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스코프] 비속어·막말·욕설 넘어 이젠 시청자 가르치기까지
제작진, 출연자 행태 꼬집으며 훈계성 말 남용
교열창구 없어 오타도 심각 방송위 권고처분도

자막 과잉 시대다. 방송 자막이 비속어, 통신언어, 불필요한 외국어 등 한글을 무시한 언어파괴의 온상이 되더니 어느 순간 시청자들을 가르치는 역할까지 자임하고 나섰다. 프로그램의 이해를 돕던 자막이 도를 넘어서 최근에는 마치 시청자가 출연자를 훈계하는 듯한 분위기다.

#시청자 꾸짖는 자막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는 MBC 예능 프로그램 이 지적대상 1순위다. 은 매회 자막으로 출연자들의 행태를 꼬집는다. 회초리를 드는 이는 시청자가 아니라 제작진이다. 지난 9월29일 방송된 ‘일본 팬미팅 특집’은 이처럼 ‘나무라는’ 자막의 홍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형돈 부분에서는 ‘내가 할 때만 딴 짓하더라’는 자막이 등장했다. 심지어 이날 방송은 최근 유흥업소 영업 문제로 물의를 빚은 정준하가 팬클럽과 벌인 해프닝을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마치 현장에서 갑자기 일어난 일인냥 자막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 시청자 사이에서 논란이 됐다.

MBC의 또 다른 예능 프로그램 의 ‘무릎팍 도사’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강호동과 게스트간 격한 말이 오가면 시청자를 가장한 자막이 곧바로 체벌에 나선다. ‘방송 끝나고 또 욕 먹겠구나’ ‘오늘 체면 구기네’ ‘너만 몰랐니’ 등의 자막이 시청자들의 웃음을 유도한다.

또 다른 코너인 ‘라디오스타’의 경우도 김국진의 개그가 등장할 때마다 ‘20세기형 개그’라는 말로 폄훼하고 있다. 그 때문에 뭔가 개운치 않은 웃음을 강요하고 있다.

웃음과 정보를 동시에 주는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들도 자막으로 되레 흥미를 반감시키고 있다. 넣지 않아도 될 자막을 꼭 첨부하는 제작진의 편의 때문이다. KBS 2TV 와 SBS 등도 오락적 요소를 강조하다 보니 굳이 넣지 않아도 될 자막이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한다.

외화를 보는 건지 오락 프로그램을 보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바른 우리말을 가르친다는 취지로 기획된 도 정답을 가르치는 것 외에 출연자들의 입담에 기댄 자막들로 넘쳐난다.

#틀린 말 가르치는 자막

오버하는 자막은 이 뿐만이 아니다. 오타도 심각하다. 외국어나 은어를 그대로 표기하는 것은 애교에 속할 정도다. ‘ㅋㅋㅋ’ ‘OTL’ ‘꽃미남’ 정제되지 않은 등 통신 언어도 그대로 전파를 탄다.

은 출연자간 대화를 자막으로 내보내며 금새(금세) 꽁트(콩트) 웃길려고(웃기려고) 등 한 회에서만 열 번 이상 틀린 자막으로 방송위원회의 ‘바른 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심의 규정 관련 조항을 위반해 방송위원회의 권고처분을 받은 바 있다.

자막 제막이 프로그램의 PD와 작가에게서 아이디어가 나오면서 오타를 잡는 교열 창구가 없어서다. 띄어쓰기 등이 잘못된 경우가 제일 많다. SBS 는 ‘할게요’가 ‘할께요’로, ‘딴죽 걸다’는 ‘딴지걸다’로 내보냈다. KBS 2TV 에서 ‘찾는 게’가 ‘찾는게’로 띄어쓰기를 자주 틀린다. 자막이 PD나 작가 등에게서 만들어지다 보니 오타를 잡는 교열 창구가 없기에 자주 틀린다.

# 누구에게 필요한 자막일까

과거 TV 자막은 원래 단순히 시청자가 보고 듣는 것만으로 정보전달이 불충분할 때 보조수단이었다. 또 번역이 필요하거나 극중 발음이 부정확하면 풀어 써주는 기능이었다. 이런 긍정적인 자막들이 본래 기능에서 탈피하게 된 것은 안방극장이 오락 과잉화의 길을 걸으면서 시작됐다.

자막의 발전은 시청자가 놓쳤을 웃음의 맥을 시각화해 다시 짚어주는 수준이 1단계였다. 그후 진화를 거듭한 현재의 자막은 사회자를 위협하는 수준에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MC가 ‘맞습니다’라고 말하면 아래 깔리는 자막은 ‘과연 맞을까’라고 딴지를 걸거나, 동상이몽을 꾸는 MC의 속내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웃음을 유발한다.

예전처럼 MC들의 멘트를 받아쓰는 수준이 아니라 스스로 재미를 만들어내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은 오롯이 시청자들의 몫인데도 자막을 통해 ‘꼭 웃어라’고 강요한다.

이처럼 오만한 자막의 뒤에는 오만한 제작진이 있다. 자막으로 출연자들의 말고 행동에 시비를 거는 건 마치 제작진이 우월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오인될 수 있다. 자막은 프로그램의 일부분이지 전부가 아니다. 주객이 전도된 재미로 시청자의 눈과 귀를 호도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판단을 제작진이 내려서는 안된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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