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짱] 영화 '싸움'서 폭력녀 변신 김태희

어느 틈에 ‘김태희’라는 이름 석자는 수식어가 필요 없게 됐다. ‘서울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명문대 프리미엄’이 붙은 것 아니냐는 질시 어린 시선을 뒤로 한 채 채널만 돌리면 CF마다 출연하는 특급 모델로 성장했고 드라마와 영화에 꾸준히 얼굴을 내미는 배우로도 자리잡았다.

한편으로는 이름 앞에 수식어가 없다는 것은 배우로서는 연기력 논란에 시달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태희’ 이름 앞에 자신 있게 ‘배우’라는 명칭을 붙이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면 분명 김태희가 배우로서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김태희는 서두르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그런 숙제를 영화를 통해 풀고 있다. 우아한 공주나 세련된 도시녀, 비련의 멜로 주인공 대신 전남편과 목숨 걸고 싸우는 이혼녀를 택했다. 김태희는 13일 개봉할 영화 (감독 한지승ㆍ제작 시네마서비스)에서 설경구와 목숨 바쳐 싸웠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숱한 선망과 질투심의 눈초리를 동시에 받는 스타라고 하기엔 소탈하고 솔직해보였다. 자신을 둘러싼 선입견에 대한 질문까지도 환하게 웃으며 길게 답을 했다. 청문회에 세운 심정으로 만났다.

#청문회 1=이제는 말할 수 있다

“얼굴이 알려졌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사람을 안 만나는 일은 없을 거에요. 친구같이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김태희는 영화 을 촬영하며 손이 부을 만큼 설경구를 때리고 발톱이 부서질 만큼 달리며 전쟁 같은 싸움을 했지만 현실에서는 다정한 짝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사진=김지곤기자 jgkim@sportshankook.co.kr
춤,사실은 학원 다녔다

김태희‘도’ 춤추게 한다고 해 인기를 끌었던 휴대전화 샤인 CF는 김태희의 어설픈 춤으로 TV뿐 아니라 인터넷에서도 조회수가 엄청났다. 김태희는 “춤을 못 췄잖아요”라면서도 사실은 따로 학원에서 배운 춤이라고 고백했다.

“드라마 끝나고 한 학기 학교를 다닐 때 이것 저것 학원을 다녔거든요. 그 때 벨리댄스 학원을 다니며 기본기를 배웠어요. 너무 재미있어서 기회가 되면 다시 다니고 싶을 정도에요.”

최근 CF 모델료로 번 돈으로 어머니에게 작은 텃밭을 마련해 드리기도 했다. 예전부터 상추와 고추를 직접 기르는 이들을 부러워한 어머니의 작은 꿈을 이루도록 도왔다.

중천,지금에야 아쉽다

김태희는 지난해 영화 데뷔작인 으로 각종 영화제의 신인여배우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은 하지 못했다. 상에 대한 욕심과는 별개로 그는 요즘 들어서야 의 아쉬운 부분을 느끼게 됐다고 털어놨다.

“굉장히 편집이 많이 되었죠. 그 당시엔 서운한 줄 몰랐어요. 그 결과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다고나 할까요. 생각해보니 내가 보여준 게 너무 없게 되어 버렸어요. 천인이지만 어린아이같고 순수한 모습을 잘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지금 와서 아쉬워요.”

김태희는 에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 감정신이 삭제됐지만 아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태희는 “더 중요한 장면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니 아쉽지 않아요. 그 외에도 나를 보여줄 장면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에서 삭제된 장면이 뒤늦게 아쉬운 것을 보니 나중에 또 서운해 할지도 몰라요”라며 활짝 웃었다.

이완,내 손에 맞았다

김태희는 동생인 배우 이완과 주먹 다짐을 하며 싸웠다. 아니, 싸웠다기 보다 일방적으로 때렸단다. 초등학교 입학 전의 일이다.

