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무대에서 죽어야 한다.”

25일 세상을 떠난 원로 배우 김인문(72)의 연기 철학이다.

고인은 2005년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회복했지만 방광암에 걸리는 이중고를 겪었다. 병원에선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김인문은 끊임없이 연극 무대에 오르고, 영화 촬영장에 나갔다. (2006년)과 (2007년), (2011년)는 김인문이 목숨을 걸고 출연한 덕분에 완성된 영화다.

# 공무원에서 배우로

1939년 경기 김포에서 태어난 김인문은 동국대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공무원이 됐다. 1963년 김인문은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서울로 갔다. “정신 나간 놈”이라는 부모의 만류도 배우가 되겠다는 그의 꿈을 꺽진 못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에게 쉽사리 배우의 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먹을 게 없어 물로 배를 채우기가 일쑤였다.

김인문은 7개월 동안 김수용 감독 집을 방문한 끝에 기회를 잡았다. “그 얼굴로 배우를 한다고? 배우는 아무나 하나? 미남도 아니고 개성도 없잖아!” 김 감독의 호통에 김인문은 따졌다. “스타니슬랍스키의 배우론을 보십시오. 배우로서 가장 대성할 얼굴은 평범한 얼굴이라고 했습니다. 차이를 만드는 건 상상력뿐입니다.” 배우 지망생이 사실적 연기를 도입한 러시아 연출가 겸 배우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를 들먹이며 유명 감독에게 훈계한 셈이다. 김 감독은 김인문에게서 될성부른 떡잎을 발견했고, 이 일을 계기로 김인문은 영화계에서 일하게 됐다.

# 서민의 아버지 김인문

김인문은 1968년 영화 (연출 김수용)을 통해 배우가 됐고, 이후 구수한 인상을 앞세워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활동했다. 드라마 사상 역대 최고 시청률(65.8%)을 기록한 KBS 과 등에서 마음 따뜻한 아버지로 시청자 눈길을 사로잡았다.

을 연출했던 이응진 PD는 “수많은 배우 가운데 소시민적인 모습을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했다”고 기억했다. 이 PD는 “김인문 선생은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맛과 향이 나는 연기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김인문은 에서 최수종과 배용준의 아버지 역을 맡았다. 이런 까닭에 일본에선 ‘욘사마 아버지’로도 불렸다.

김인문은 90년부터 2005년까지 KBS 드라마 에 출연했다. 고인은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에 출연하지 못하게 되자 못내 아쉬워했다. 뇌경색을 이긴 김인문 앞에는 방광암이 기다리고 있었다.

# 자전적 영화 독 짓는 늙은이

뇌경색과 방광암은 끊임없이 김인문을 위협했다. 그러나 고인은 2007년부터 장애인 배우를 가르쳤다. 영화 (연출 소재익)는 김인문의 유작. 치료가 우선이었지만 배우 김인문은 무대에서 죽기를 원했다. 초인적인 의지로 지난해 2월부터 카메라 앞에 섰다. 식이요법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했지만 지난해 5월 쓰러졌다. 소재익 감독은 대본을 수정해 김인문의 삶을 영화에 담기 시작했다. 올해 1월말 마지막으로 촬영하던 날 하늘에선 눈이 내렸다.

배우는 무대 위에서 죽어야 한다던 김인문은 를 완성한 뒤에야 눈을 감았다.

스포츠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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