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다' 주인공 맡아…"촬영하며 극한 고통" 눈물
"윤진서라는 배우를 못 느낄 정도로 배역에 몰입했으면…"

삼청동의 언덕배기에 위치한 카페에 들어서자 스태프 5∼6인과 조용히 도시락을 먹고 있는 윤진서(24)의 모습이 눈에 띈다. 영화 '두 사람이다'(감독 오기환, 제작 모가비픽처스)의 개봉을 앞두고 한창 홍보에 열심이다 보니 오후 6시가 되서야 첫 끼니를 겨우 해결하고 있단다.

까페 측에서 서비스라며 내 온 '무똥 까데' 와인으로 물마시듯 가볍게 목을 축인다. '무 똥 까데'보다는 '에르미따쥬'나 '삐노누와'를 좋아한다며 입을 한 번 샐쭉한다.

'올드 보이', '울어도 좋습니까', '바람피기 좋은 날' 등을 오가며 팔색조 연기를 펼친 그답게 때론 발랄하게 때론 새초롬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관심 밖의 질문엔 심드렁한 표정과 함께 '예', '아니오'의 짧은 단답형으로 일관하다가도 출연작으로 화제가 옮겨가자 이내 눈빛이 번득인다. '두 사람이다'를 촬영하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극한의 고통을 겪었다는 대목에서는 언뜻 눈가에 물기마저 비친다.

가족과 선생님, 절친한 친구부터 끊임없는 살해 위협을 받는 가인 역을 맡아 1톤 분량의 핏물 세례를 받는가 하면 장신의 남자 배우들로부터 야구 방망이 찜질에 심하게 내동댕이쳐지기도 했다. 이번 영화를 통해 '배우는 소모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순순히 소모당하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 윤진서의 가장 큰 수확이다.

- 이번 작품을 상처의 관점으로 연기해 눈물 연기가 어렵지 않았다는 시사회 당시 발언이 인상적이다. 윤진서와 상처는 잘 연결이 되지 않는 느낌인데.

▲ 어릴 적 상처에 관한 얘기였는데 나만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가족의 명예가 달린 문제여서 솔직히 얘기하기가 어렵다. 다만 평범하게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어릴 때 불행하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고 그렇게 만든 요인이 있었다. 그 상처를 되짚어 가인을 연기하다 보니 오히려 눈물을 참았으면 참았지 눈물이 나지 않아 애먹지는 않았다.

- 촬영 중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다. 핏물을 뒤집어쓰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강도가 높다.

▲ 촬영한 분량에 비해 정말 많이 생략됐다. 침대에 누워 있다가 천장의 피가 한 번에 쏟아져 뒤집어쓰는 장면이었는데 풍선 수십 개에 피를 가득 채웠다가 한꺼번에 터뜨려 떨어뜨리는 방법으로 촬영했다. 한 번 할 때마다 핏물에 팬티부터 속옷까지 몽땅 젖었다. 다시 찍으려면 시트 갈고 옷도 전부 갈아입고 머리도 말려야 해서 하루 종일 걸려 그 장면을 찍었다. 그 장면을 찍고 나서 3∼4일이 지나도 입과 코와 귀에서 핏물이 계속 나왔을 정도다. 붕대로 입을 봉하고 핏물 속에서 쑤욱 빠져나오는 장면을 찍은 적도 있는데 그 때는 정말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이번 작품은 정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오늘 정말 힘들었는데 내일 또 같은 작업을 해야 된다는 거, 그리고 그 다음 날도 계속 된다는 것이 힘들었다. 촬영 두 달 동안 정신적인 긴장을 놓치지 않고 쥐고 가야 한다는 것이 가장 관건이었다.

- 펜싱 장면은 실제 선수로 활약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야구방망이로 얻어맞는 장면도 나오고 180cm 장신인 이기우로부터 내동댕이쳐지기도 하는데 액션신에서 악바리 근성이 느껴진다.

▲ 펜싱 장면 찍으며 코치님께 왜 선수가 안됐냐는 소리도 들었다. 승용차 위에 올라가서 뒹구는 장면 등이 자연스럽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지금 당장 나가서 구르라고 해도 구를 수 있다. 내가 직접 몸을 쓰는 액션 장면은 재미있고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연기라 해도 힘센 남자 배우들에게 멱살 잡히고 내동댕이쳐지고 하면 화가 난다. 몇 번씩 이런 장면을 반복하면 당연히 화가 나게 된다. 하지만 웃으며 해낸다. 화는 속으로 내고 웃으며 참아내야 한다. 그래야 배우 아닌가. 촬영 끝나고 병원에 갔더니 몸이 성한 데가 없으니 당장 입원하라고 하더라. 장기능 위기능이 다 멈췄다고. 현장에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지내려다 보면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챙기기 어렵다. 이런 것 하나하나가 사람을 예민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 부상도 당했나.

