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토크] 기부는 노래의 연장 태안으로 Go Go!
흥행 의식하면 못해요, 그 자체가 좋은거지
번돈 다 기부? 음악에 쓸 돈은 내놔요
3월 발라드 싱글, 제게 딱 맞는 곡이죠

가수 김장훈은 국보 1호 숭례문의 전소사건을 계기로 복원사업과 함께 또 다른 서울의 랜드마크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장영실의 해시계 모양을 본따 공연장을 한강변에 짓자고 서울시와 문화관광부에 의견을 냈다고 말했다. 사진=김지곤기자 jgkim@sportshankook.co.kr
가수 김장훈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김장훈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보다 모르던 왼손까지 일을 하게 만드는 묘한 마력을 보여줬다. 자신은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120만원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최근까지 45억원에 이르는 기부를 해왔다. 이도 모자라 22일에는 원유유출 사고로 신음하는 태안 앞바다에 기름 제거 대책반의 대장으로 나선다.

좋아하는 후배 싸이와 자주 들렀다는 서울 강남의 한 곱창집에서 ‘행복한 바보’ 김장훈과 마주했다. 잔 기울이는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소주병은 소품에 불과했다. 그는 솔직담백했고 별별토크 팀이 그의 향에 취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세상 속으로 나오다

김장훈은 식당 입구에서 인사 세례를 받았다며 “사람들이 개그맨을 대하는 것보다 더 친숙해한다”고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바쁘게 사느라 술잔 기울일 시간도 많이 줄었다는 넋두리가 이어졌다. 이내 노릇하게 익어가는 곱창을 오랜 친구 보듯 반가워 했다.

▲월세 집에 사는 것이 화제가 됐어요.

=마포구 현석동에 31평 아파트에요. 보증금 5000만원에 세로 120만원 주고 살고 있어요. 밤섬이 내려다 보여서 전망이 좋아요. 주인 아줌마 만나서 장기계약을 해야 하는데 걱정이에요. 좋은 일 많이 한다고 하니까 주인 아줌마가 좀 보자고 하세요. 빨리 만나야죠. 집값 깎아주실지도 모르는데.

▲돈을 실제로 많이 버나요?

=사람들이 그런 얘기 할 때마다 내가 그렇게 가난해보였나 하고 농담을 해요. 하하. 사실 앨범 판매 수익은 많지 않아요. 주로 행사를 많이 하죠. 행사 무대에 서면 보통 1,000만원에서 1,500만원을 받으니까 적지 않은 돈이 생기죠. 예산을 일관되게 써요. 기부와 공연 모두. 분리하면 안되요.

▲번 돈 대부분을 기부에 쓰는 건가요.

=아뇨. 절대로! 아니죠. 음악으로 쓸 돈을 기부에 쓰지는 않아요.

▲기부를 해달라고 하는 곳도 많을 것 같아요.

=도와달라는 곳도 많죠. 홈페이지에는 글 한 줄만 읽어보고 말아요. 제 메일 비밀번호를 매니저도 알 거든요. 수시로 지우기도 하죠. 돈도 없고 제가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니까 마음만 아프잖아요. 제가 세상을 다 구할 수 없으니까.

▲김장훈의 공연하면 재미있는 이벤트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요.

=그냥 좋게 생각해요. 감동이 있다 보다 재미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더 오고 싶잖아요. 사람들이 사는 게 답답하니까. 그쵸?

▲기부를 통해 공연이나 음반이 도움을 얻었나요.

=전혀요. 기부를 한다고 흥행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나 못해요. 앨범이나 공연에 도움되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냥 하는 것 자체가 기쁜 거지.

▲정치권에서 영입이 있다면 하실 생각은 없나요.

=제가 정치를 어떻게 하겠어요. 바르게 다스린다는 게 정친데. 저 하나도 잘 못 다스리는 사람이 어떻게 남들 앞에 나설까요. 그리고 음악이 정치보다 훨씬 좋아요. 음악은 지역구가 없어요. 전국구죠. 당도 없어요.

▲이번에 대통령 취임식에도 서게 됐어요.