“동생은 연약했고 저는 어려서는 조숙하고 큰 편이었거든요. 뭐 하나라도 잘못하면 제가 때려줬지요. 그런데 동생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뒤에는 키도 크고 힘도 세 지길래 그 다음부터는 안 때렸어요.”

김태희는 을 촬영하며 오히려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다. 자신 안에 이번 영화의 캐릭터인 진아의 모습이 있다고 했다. 이미지와 달리 김태희는 꽤나 왈가닥이었던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머리 끝까지 화가 나면 ‘어버버’하고 말을 잘 못해요. 자분자분 따지지 못하고 혼자 부르르 떨고 말아요. 호호.”

고향이 울산인 김태희는 아직도 가족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사투리가 튀어 나오곤 한다. 하지만 일 때문에 김태희와 이완은 사투리를 고쳐야만 했기에 두 사람의 대화는 서울 말도, 경상도 사투리도 아닌 어색한 말투가 나오곤 한다.

#청문회 2=그것이 알고 싶다

김태희는 여우다?

김태희를 가장 속상하게 만드는 선입견 중 하나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에게 이롭게 상황을 만드는 여우는 김태희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김태희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지도 못하는 성격이다.

“제가 먼저 다가서지 못하니 상대방이 어떻게 하느냐에 제 반응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처음 보는 순간 있는 그대로 저를 받아들이면 ‘이대로 받아들여지는구나’하고 마음을 놓지만 선입견으로 대하면 저도 마음을 못 열게 되는 것 같아요. 설경구 선배님이나 한지승 감독님은 저를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 대해주셨어요.”

일하며 만난 사람들은 물론 남자친구에게도 여우같이 굴지 못한다고 했다. 오히려 지나치게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편이다.

“예전에 연애할 때도 여우같이 밀고 당기기를 못 했어요. 너무 많이 나빴죠. 주변 사람에겐 안 그런데 너무 편하고 친하면 막 대했어요. 지은 죄가 많아서 남자친구가 없나 봐요. 호호.”

김태희는 똑똑하다?

서울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가장 많은 이들이 갖는 선입견 아닐까. 김태희를 답답하게 만드는 선입견이다. 김태희는 “멍청한 행동을 해도 순수하게 ‘바보 같구나’ 라고 생각하지 못할 때 답답해요”라고 털어 놨다. 어딘가 꼼수가 있는 것처럼 바라볼 때는 속상하기만 할 뿐이다.

김태희는 쑥스럽게 웃으며 “실제로는 하나도 안 똑똑해요. 계산을 잘 못 해요. 친구들 중에는 컴퓨터에도 능하고 정보력도 빠르기도 하고 자립심 강한 아이들이 많아요. 저는 ‘길치’에 ‘컴맹’이에요. 제가 만지는 대로 기계가 다 망가져요”라고 말했다.

김태희는 이혼녀 역을 부담스러워했다?

의 진아는 이혼녀로 설정되어 있다. 김태희는 결혼을 한 뒤 이혼을 한 역할이라는 사실에 대해 부담스러워하지 않았을까.

“전혀요. 결혼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요즘 현대 여성은 결혼을 해도 연애 때와 비슷한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상상력을 발휘해서 연기했죠.”

김태희는 성격이 안 맞는 남자랑 살면서 쌓이고 쌓인 갈등을 몸으로 드러내는 진아의 화끈하고 터프한 캐릭터가 마음에 쏙 들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깔깔 웃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했다. 이 작품을 놓칠 수 없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오히려 주위에서 ‘아직 교복을 입는 역할을 해도 되는데 이 작품 때문에 캐릭터의 나이대가 올라가면 어떡하나’고 걱정해 주셨어요.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이 좋은데 지금 못 하면 나중에 기회가 안 올 수도 있잖아요. 나이대보다 이 작품이 욕심이 났어요. 그리고…교복 입는 역할, 또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안 되나요?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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