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회만을 남겨놓고 있는 MBC 수목미니시리즈 '해를 품은 달'(극본 진수완ㆍ연출 김도훈). 전국시청률 40%(AGB닐슨미디어리서치 기준), 수도권시청률 45%를 돌파했지만 아직 치달을 정점이 두 번이나 남았다.

TV를 보지 않던 사람들을 안방극장으로 끌어들일 만큼 '해를 품은 달'은 인기를 얻었다. 도대체 무엇이 '해를 품은 달'에 열광하게 했을까. 수많은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감독의 변만큼 정확한 대답은 없을 터다. 19회 허염(송재희)과 민화(남보라)의 '폭풍오열감정신' 촬영에 한창인 김도훈 PD를 3일 오후 경기도 이천 호법 실내 세트장에서 만났다.

"'해를 품은 달'의 인기는 저도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웃음) 무엇보다 이야기의 서사가 완벽해서 아닐까요?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좋았고, 이들이 엮인 관계가 참 맛깔스러웠어요. 드라마는 재미를 떠나서 감정이 말이 되냐 안 되냐가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그 감정선이 남녀노소를 불문한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준 거죠."

김도훈 PD와 '해를 품은 달'이 이렇게 잘 맞는 궁합일 줄 처음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본인 스스로도 탐탁지 않은 작품이었다. 드라마 '로열패밀리'(2011) 종방 후 충분한 휴식을 갖기도 전이었다. 게다가 사극이라 부담됐고 퓨전사극이라니 더욱 어려웠다.

"대본을 보기 전까지는 정말 안 하려고 했어요. 1,2회 대본을 읽었는데 '어? 잘만 하면 기본 시청률 이상 나오겠는데?'라는 직감이 왔죠. 그 후에 진수완 작가를 만났어요. 재미있는 분이었어요. 밤새 술도 많이 마셨죠. 독주는 못 드시는데 밤새 맥주를 마시는 무서운 분이더군요.(웃음)"

진수완 작가의 만남은 '해를 품은 달'에 대한 애정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하지만 김도훈PD는 그럴수록 '해를 품은 달'이 어려웠다. 왕과 무녀의 사랑, 세상에 없던 액받이 무녀의 등장 등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 놓인 드라마의 모호한 정체성 때문이었다.

"정말 재미있는데 이야기가 현실인지 이상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감독이 이해를 못하면 배우나 시청자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결국에 내린 답은 '애매하게 가자'였어요.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못 정하겠으면 그 경계를 아예 흐려버리자는 결론을 낸 거죠."

김도훈 PD는 이야기 전개뿐 아니라 캐스팅 법칙에도 '경계 허물기'를 적용시켰다. 특히 아역 배우들을 섭외하는 과정에서 공을 들였다. 소년과 남자, 소녀와 여자, 그 사이에 놓인 외모를 가진 아역 배우를 찾는데 매달렸다.

"여진구를 보면서 시청자들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내가 이 아이를, 아니 이 남자를, 좋아해도 되나?' 제가 의도한 게 바로 이런 점이었어요. 이 어린 배우에게 마음을 뺏기는 게 맞는 건가라고 헷갈릴 수 있는 캐스팅을 노렸거든요. 아역 배우들의 비중이 6회나 됐어요. 단순히 어린 시절을 연기하는 게 아닌 어른들의 축소판을 보여주는 역할이었고요. 역할 자체가 어른인 듯 아이 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외모 역시 비슷한 느낌을 줘야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역 배우들에게 한 없이 고맙지만 방송 초반 걱정이 컸던 것은 사실이다. 김도훈 PD가 '해를 품은 달'의 승부수를 아역배우가 아닌 1회 특별 출연한 배우 장영남에게 던진 이유이기도 하다.

"1회에서 무녀 아리(장영남)가 고문으로 죽었어요. 이 장면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압도할 수 있겠다 싶었죠. 한편으로는 이 장면 아니면 시청률 놓치겠다는 걱정도 됐고요. 무조건 공을 들이자고 마음 먹었어요. 현장에서는 스태프의 불만이 장난 아니었죠. 금방 사라질 인물인데 10시간 가까이 촬영을 하니까요. 그런데 시청률이 잘 나왔고, 아리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죠. 그 후로는 현장에서 제 말에 스태프 모두 잘 따라와주더라고요.(웃음)"

김 PD는 "앞으로도 배우나 스태프나 주변 사람들이 많이 따르겠다"는 말에 "앞으로의 일은 또 다른 문제다"고 선을 그었다. 김도훈 PD는 4년 전인 2008년을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

"'해를 품은 달' 같은 작품은 로또에요.(웃음) 언제 이런 작품을 또 만나보겠어요. 저도 옛날에 실패한 작품을 했었어요. '스포트라이트'라고…. 같은 시간대 시청률 꼴찌였고 그 후로 3년 동안 작품을 못했죠.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평소 안 보던 예능ㆍ교양프로그램을 다 봤어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건 따로 있는데 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는구나.' '스포트라이트'를 계기로 연출에 대한 마인드를 바꿨어요. 다음 작품을 위해 '해를 품은 달'의 성공은 잊어야죠. 사람에 대한 이해와 관심, 그것만 가지고 갈 겁니다."

'해를 품은 달'을 잊기 위해 주어진 시간은 최소 한달. 1년은 쉬고 싶지만 여건이 따라와주지 않을 것 같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대박 시청률'은 이뤘으니 다음 목표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을 내놨다.

"없어요. 아무것도. 드라마 PD로서 이루려는 목표는 없습니다. 하루하루 어떻게 재미있게 살지를 고민할 뿐이에요. 재미라는 건 적당한 긴장과 적당한 편안함, 적당한 애정과 갈등을 유지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드라마PD로서, 인간 김도훈으로서 이 목표만 생각하면서 살 거에요."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