=기회가 좋을 것 같아서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어요. 다들 튀는 복장으로 무대에 오르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나 봐요. 행사 출연료도 받았어요. 아마 처음일 거에요. 대통령취임식에 행사비 받고 서는 가수는. 하하. 참, 300만원을 깎아줬어요. 나머지는 태안에 기부했어요.

#가족은 내 인생의 감동

김장훈에게 좀더 프라이버시한 이야기를 부탁했다. 김장훈의 가족과 사랑이야기가 궁금했다. 김장훈은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촉촉히 젖었다. 가난과 불운에 쉽지 않았던 유년기 그리고 10여 차례가 넘는 교통사고와 자신을 옥죄던 공황증이라는 고통이 순식간에 김장훈을 휘감았다. 애틋했던 사랑이야기는 그 반대다. 순수한 소년의 눈빛으로 돌아가 가슴 깊이 간직했던 빛 바랜 사진 같은 추억 하나를 공개했다.

▲공황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어요.

=공황증은 다른 말로 염려증이래요. 사람들이 두려운 병이죠. 공황증을 이겨내면서 제가 바닥을 쳤구나 싶었어요. 이걸 이겨내면 정말 좋은 노래를 할 수 있겠다. 가슴 속에 슬픔을 잘 담을 수 있겠다 했죠.

▲어머니를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우리 엄마 아주 특이하세요. 흔한 말로 ‘독고다이’라고 하죠. 자기주관이 뚜렷하신 분이에요.

▲어머니하시는 일을 돕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머님이 운영하시는 청소년 상담소죠. 운영하는 법을 많이 터득했어요. 잔소리하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라면도 끓여주고 끌어안아주는 그런 일을 꾸준하게 하고 싶어요. 1년에 7000~8000만원은 들어가더라고요. 더 도와드리려고 하다가 일단 태안부터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기부활동이 드러나면서 ‘가족에게나 잘하라’는 악성 댓글도 나오는데.

=가족은 내게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단어에요. 내게 가족이 그런 것이죠. 몇 년 전까지 월세 8만원에 온 가족이 같이 살았어요. 난 가족이란 이름만 걸려있다면, 하고 싶은 일을 안할 수도, 반대로 하기 싫은 일을 할 수도 있어요.

▲ 결혼 생각은 없나요?

=아뇨. 나도 남자인데, 왜 없었겠어요. 한 2.5회 정도? 한번은 너무 급하게 끝나서 반으로 쳐야 해요. 눈에 들어왔던 친구가 하나 있었어요. 정말 이 친구 놓치면 후회하겠다 싶을 정도였어요. 그래서 한번 끝까지 가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상황이 그렇게 안됐어요. 결국 친구가 되자고 했죠.

#도산 안창호 그리고 마스터피스

김장훈은 자신의 인생을 바꾼 인물로 도산 안창호 선생을 주저 없이 꼽았다. 우연히 알게 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온라인 기념관에서 매일같이 어록을 10번씩 읽고 또 읽는다고 했다. ‘국민 개개인이 한가지 기술을 갈고 닦으면 나라는 부국강병할 수 있다’는 안창호의 말은 김장훈이 미국으로 건너가 공연을 연구한 계기가 됐다.

▲존경인물이 도산 안창호 선생이라고 들었어요.

=네. 하루에 선생님 어록을 하루에 10번씩을 읽어봐요. 제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공연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선생님 영향이죠.

▲앞으로 음악 활동은 뭘 준비하나요.

=3월에 발라드 2곡을 가지고 싱글을 낼 예정이에요. 너무 좋아요. 저에게 딱 맞는 곡이에요. 음악하면서 이런 기분은 처음 느껴봐요. 방송 활동 없이 노래만 던져놓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제작비가 많이 들어갈 것 같아요.

=마에스트로 프로젝트에요. 2곡씩 장르를 바꿔서 노래를 만드는 거죠. 지난번 트로트 싱글도 의 윤명선과 에픽하이가 각각 곡을 만들어서 분위기가 전혀 다른 곡을 만들었어요. 여러 차례 만든 후에 모아서 앨범으로 낼 계획이에요. 내 생애 가장 최고의 마스터피스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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