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짱] 영화 '궁녀' 박진희

"아유, 수다나 떨어요."

확실히 달랐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말에 "예" "아니오"에서 반 발자국 정도만 보탠 답을 내놓는 여배우들과는 달랐다. 한 가지 질문을 던지면 두 가지 질문이 돌아왔다.

최근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에게 굳이 아름답게 포장하려는 노력 따위는 태어날 때부터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배우 박진희에게는 또래 배우들과 다른 에너지와 자유분방함이 느껴졌다. 물론, 그 방만함과는 다른. 그는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목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답하는가 하면 (감독 김미정ㆍ제작 ㈜영화사 아침,㈜씨네월드ㆍ18일 개봉)에서 서늘한 연기를 해놓고도 "호러는 못 본다"고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조차 박진희는 분위기를 잡거나 연약한 척 하지 않았다. 아주 큰 목소리로 씩씩하게 말했다. 박진희에게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여준 모습들과 교집합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언뜻 내비치는 의외의 모습들은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보헤미안을 떠올리게 했다. 박진희에 대한 오해,그리고 진실을 풀어봤다.

#박진희는 세련됐다?

박진희의 깊고 서늘한 눈매와 오똑한 콧날, 앙다문 입술은 확실히 야무지고 도회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최근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각종 시상식에서 그가 보여주는 과감한 드레스는 때문에 그를 패션 리더로 꼽는 이들도 있다.

"제가 너~무 B형이에요. 관심 없는 것은 전혀 신경도 안 써요. 예를 들면? 쇼핑. 그리고 트렌드. 일부러 관심을 가져보려 했는데 안 되던걸요. 김민희 공효진 이혜영 류승범 보면 정말 부러워요. 정말로 배우를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감각이 있잖아요. 저는 평소에는 매니저까지 '같이 다니기 창피하다'고 할 정도에요."

그저 스타일리스트가 정해주는 옷을 승인해주는 정도다. '예쁘다' '아니다' 정도의 눈은 있기 때문에 직접 챙기기는 하지만 'OK' 여부를 가름하는 정도다. 평소에는 화장도 안 하고 트레이닝 바람으로 돌아다니다 요즘은 스타일리스트에게 옷을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재미난 일이요? 글쎄 뭐가 있을까. 첫 신이 남진 오빠랑 애정신이어서 꽤나 민망했다는 정도요? 하하.” 배우 박진희는 에서 당찬 내의녀 천령과 달리 우유빛 블라우스와 스커트로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사진=김지곤기자 jgkim@sportshankook.co.kr
신문과 방송에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을 아름답게 꾸며준 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평소 모습을 본 팬들이 '저 모습은 또 뭐냐'라고 보내는 시선을 발견했다나.

배우를 하지 않아도 패션으로 먹고 살 이들이 있다면 박진희가 배우 외에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박진희는 단숨에 "목수요!"라고 말했다. 배우가 꼽기에는 정말로 생경한 직업이지만 박진희는 꿋꿋하다.

"어린애들도 그러잖아요. 대통령하고 싶다고. 그런 거죠. 근데 왜 하필 목수냐? 나무를 함께 하고 나무향을 맡고 뭔가 만든다는 게 좋아 보여요. 나무를 깎는 느낌도요. 해 본 적은 없어요. 막연한 꿈이죠. 분명한 건, 저는 도시형 인간은 아니라는 거예요."

박진희는 수목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심지어 방의 벽지를 올리브색으로 도배했을 정도로 자연의 느낌을 사랑한다. 5년전 라디오를 진행할 때에도 "인터넷 사연보다 종이 편지에 보낸 사연을 더 많이 소개하겠다"고 공언했다. "쉬운 책이 좋다"고 말하지만 박진희는 분명 세련됨과는 거리가 있는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박진희는 사랑 앞에 쿨하다?

박진희는 2년전 자신의 이상형을 '강호동 같은 남자'라고 밝히는 등 톡톡 튀는 모습을 보여왔다. 당당한 이미지가 강한 박진희는 사랑 앞에서도 언제나 솔직하고 쿨할 것만 같다. 정작 박진희는 "사랑은 힘든 게 더 많죠"라고 말했다.

