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베스트] 세상을 바꾸는 퀴즈
멍석만 깔아주면 인생 달인들 무한토크… 비방송용 대화에 제작진 '눈물의 통편집'
37세 MBC 박현석 PD는 요즘 간부급 선배들에게 "프로그램 잘 보고 있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주로 중장년층의 선배들이 부인과 함께 즐겨 본단다. 혹자는 박 PD의 프로그램을 '중장년층의 '이라고 표현한다.
한 번 보면 주변 사람들에게 '꼭 보라'고 추천할 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그가 연출하는 프로그램은 MBC 의 '세상을 바꾸는 퀴즈'다.
# 왜 '세상을 바꾸는 퀴즈'(이하 세바퀴)인가?
'세바퀴'는 '주부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기획의도를 갖고 지난 5월 첫 방송됐다. 개그우먼 이경실 김지선, 배우 임예진 이승신, 가수 현미 양희은 등이 '세바퀴'의 터줏대감이다. 평균 연령은 불혹을 훌쩍 넘긴다.
박현석 PD는 "당초 실생활 상식을 공부하며 소소한 것부터 바꿔나가자는 의도로 시작했다. 이제는 컨셉트를 바꿔 남녀의 뚜렷한 시각 차이를 공유하면서 서로를 이해하자는 방향으로 나간다"고 밝혔다.
# 통제가 안 된다?대한민국 아줌마들의 입담은 강했다. 일단 말문이 터지기 시작하면 PD도 말릴 방법이 없다. 비방송용 대화가 오가고 흉허물 없이 서로의 속내를 묻고 답한다. 이혼 경험이 있는 출연자가 결혼에 대해 조언하면 "왜 '갔다 온' 사람에게 결혼을 물어"라며 치고 들어온다. 이혁재가 "아내의 엉덩이를 깨문 적이 있다"고 말하자 '아줌마'들은 "나도 오늘 깨물어 달라고 해야겠다"며 까르르 웃는다.
3시간이 넘는 녹화가 진행되는 도중 갑자기 자리를 비우는 출연자도 있다. 이유가 가관이다. 태연하게 "화장실에 다녀왔다"고 하는가 하면, "급히 은행에 좀 다녀와야겠다"고 녹화를 중단시키기도 한다.
박현석 PD는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중요하다 보니 출연자들의 의지에 맡긴다. 대신 솔직하다. '세바퀴'에서는 이혼도 삶의 일부다. 아픔을 공개함으로써 위로를 받고 서로를 보듬는다. 출연자들의 돌출 행동에는 PD도 대책이 안 선다"며 웃어 버린다.
# 걱정은 따로 있다?
제작진은 그야말로 '멍석을 깔아 주고' 3시간 넘게 출연자들을 '방치'한다. 막상 편집이 시작되면 제작진은 머리를 싸맨다. 재밌게 편집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 타 PD들과는 상황이 다르다. 즐거운 얘기가 오가다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비방송용 대화가 터져 나온다. 결국 이야기 전체가 '통편집'된다.
박현석 PD는 "이 장면을 넣을까 말까 고민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털어 놓는다. 술자리에서 늘어놓는 음담패설이 더 자극적이고 재밌다는 사실과 맞닿은 결과다.
방송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정말 재미있는 장면을 과감히 편집해야하는 고통도 매주 '세바퀴'의 제작진은 감수해야 한다. 녹화 테이프를 보며 깔깔 거리고 웃다가도 전체 분량의 절반을 솎아내야 하는 제작진도 죽을 맛이다.
# 젊어서는 안 된다?
누나들이 노는 자리에서 젊은 남자 연예인들은 그야말로 '귀염둥이'다. 요즘 '예능계의 샛별'로 떠오르고 있는 가수 전진. 하지만 '세바퀴'에 들어가는 순간 누님들의 짓궂은 농담에 할 말을 잃는다. 무대 앞으로 불려 나와 한바탕 춤을 추고, 돌아가면서 누님들의 품에 한 번씩 안기는 것이 전진의 몫이었다.
예능이라면 자신이 있다는 가수 신지 역시 "제가 조용한 애가 아닌데…"라고 말꼬리를 흐리며 언니들의 얘기를 경청해야 했다. "결혼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인생 달인들의 이야기에 '어린' 스타들은 웃을 수밖에.
홍보를 위해 예능에 출연한다는 말도 '세바퀴'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스타 띄워주기는 없다. 오히려 솔직한 평가를 내리면서 스타도 사람이란 걸 보여준다. 그런 부분에서 오히려 시청자는 공감을 느낀다"는 박현석 PD의 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