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열풍' 재점화될까… '100% 사전 제작제'도 과제로 남아

제작비 총 550억이 투입된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극본 송지나·박경수, 연출 김종학·윤상호)가 5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아시아 시장을 호령하는 배우 배용준과 드라마 '모래시계' 등으로 최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김종학, 송지나 콤비, 일본 음악계의 거장 히사이시 조 등이 참여해 최고의 기대감 속에 출발했던 '태왕사신기'는 24회 방송이 자체 최고 시청률인 35.7%를 기록하며 5일 종영했다.

오픈세트 건립비용 200억과 순제작비 350억을 포함해 총 550억에 가까운 사상 초유의 제작비가 투입됐고 3년여의 제작 기간을 거치며 100% 사전 제작제를 표방한 '태왕사신기'는 지난 9월 11일 첫 방송을 시작하기까지 총 네 차례나 방송 연기를 하는가 하면 결국 종영일을 3일 앞둔 시점에서야 마지막 촬영을 끝내는 등 우여곡절도 겪었다.

잇따른 방영 연기로 논란을 빚은 것과 달리 '태왕사신기'는 3개월의 방영 기간 동안 30%대를 넘나드는 시청률을 꾸준히 유지하며 국내에서 배용준의 인기를 재확인 시켰다. 일본,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선판매하며 맺은 계약금만 300억~350억으로 순제작비 기준으로 손익분기점을 이미 넘겼으며 국내 방영에서의 흥행 성공으로 인해 DVD 캐릭터 등 2차 판권을 포함한 해외 판매 전망도 밝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방송사를 새롭게 쓰며 제작된 '태왕사신기'의 성과와 과제를 짚어봤다.

▲ 550억 대작 드라마 한류 열풍 재점화

'태왕사신기'의 초기 기획 당시 김종학 프로덕션이 계획한 순제작비 300억에 대해 방송가 안팎에서 조달 가능성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류의 주역 배용준이 주연으로 가세하면서 일본 등의 해외 자본이 투입돼 '태왕사신기' 프로젝트는 현실화됐고 기획 단계부터 국내와 해외 시장을 동시에 겨냥한 대작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방영 이전부터 '태왕사신기'에 흥미를 보여온 일본, 홍콩 등 아시아 시장의 관심은 드라마의 선판매로 이어졌다. 특히 일본에서는 국내 방영이 채 끝나지도 않은 12월 3일부터 NHK, BSHI를 통해 방송이 시작됐고 4일부터는 '신주쿠 발트 9' 등 일본 전역의 극장 10개관에서 동시에 개봉돼는 기록도 세웠다. '태왕사신기'의 일본 방영으로 40대 이상이었던 배용준의 팬을 20~30대 젊은 층까지 확대시킬 것이라는 예측도 이어지고 있다.

▲ '욘사마' 아닌 배용준으로 돌아오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일본 방영 이후 배용준은 '욘사마'라는 일본 내 애칭으로 국내 언론에 더 자주 오르내렸다. 영화 '외출'에도 출연했지만 그에게는 한류 열풍을 이끈 주역의 이미지가 배우로서의 아우라보다 더 강했던 것이 사실. 하지만 '태왕사신기' 출연 이후 국내 팬들은 배용준의 진가를 재확인했고 일본 아줌마 팬들 못지 않은 충성도 높은 여성 팬들이 각종 연예 게시판에 배용준에 대한 애정을 쏟아내고 있다. 배용준의 팬 500여명이 5일자 스포츠신문에 '태왕사신기'를 응원하는 광고를 게재한 것은 배용준을 향한 국내 팬심이 얼마나 두터워졌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 최민수, 윤태영, 이필립, 이지아의 발견 혹은 재발견

'태왕사신기'의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이는 배용준이지만 화천회 대장로와 호개 장군 역을 맡은 최민수와 윤태영은 이번 드라마에 풍부한 재미를 더한 주역이었다. 독특한 음색, 기이한 분장과 함께 사악한 악인으로 분한 최민수는 '배우는 연기로 말한다'는 명제를 입증하며 세대를 막론하고 큰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 초반부터 끝까지 태왕과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 넣은 윤태영은 사랑하는 여인 기하를 가질 수 없는 애절함과 태왕을 향한 연민 속에서도 복수심에 불타는 호개 캐릭터를 몸에 꼭 맞는 옷처럼 입어냈다. 특히 전투신과 격구신에서는 배용준을 능가할 정도로 남성적인 매력을 뿜어냈다.

수지니와 처로 역을 맡은 이지아와 이필립 또한 드라마를 통해 매력을 듬뿍 발산했다. 신인이지만 캐릭터에 꼭 들어맞는 연기력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하였다?

1회 방송에서 환웅과 가진의 대립과 흑주작이 된 새오, 현무와 청룡의 활약 등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못지 않은 현란한 CG로 구현했던 '태왕사신기'는 15회 관미성 전투신에서 국내 CG 기술의 발전상을 보여주는가 싶더니 이후 CG의 힘을 입은 대규모 전투신을 철저히 외면했다. 이후 전투신에서는 태왕이 대규모 부대를 이끄는 것을 한사코 마다하며 20∼30명도 채 안되는 소수의 병력만으로 전투를 치른 것이 수 차례였다. 이도 모자라 대사 몇 마디로 끝난 전투도 부지기수였다.

특히 24회 결말의 하이라이트라 할 화천회와의 전투신에서는 화천군 10만 대 태왕군 4만의 대규모 전투라는 사실이 내레이션으로 보여졌을 뿐이다. 군사들을 독려하는 "우리는 이번 전투에서 절대 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는 법을 모르니까"라는 태왕의 외침은 한없이 왜소하게 다가왔다.

▲ 광개토대왕의 업적 다루겠다던 기획의도는 어디로

'태왕사신기'가 광개토대왕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한국적 판타지를 표방한 드라마라 해도 대륙을 호령하며 영토확장에 나섰던 광개토대왕의 업적이 전혀 다뤄지지 못한 부분에 있어서는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새롭게 조망하며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겠다던 제작진들이 왜구 토벌과 같은 대왕의 중요한 업적을 방송 내용에서 배제한 것은 해외 시장 판매를 위한 눈치보기라는 일부의 의혹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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