▲ 액션신을 찍을 땐 다쳐도 막상 촬영 당시에는 잘 모른다. 팔목이 시큰해서 병원 가보면 깁스하라는 식이다. 이번 촬영 때도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는데 차창의 깨진 유리에 가슴을 찔려 피가 주르륵 흐르는 데 촬영 분량이 두 컷 남은 상태였다. 스태프들은 차마 말은 못하지만 두 컷만 찍고 갔으면 하는 분위기였다. 다들 내 의견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데 차마 바로 병원에 갈 수가 없었다. 다행히 이틀 뒤에 촬영에 합류할 수 있었다. 가슴에 하트 피멍이 들어본 것도 그 때가 처음이다. 촬영하다가 감독님이 너무 미워서 며칠 동안 말도 안한 적이 있다. 결국 제 풀에 풀어졌지만. 영화라는 작업 속에서 배우는 매우 소모적이고 희생 돼야 하는 존재라는 걸 이번 만큼 크게 느낀 적은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많이 자란 것 같다.

- '올드보이' 속 신비로운 소녀나 '바람피기 좋은 날'에서 바람난 새댁, '슈퍼스타 감사용'의 발랄한 이웃집 처녀, 그리고 공포에 떨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여고생까지 전혀 다른 캐릭터들에 물처럼 스며드는 것 같다. 정식 데뷔를 2003년 '올드보이'로 친다면 이제 겨우 5년차 배우치고는 필모그래피가 정말 화려하다.

▲ 칭찬으로 받아들이겠다. 나는 어떤 영화나 드라마를 관객이 봤을 때 '저 배우가 이 역을 연기하고 있구나'라고 느낀다면 잘못된 연기라 생각한다. 그냥 매 영화에서 관객이 윤진서를 못 느꼈으면 좋겠다. 연기란 노력도 중요하지만 재능 없이는 안 되는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은 정말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노력한 티가 극에서 드러나면 안 된다. 작품마다 내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고 하셨는데 그건 정말 매 작품마다 엄청나게 노력을 한 결과물이다. '두 사람이다'같은 경우는 주위 환경은 피가 난자하고 좀 부산한 편이었다. 워낙 우는 장면도 많고 울면서 대사를 쳐야 하는 상황도 많았고, 내가 집중해서 빨리 'OK'를 받아내지 않으면 안됐다. 환경이 갖춰지길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순간 집중을 위해 내 대사를 상황별로 다 녹음해서 가장 맘에 드는 것을 캐치해냈다. 그냥 대사만 외워서 촬영장서 순간 대응을 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바람피기 좋은 날'은 현장에서의 느낌을 중요하게 여겼다. 바람이 나는 캐릭터에 맞춰 나도 잠깐 바람 같은 사랑에 빠져보기도 했다. 그 작품에서는 될 수 있으면 풀어져 있으려 했고 애드리브도 중요하게 가져갔다.

- 바람 같은 사랑이라고? 벌써 사랑을 해봤나.

▲ 나이가 몇인데…. 원래 누군가를 찾아 나서는 스타일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사귀는 편이다. 여행을 하다가도 멋있는 남자를 보면 먼저 말을 걸고 그런다. 사랑에 국적은 상관없다. 마음이 끌리는 사람을 만나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다. 낯선 사람과도 마음에 들면 잘 친해지는 편이다. 여행 중 만나서 아직까지 연락을 하며 지내는 프랑스인 친구가 있다. 아, 그 친구와 연인 관계는 아니다.

- 이번 촬영 이후에도 여행을 다녀왔나.

▲ 유럽 쪽으로 혼자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두 사람이다'의 힘든 경험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여행이 큰 도움이 됐다. 갈 때마다 좋은 느낌으로 남는 곳이 파리와 이탈리아인 것 같다. 이상하게 프랑스의 문화적 감성에 끌린다. 지금 한창 한 프랑스 친구와 서로의 언어를 가르쳐 주는 스터디 그룹을 하고 있다.

- 단 둘이서 공부하는 스터디 그룹인가. 프랑스어 선생님은 남자인가.

▲ 남자다. 근데 뭐 성별이 그렇게 중요한가.

- 윤종빈 감독의 '비스티 보이스'와 중국 감독 장률의 '이리'가 차기작이다. 또 어떤 변신을 보여줄 작정인가.

▲ '비스티 보이스'가 11월 경, '이리'는 12월경에 촬영을 들어갈 것 같다. '비스티…'의 지원이는 안마시술소에 다니며 호스트바에 스트레스를 풀러 가는 친구인데 정말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아이다. 사랑도 지 멋대로 하고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다. '이리'에서 맡은 역할은 남들이 보기엔 바보 같기도 하고 정신 지체도 있는 친군데 그것이 실제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르는 그런 인물이다. 벌써부터 이 친구들로 변하고 있다. 정말 뿌듯하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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