"사랑은 참아야 할 때도 많고 힘든 게 많은 것 같아요. 요즘은 사랑이 양면적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푹 빠져서 처음으로 DVD까지 사서 보고 또 본 드라마가 인데요.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는 설레임과 불안감 때문에, 중간에는 내 마음같이 않아서, 헤어지면 가슴이 아파서 힘들다는 대사가 있어요. 그렇다면 언제쯤 우리의 사랑은 행복을 찾을까, 라는. 남자들이 조금만 잘 해주면 되는데 그게 왜 안 되나 몰라요. 하하."

박진희는 역설적인 이유로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한다. 박진희는 "우리가 현실에서 하는 사랑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 않으니까 위로를 받을 수 있어서 좋아해요. 그런 영화를 보면서 행복하고 싶어서요. 휴먼드라마도 좋아하는데 인간미를 느끼고 싶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닌데 그런 걸 느낄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라고 말했다.

박진희는 사실 호러 영화처럼 감정을 죄어드는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터리 공포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에 출연한 이유는 무엇일까.

박진희는 "(영화사 아침의) 정승혜 대표님이 시나리오를 주신 것이 컸고요. 감독님 만나 보니 좋은 영화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자들끼리 파워풀하게, 그동안 하지 않은 장르를 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죠"라고 밝혔다.

#박진희는 연기 선수다?

연기를 대하는 그의 자세를 보면 '선수'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SBS 에서 능청스럽게 30대 아줌마 역할을 해 낸 것부터 SBS , 영화 등 박진희는 그만이 할 수 있는 색깔을 내며 매력을 발산하곤 한다.

"어떤 연기든 제가 없는 연기는 할 수 없어요. 의 아줌마스러운 면도 있겠죠. 아직은 내 안에 있는 모습 중 캐릭터를 끄집어 내 확장하는 형식으로 연기를 하고 있어요."

의외로 는 그에게 첫 사극이고, 연기 생활 10년 만에 맡은 첫 원톱 영화다. 박진희는 "사극에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동안 겁이 났었어요. 슬픔을 느껴도 다른 느낌이어야 하니까요. 는 영화라 그래도 이야기하며 찍을 시간이 있어서 한시름 놨죠"라고 털어 놨다.

박진희는 내의녀 천령으로 등장하기 위해 한의사에게 침 맞는 것이며 얼굴 눈빛을 보고 진맥하는 방법 등을 배웠다. 박진희가 연기에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천령이 아기를 낳은 과거가 의문의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원동력이 되는데 관객이 어색해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박진희는 김 감독으로부터 당시 궁녀가 궁에서 아기를 낳은 것은 수녀원에서 수녀가 아기를 낳은 것처럼 엄청난 사건이라는 힌트를 받은 뒤 연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리얼리티를 살린다고 꼭 관객이 동감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일부러 리얼리티를 살리려고 한 왕자의 얼굴을 보고 시사회 때 웃음이 나왔잖아요. 천령이 아기를 낳고 묻은 과거 때문에 월령의 죽음을 파헤치는 모습을 보고 이해를 못할까봐 걱정했었어요."

박진희는 처음으로 원톱으로 나오는 에서 서영희 임정은 윤세아 김남진 등 쟁쟁한 배우들을 이끌고 연기를 해야 했다. 박진희는 첫 만남에서 "배우들끼리 협력하지 않으면 망한다. 술 한 잔 먹고 추한 꼴을 보이고 친해지자"며 술자리를 가졌다. 마음이 편해지고 놓이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고 효과가 있었다.

박진희에게도 천령과 같은 당찬 모습이 있을까. 박진희의 답은 'YES'. 입을 모아 오른쪽으로 한 번, 왼쪽으로 한번 움직이며 잠시 고민하던 박진희는 이런 답을 내놨다. "제가 삶을 대하는 방식은요. 시작하기 전에 될 것 같으면 앞 뒤 생각하지 않고 달려들어요. 안 되면 미련을 갖지 않고요. 할거면 잘 하고, 어설프게 할 거면 말자. 무슨 일이든 즐겁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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