보다 시청자 반응이 없어 연예인들의 종편 출연 의욕도 꺾이고 있는 추세다.

종편 채널들의 야심작인 개국 드라마 성적표만 봐도 연예계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정우성과 한지민을 앞세운 '빠담빠담'(JTBC)과 최불암 유호정 주연의 '천상의 화원 곰배령'(채널A), 제작비 100억원대의 대작 '한반도'(TV조선)의 시청률은 2%안팎이 최고였고, 0%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상파에선 곡소리가 날 시청률이지만 종편의 다른 프로그램에 비하면 그나마 높은 축에 속한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개국 드라마인데다 출연료도 높아 톱스타들이 출연했지만 요즘 같은 분위기라면 톱스타들이 앞으론 종편을 선택하지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돈만 주면"이라는 종편 개국 초기의 연예계 정서가 "굳이 해야 하나"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종편 드라마 출연진은 지상파 드라마 출연 때보다 높은 몸값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종편 덕을 보는 연예인들도 없지 않다. 연예계 관계자는 "나이가 많이 들어 이젠 인기가 시들한 B급 주연이나 인기 조연 배우들은 종편 개국으로 드라마 제작이 대폭 늘어나면서 몸값도 오르고 출연 기회도 많아졌다"고 전했다.

그러나 종편 업계의 초미의 관심사였던 '한반도'가 처참한 시청률 성적표를 받으면서 종편사들이 드라마 제작에 계속 투자를 할지 의문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드라마 제작을 대폭 줄일 경우 연예계 특수도 얻은 게 없는 반짝 특수로 끝날 수밖에 없다.

제작비 후려치기·조기종영·편성교체… 외주사들 존폐위기 몰려

이명박 정부가 지난 4년간 골몰해온 언론ㆍ미디어정책의 한 축이 공영방송을 비롯한 방송계 장악이었다면, 다른 한 축은 온갖 특혜 속에 탄생시킨 종합편성(종편)채널 밀어주기였다. 보수언론들에 방송 진출의 길을 터준 데는 방송을 제 편으로 만들지 않고선 정권 유지도, 재창출도 어렵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점에서 두 축은 실상 동전의 양면이나 다름없다.

종편이 9일로 출범 100일을 맞는다.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미디어법을 근거로 선정된 종편은 일찌감치 예상됐던 대로 보수신문 조선일보(TV조선), 중앙일보(JTBC), 동아일보(채널A), 매일경제(MBN)에게 돌아갔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와 여당이 종편 강행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글로벌 미디어 육성과 방송 다양화, 그리고 외주제작 활성화를 통한 방송산업 경쟁력 강화. 출범 석 달이 지나도록 0%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저조한 시청률로 투자금 회수마저 어렵게 된 상황에서 글로벌 미디어는 물 건너 간지 오래다. 그렇다면 외주사들의 형편은 나아졌을까.

"시청률이 안 나온다고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폐지했다. 초기 투자비용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구두계약 후 제작을 계획하고 막상 촬영에 들어갈 무렵 금액이 높다고 계약불가를 통보해 울며 겨자먹기로 삭감했다." "방송사에서 편성을 계속 바꾸니 협찬사가 협찬을 중단해버렸다. 손해가 막심하지만 하소연도 못한다." "종편이 협찬을 따오면 100% 가져가고, 외주사가 따오면 10%만 갖고 종편이 90%를 가져간다고 계약했다."

외주제작사 관계자들이 털어놓은 사례에서 보듯이 현실은 참담한 수준이다. 시청률이 기대에 한참 못 미치면서 '제작비 삭감→외주사 고혈짜기→프로그램 질 하락'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외주제작사 1,500여개 가운데 실제 활동을 하는 곳은 200개 남짓. 그간 지상파 방송사들의 횡포에 가슴앓이를 했던 군소 제작사들은 당초 종편이 4개씩이나 생겨 시장이 커지자 환영했다. 그러나 '장밋빛 청사진'은 부도수표가 됐다. 특히 계약서도 쓰지 않은 채 구두 약속만 받고 프로그램 제작에 뛰어든 업체들이 빚더미에 앉거나 존폐 위기에 처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

상황이 악화하자 다큐, 시사, 오락 프로그램들을 만드는 외주사들로 구성된 독립제작사협회는 지난달 23일 긴급하게 '종편 피해보고와 대책회의'를 가졌다. 돈을 떼인 회원사들도 다수였고, 종편에서 편성을 수시로 바꿔 협찬이 떨어져나가는데도 제작비 보전을 해주지 않아 빚을 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외주사 몫인 협찬 유치를 가로채거나 일단 도장을 찍어야 제작비가 나온다고 협박해 놓고 막상 제작에 들어가면 절반 이상 삭감하는 등 횡포도 심각했다.

신상용 독립제작사협회 사무총장은 "종편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지만 한번 바른소리 했다가 찍히면 바로 망하기 때문에 대놓고 말도 못한다"고 전했다. 협회는 제작비를 어음으로 주는 등 전례 없던 일까지 발생해 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며 피해 사례를 모으는 등 공동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신 사무총장은 "정부에서는 뭐하고 있는 지 모르겠다"고 분노했다.

지상파와 결별을 선언하고 채널A에 다큐멘터리 '오래된 인력거'를 납품했던 독립PD 이성규씨는 "종편에 기대했던 건 순진했다"며 절망적인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당초 종편은 저작권과 2차 저작물 권리까지 다 챙겨가는 지상파와 달리 저작권 일부만 가져가는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했다. 여기에는 MBN을 제외한 종편 3사가 모두 참여했다. 그러나 JTBC의 '우보기행'은 단 한차례만 방송된 후 종영되는 등 공정거래 환경은커녕 최소한의 상도의마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제작비의 절반 정도만 지급하고 나머지는 외주사가 협찬을 받아 채우는 게 방송계의 오랜 관행이었으나 종편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외주사 대표는 "협찬을 빌미로 제작비를 턱도 없이 삭감하는 게 비일비재하다"며 "프로그램에 어울리지 않는 협찬이라도 일단 받고 봐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7월 공공미디어연구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다큐멘터리 '트루맛쇼'가 폭로한, 엉터리 맛집을 소개해주고 뒷돈을 받는 문제가 종편 체제에서 심화할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지나친 예단으로 비쳤던 "'트루맛쇼'는 종편의 미래"라는 예측이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종편 밀어주기에는 앞장섰던 방통위는 어설픈 시장논리를 앞세워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최근 시민ㆍ언론단체들이 연대해 발족한 미디어커뮤니케이션네트워크는 "종편 도입은 정치 보은이었고 동시에 정권 재창출을 위한 미디어 2중대 구축"이었다며 종편의 폭력적 행위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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