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살지만 한국인이란 점에 큰 자부심…
안될 것이라는 선입관 버려야 세계무대 성공"

"미국에 살고 있지만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인 최초'라는 타이틀에 아주 큰 자부심이 있고 기분이 좋습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톱 모델 혜박(26) 씨는 세계를 무대로 하지만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뉴욕과 밀라노, 파리 등 세계 유명 패션쇼 무대에 선 그는 한식을 좋아하고 한국인 남편을 위해 닭볶음탕을 요리하는 평범한 주부이기도 하다.

늘 모델업계에서 `동양인 최초', `한국인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그는 1999년 중학교 3학년을 다니다 가족과 함께 미국 유타 주로 이민을 가 유타주립대를 다녔다. 한국명은 박혜림이지만 미국 모델 에이전시에서 `혜박(HYE PARK)'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지난 3일(이하 현지시간) 동양인 최초로 프랑스 파리 `발망' 패션쇼 무대에 서 또다시 주목받은 박 씨를 10일 로스앤젤레스(LA) 한국문화원에서 만났다. 세계적인 명성에 걸맞지 않게 한국에서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그의 생활과 모델이야기를 들었다.

박 씨는 지난해 1년간 패션쇼 무대에 서지 않았다가 이번 발망쇼를 시작으로 다시 패션쇼 무대로 돌아왔다. 그는 "모델 일도 오래했고 결혼 후에도 남편과 많이 떨어져 지내다 보니 공부도 하고 싶고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에이전시랑 상의해서 쉬다가 이번 발망쇼에서 다시 무대에 섰다"고 말했다.

그는 "5년간 모델을 하면서 유명하다는 쇼에서는 거의 다 서봤지만, 톱 모델들이 서는 발망쇼에는 그동안 기회가 없었는데 파리 보그(Vogue)지 편집장이 추천해 이번에 기회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수많은 유명 패션쇼 무대에 올랐지만 그에게도 아직 서고 싶은 무대가 있다고 한다. 캘빈 클라인 쇼가 바로 그곳이다. 이 패션쇼는 동양인이나 흑인에게 배타적이며 중국 모델은 선 적이 있지만 한국인은 아직 밟지 못했다는 것이다.

10대에 이민 왔지만, 그의 한국말은 유창하다. "부모님이 미국에 와서도 집에서 한국말을 쓰시니까 어릴 때부터 집에서 한국말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지난 2008년 5월 테니스 코치인 브라이언 박씨와 결혼해 현재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 카운티에 살고 있다. 패션쇼나 화보 촬영 등의 일정이 없을 때는 집에서 소속사인 `트럼프모델매니지먼트'와 이메일로 연락하면서 평범한 주부로 돌아간다.

결혼 후에도 `모델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이 있을까. 그는 "중요한 쇼가 잡혀 있으면 식사를 조절한다"면서 "한식을 제일 좋아해 집에서 한식만 먹고 패스트푸드는 거의 안 먹는다. 식사량이 적지는 않지만, 살이 찌지 않는다"고 전했다. 제일 잘하는 요리는 닭볶음탕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모델로 성공하기까지 이야기가 이어졌다.

박 씨 가족은 경기도 안산에 살다가 이민을 위해 캐나다와 호주 등을 알아보다가 외삼촌 가족이 사는 유타 주로 오게 됐다. 박 씨는 유타주립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다 1학년을 마친 후 모델을 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나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모델이 꿈이었는데 한국에서는 예쁜 사람들이 모델을 하니까 그냥 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고, 미국 와서 고교 때 동물을 좋아하다 보니 수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수의사가 되려고 생물학을 전공하게 됐다"고 말했다.

길거리 캐스팅으로 모델이 된 사연도 전했다.

박 씨는 "미국서 고등학교 때도 모델 에이전시 사람들이 쇼핑몰 등에서 마주치면 명함을 주면서 모델 제의도 했지만 그때는 부모님이 모델을 반대했다"며 "특히 생물학 전공도 하길 원했지만 패션공부도 하고 싶어 뉴욕의 파슨스스쿨과 FIT에도 지원해 붙었는데 부모님들이 가지 말라고 반대했다"고 덧붙였다.

그 후 대학 1학년 때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기차에서 내렸는데 어떤 사람이 모델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또 했고 그때는 부모의 허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뉴욕에 가자마자 박 씨는 일약 스타가 됐다. 그는 "2005년 초 뉴욕에 가서 캐스팅을 위해 여러 군데 다녔는데 유명 패션 사진작가 스티븐 마이젤에게 발탁돼 이탈리아 패션잡지 보그에 촬영을 하게 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라고 말했다.

이 촬영을 통해 디자이너들에게 얼굴이 알려지면서 마크 제이콥스 등 여러 패션쇼에 서게 돼 한달반 동안 뉴욕, 밀라노, 파리에서 90여개 패션쇼 무대에 올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 씨에게 가장 기억이 남는 쇼는 2005년 마크 제이콥스 패션쇼다. 그것을 계기로 패션업계에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할 수 있을 때까지 모델을 하고 싶지만 그만두게 되면 평범하게 공부를 하고 싶다"며 "모델을 하면서 대학생활을 못하게 된 것이 아쉽다"고 밝혔다.

낡은 질문이지만 세계무대 진출을 꿈꾸는 한국 후배 모델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한국사람이나 동양인이라고 안될 것이라는 선입관을 버리고 똑같은 모델이라고 생각하고 모델 일을 하면 똑같은 대우를 받으면서 일할 수 있다. 자신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세계 정상급 모델에게 옷을 잘 입는 법을 물었다. 비결이 따로 있을까.

"자기 자신한테 일단 어울리는 옷을 입는 것이 좋은데, 저도 모델 일하면서 유행을 따라가는 것보다 자기에게 맞는 스타일을 계속 알아가면서 입고 있습니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범상치 않은 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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