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 '어깨 너머의 연인'

"어떻게 매번 속옷을 맞춰 입냐?" "세상에…어떻게 속옷을 '짝짝이'루 입니?"

이 대사는 이미연 이태란 주연의 영화 (감독 이언희ㆍ제작 싸이더스FHN)에서 주인공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브래지어와 팬티를 매번 세트로 입을 만큼 한가하지 못한 포토그래퍼 정완(이미연)의 인생에서, 중심축은 일이다.

'사랑을 믿지 않기에' 유부남이든 연하남이든 쿨하게 섹스나 할 뿐이다. 사실은 사랑을 하고 싶지만 그 감정의 소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쿨한 척' 셔터를 내려놓은 셈이다.

날마다 속옷을 맞춰 입는 희수(이태란)는 주부다. 돈 많은 남편이 '남자보다 더 좋은' 옷을 살 능력을 주기 때문에 힘들게 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자신의 치마를 걷어올릴 때도 "나 갖고 싶은 것 있는데"라는 말을 한 뒤 응한다.

남편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은 옛 애인이든 누구에게든 충족받으면 된다. 희수에게 위 아래 맞춘 속옷은 언제든 누구와도 섹스를 할 준비인 동시에 깔끔한 자기관리 능력을 보여주는 셈이다.

은 파격적인 내용을 담은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그러나 동성애, 17세 연하남과의 동거, 출산 등 원작 소설의 설정은 배제했다. "여자한테 사랑이 정말로 필요한 거니? 일에 몰두한다든지 취미에 빠진다든지, 많잖아." "일하고 취미하고는 섹스를 할 수 없잖아" "한 번 자 본 거야" "나, 불륜에 딱 어울리는 애인 아닌가?" 등 대사는 도발적이다.

반면 영상은 파격적이지는 않다. 대신 아기자기하고 섬세하다. 희수가 남편과 잠자리를 가진 후 옆으로 벗은 채 누워 있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곡선미는 아름답다.

은 여자의 속내를 겉으로 꺼낸 데다 화려한 패션으로 눈을 즐겁게 한다는 점에서 한국판 로 손색이 없다. 실상 '미드'(미국드라마)를 거론할 필요도 없다. 은 1998년(감독 임상수ㆍ제작 우노필름) 이후 꼭 10년 만에 선보이는 여성의 성과 정체성에 대한 보고서에 다름 아니다.

2003년작 (감독 권칠인ㆍ제작 싸이더스FHN) 이후로는 5년만이다. 이 이들과 다른 점은 싱글이 아닌 주부까지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일과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경우가 아니라 둘 중 하나를 택하고 하나는 포기해야만 하는,그리고 그런 유혹에 시달리는 숱한 여성들의 슬픈 자화상일 수 있다.

은 와 달리 여감독이 연출을 맡아 오히려 담담한 연출을 꾀했다. 마르코가 어머니의 납골당을 찾아 정완에게 사진을 찍어달라며 울 때 카메라는 심하게 흔들린다.

미혼모 엄마를 경멸했던 정완의 마음도, 심하게 흔들렸을 터. 은 도발적인 대사도 있지만 사랑과 결별, 화해의 감정들은 여백을 통해 만들어내려고 했다. 여자의 사랑과 성을 공개했다는 데 새삼스레 집중할 일이 아니라 여자가 고민에 빠지는 지점에 주목할 일이다.

남자 관객들이 '베드신이 생각보다 수위가 낮다'거나 '여자들의 수다 아니냐'고 말하는 대신 그 미묘한 차이를 눈치챈다면 이 영화는 세상의 반인 남자를 세상의 반인 여자들의 담론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는 것일 터다. 18세 관람가. 1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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