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힘 커진 결과… 사회적 불만도 반영

"사람들이 음모론적 시각으로 프로그램을 바라보더라고요. 어떻게 만들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MBC '나는 가수다'의 김유곤 PD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하며 예능 프로그램이 의혹과 구설의 타깃이 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는 비단 '나는 가수다' 만의 문제가 아니다. MBC '위대한 탄생'이나 엠넷 '슈퍼스타K' 등 인기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은 인기에 비례해 각종 논란에 시달린다. 웃음과 감동을 줘야 할 예능 프로그램들이 의심과 원성을 사고 있는 것이다.

◇서바이벌 리얼리티의 구조적 문제 = 이런 현상은 시청자들의 참여도가 높은 서바이벌 리얼리티에서 유독 두드러진다.

'나는 가수다'는 최근 출연가수간 불화설과 옥주현에 대한 특혜 시비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위대한 탄생' 역시 시청자 문자 투표 결과를 공개하지 않으면서 결과가 조작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KBS 2TV 밴드 오디션 '톱밴드'는 출연 밴드와 심사위원간 사전교감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슈퍼스타K 2'는 작년 존박의 내정설이 불거졌으나 허각이 우승하면서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결과 조작이나 사전교감설 등 각종 음모론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의견이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시청자의 힘의 커진데 따른 부작용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중문화평론가 김교석 씨는 17일 "서바이벌 리얼리티는 시청자 의견이 빠르게 반영되다 보니 시청자의 힘이 리얼 버라이어티보다 크게 작용한다"며 "시청자가 자신들이 결과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결과가 마음대로 안 됐을 때 음모론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림대 강명현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따지고 보면 순위는 주관적인 선호도의 표현인 셈인데 여기에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잣대를 들이댄다는 문제가 있다"고 해석했다.

◇프로그램과 사회에 대한 불만의 표출 = 프로그램을 향한 음모론적 시각은 사회적 불만과 무관하지 않다.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사회가 불공정할수록 방송에서는 그렇지 않은 이상적인 상황을 기대하기 마련이다"며 "현실에서 충족되지 않는 사회적 가치가 방송에서는 제대로 실현되기를 바라는 기대가 과도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해석했다.

한 지상파 방송사 간부는 "방송이 세태를 반영한다지만 시청자들이 사회에 대한 불만마저 예능에 푸는 것 같아 당혹스럽다"며 "사회가 추구해야 할 공정성과 진정성을 웃자고 만드는 예능에서 찾길 바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음모론은 제작진이 시청자들의 상식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결과가 기대했던 것과 달리 나타날 때 현실과 기대 간 간극을 줄이기 위해 '뭔가 더 있다'는 음모론이 불거진다는 것.

정신과 전문의인 하지현 건국대 교수는 "사람들은 상식적인 생각의 흐름에서 벗어났다고 느껴질 때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방송 조작이 예전에도 있던 일이란 점에서 의심스런 일이 조금만 생겨도 조작을 의심하게 된다"고 해석했다.

하 교수는 "옥주현의 경우 시청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출연 가수 레퍼런스(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이 들어왔다고 느낀 것"이라며 "만약 초반 출연가수에 (같은 아이돌 출신인) 은지원이 있었다면 옥주현이 투입됐을 때 별 문제가 없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논란 소지 없애는 게 우선" = 음모론이 거세지면서 편집마저 시청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일이 빚어진다.

'나는 가수다'는 지난 12일 방송에서 기술적인 사고로 옥주현이 다시 노래하는 모습을 방송했다. 일반 음악 프로였다면 편집됐을 장면이지만 특혜 의혹을 불식하기 위해 제작진은 NG컷까지 모두 방송하기로 결정했다.

신정수 PD는 "하다보니 이게 예능인지 다큐인지 헷갈린다"며 "프로그램에 대한 부담 때문에 가수와 제작진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씁쓸함을 내비쳤다.

한 지상파 예능 PD는 "요즘 리얼리티 프로를 보면 이렇게까지 하면서 방송을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신경을 쓴다고 하지만 작은 실수까지 부풀려지다보니 프로그램 만들기가 무섭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음모론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제작진이 겸허히 시청자의 지적을 수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교석 씨는 "논란이 될 만한 요소는 솔직하게 밝히고 실수는 빨리 인정하는 게 논란을 쉽게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며 "자꾸 변명하거나 감출수록 사람들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이창현 교수는 "제작진은 현실세계에 대한 잠재된 불만이 확대 재생산되는 계기를 방송이 제공해 준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행여라도 시청자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이 보다 관대한 태도로 프로그램을 즐길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강명현 교수는 "예능은 예능 그 자체로 봐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거나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몰아가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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