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택의 연예 X파일(4) 연예인 재교육
60년대 스타들, 지금과 비교하면…

섹시 디바 이효리가 60년대에 데뷔를 했다고 치고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로 한다.

첫째, 빨간 머리염색? 어림도 없다. 머리 스타일만 조금 이상해도 말이 많았다. TV방송국이 둘 밖에 없던 시절이어서 제대로 변명할 기회도 없었다.

배우 엄앵란이 영화 '맨발의 청춘'에서 주인공의 캐릭터를 살리느라고 가발을 썼는데 그게 화제가 될 지경이었으니까. 둘째, 미니스커트를 입고 웨이브를 추면서 섹시한 포즈를? TV출연 금지는 물론 가요계에서 당장 아웃이다.

셋째, 앞가슴이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옷을 입고 노래를? 출연은 한번 뿐이고 곧바로 은퇴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효리는 시대를 아주 잘 타고 난, 운이 좋은 스타이다.

그러면 효리는 오직 운만 좋아서 인기를 누릴까? 그렇지가 않다.

타고난 가창력, 귀엽고 섹시한 얼굴과 S라인 몸매, 그리고 철저한 자기 관리와 얄미울 정도로 타이밍을 잘 맞추는 매니지먼트 등 4박자가 맞아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인기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효리의 인기가 지속될까?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방심을 하면 언제든 팬들은 외면해 버린다.

지금 그녀는 두 가지의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면서 효과적으로 '선공'하고 있다.

인기란 결국 공격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선공'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방어만 해서는 인기 관리가 힘들다는 것을 그녀의 선배들이 증명하고 있다. 효리의 두 가지 다른 이미지란, 첫째는 무대 위에서 노래할 때 보여주는 화려함과 섹시함이다. 다른 하나는 SBS-TV '패밀리가 떴다'에서 나타나는 망가진 것 같으면서도 털털하고 순수한 이미지가 그것이다.

무대 위에서나 '패떴'(패밀리가 떴다를 줄여서)에서나 의식적으로 카리스마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 또한 그녀, 또는 소속사 관계자들의 치밀한 계산일 것이다. 여기서 소속사의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

그녀의 나이는 지금 만 29세(1979년생)이고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정상에 올라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상의 인기는 수 십년씩 가지 않는다.

영화배우 김지미, 문희, 윤정희, 엄앵란, 고은아, 신성일, 남궁원, 신영균과 가수 최희준, 남일해, 남진, 나훈아, 현미, 이미자, 패티김, 윤복희 등등.

이런 스타들도 다들 어느 시점에 정상에 있던 톱스타들이지만 정상에 선 채 수 십년씩 있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런 고민을 함께 얘기하고, 풀어 보자는 뜻에서 1960년대 중반에 '한국연예개발협회'라는 단체가 만들어졌다.

따지고 보면 연예인들은 매우 외롭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얼굴이 알려져서 사생활 침해를 받기 일쑤이고, 자칫하면 실망했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다반사이다. 그래서 연예인들의 사랑방 구실도 하고, 멘토(mentor) 역할도 하며, 필요에 따라서 재교육도 하자는 취지였다. 실제로 일부 가수들은 미국 팝송을 부를 때, 영어를 우리 글로 옮겨 적은 것을 가지고 무작정 외워서 노래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도 아주 없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반적 상식이나 역사적 사실을 몰라서 인터뷰 때 진땀 흘리는 일은 지금도 흔하다. 그래서 노래 부르는 일, 춤추는 일, 연기하는 일, 웃는 일, 우는 일 이외에 세상 이야기, 사회적인 규범, 고전 문학이나 음악 등등 교양면에서도 재교육을 해보자는 취지다.

재교육이라고 하면 거부감이 생길 테니 포럼이나 살롱과 같은 분위기로 운영하려고 했다. 지나치게 까다롭거나 어려우면 배우나 가수들이 도망가 버릴 수도 있어 아주 편하게 시작하기로 했다. 이것은 나의 아이디어였는데 호응하는 사람이 아주 많아서 스태프들이 30명이나 될 정도로 시작이 좋았다.

그 당시 문화공보부(지금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이었고 지금은 성남아트센터 사장인 이종덕, 작사가 전우, 하중희, 백운춘, KBS PD 송영수, 한정진, 고기찬, MBC의 도상보, 나수성, 최광민, TBC의 황정태, DBS의 강수향, 김영선, 이해성, CBS의 민주홍, 경향신문의 이상벽(지금도 방송인으로 활동 중), 일간스포츠에 있다가 선데이서울로 간 원형걸, 중앙일보(주간중앙)의 서병후, 가요계 프리랜서 매니저 이한복, 워커힐 연예부장 이봉기 등등이 스태프로 자원했다.

그리고 그들은 덜컥 나를 회장으로 선출했다. 이 단체에서 필요한 경비는 각자가 알아서 내는 회비로 충당하기로 하고 얼마씩 갹출을 했다. 사무실은 무교동에 있는 '산다'빌딩 2층에 얻었다.

그리고 회원들이 저마다 사업계획을 제출토록 했다. 영리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제한이 있었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다. 그 중에는 지금 응용해도 좋을 것들이 있다. 이 단체는 우선, 재능은 있는데 연예인이 되는 길을 모르거나 훈련을 위한 레슨조차 받을 형편이 못 되는 연예인 지망생을 이끌어 줬다.

또 연예계 데뷔는 했지만 빛을 못 보는 젊은이들은 도와주되 인기가 있다고 품위를 떨어뜨리는 등 물의를 일으키는 연예인들에게는 충고를 해 주는 일 등을 시작했다. 말이 충고지 실제로는 크나큰 제재를 가하기도 했다. 이때 주로 토론의 주제로 많이 얘기됐던 것이 "인기 정상에서 오래 머물 수 있는 기본 자세란 어떤 것인가?"였다.

나는 이 주제를 가지고 여러 번 자체 세미나를 열었고 대학 교수, 영화 평론가, 레코드 제작 관계자 등의 의견을 듣기도 했다.

톱스타가 되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올라설까"라고 고심하겠지만, 정상에 서 있는 사람은 인기가 떨어질 때 겪을 정신적 부담 때문에 더 큰 고민을 한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산의 정상에 서 보면 세상이 아름답다. 그러나 정상에 올라가는 과정이 어떤 것인가를 깊이 새겨 봐야 한다. "

칸트의 말이다. 정상까지 올라갈 때의 마음가짐을 간직하면 그곳에 오래 머물 수 있는 방법도 터득할 수 있을 것 같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이효리를 아끼는 사람으로서, 그녀가 오랫동안 정상에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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