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영화 '기담'서 영원한 사랑 꿈꾸는 여의사 인영 역 맡아

영화 '친구' 때는 노래 한 곡으로 남자 고교생들의 애간장을 녹이더니 딱 6년이 흐른 뒤엔 임자 있는 의사에게 줄 건 다 주면서도 아무 욕심 부리지 않는 '쿨'한 사랑으로(하얀 거탑) 뭇 유부남의 '로망'이 되 버렸다.

긴 목선과 새하얀 피부는 쉽게 말을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고혹적인 세련미를 풍기지만 막상 말문이 터지면 여느 10대 소녀 못지 않게 발랄하고 수다스럽다.

강단 있지만 그 속에 묻어있는 묘한 섹시함부터 남자를 편하게 거둘 줄 아는 차분함까지 도대체 어떤 모습이 진짜 그녀일까.

이번에는 '쿨'한 사랑을 버리고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치명적인 사랑으로 돌아왔다. 공포 영화 '기담'(감독 정가형제, 제작 영화사 도로시)에서 그림자 없는 여의사 역을 맡은 김보경()이다.

- 드라마 '하얀 거탑'의 희재 역으로 남자들의 로망이라는 별칭이 생겼다.

▲ 남자들이 못된 거다. 이해는 가지만 여자 입장에서 보면 못됐다. 아내도 있고 애인도 있는 상황을 좋게 말하면 쿨하지만 못된 사랑이라고 본다. 남성 분들 꿈 깨셔야 된다.

- '청풍명월' 이후 '하얀 거탑'으로 주목 받기까지 그동안 뭘 하며 지냈나.

▲ '친구'로 인기가 급부상한 뒤 '아유레디'까지는 좋은 분위기로 갔다. '청풍명월' 흥행이 기대에 못 미친 후 거의 휴식기다. '친구' 이전에는 내가 작품을 찾아 다니며 오디션을 받을 수 있었지만 '친구' 이후로는 그냥 (찾아 주기를)기다려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게 오히려 더 힘들었다. '어떨 땐 이 작품 아니면 할 게 없는데…'하며 연기 인연이 끊길까 봐 작품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게 다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깨달은 게 많다.

- 연예인들이 슬럼프에 빠지면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 혹시 비슷한 경험을 했나.

▲ 올해 연예계에 안 좋은 일이 많았는데 정말 그 심정을 이해한다. 나도 우울증에 걸려서 말이 안 나온 적이 있다. 심지어 1주일 씩 말을 못 하고 그랬다. 그럴 땐 '어…'라는 소리도 안 나온다. 내 상태를 아는 친구들과 통화할 때는 핸드폰을 손으로 톡톡 쳐가며 대화를 나눈 적도 있다.

- 힘든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나.

▲ 그런데 내 성격 자체가 우울증에 오래 빠져있을 수 없는 성격이다. 내가 살려고 스스로 빠져 나오게 됐다. 29살 때 가을인가, 그 때가 가장 힘들었다. 집에서 혼자 소주 한 잔 먹고 한게임 고돌이 한 번 치고 하며 시간 보내기도 했고. 주위에서 그 나이 되도록 결혼을 안 해서 그런다며 소개팅을 주선해줘 소개팅도 했다. 연기를 안 하니 정말 죽겠더라. 그러다 우연히 장기기증 신청을 하게 됐는데 그 때서야 '내가 태어난 이유가 있구나, 살아갈 가치가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편해졌다. 어차피 평생 할 연기이니 천천히 마음 먹자고 생각했을 때 '하얀 거탑'의 제안이 들어왔다.

- '하얀 거탑'이 전성기의 전환점이 된 것 같다.

▲ 작품의 전환점은 영화 '기담'인 것 같다. 개봉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웃음) '하얀 거탑' 때 연기의 재미를 알았다면 '기담'을 하면서는 연기에 집중하는 법을 알게 됐다고 할까. 이전에는 본능적으로 어떤 게 좋은 연기고 나쁜 연기인지를 알았다면 이제는 연기의 문을 여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 정가 형제 감독 두 분이 큰 도움이 됐다. 어느 날 두 분 감독님이 다른 배우의 연기에 대해 얘기하는 걸 우연히 들었는데 내가 새겨 들을 얘기가 너무 많은 거다. 그 때부터 몰래 두 분 뒤에서 대화를 엿들었다. 항상 두 분의 대화에 귀를 쫑긋했다. 두 감독님은 정말 연기를 매너 있게 꺼내간다. 연기 지도도 최고다.

- '기담'에서 남편 동원 역의 김태우와 호흡은 어땠나.

▲ 처음 김태우 선배를 봤을 땐 딱 '서울의 모범 시민'의 대표적 인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완전 아니다. 모범적이긴 한데 정말 웃기고 매력이 있다. 대본 리딩을 할 때 '정말 똑똑한 사람이다'라고 느꼈다. 늘 자신이 맡은 인물만 보는 게 아니라 영화 전체를 보더라. 그 면이 참 부럽고 배우고 싶었다. 어느 날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보경아, 아무리 감독이 뭐라고 해도 카메라가 돌면 믿을 건 너 자신 밖에 없어.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너는 나를 믿고 나는 너를 믿어야 돼'라고. 이전에 상대 배우 없이 벽을 보고 대사를 쳐 본 경우가 있다.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지만 상대 배우 스케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김태우 선배는 그런 상황이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사람이다. 태우 오빠와 호흡은 진실로 마음이 오가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 '기담'에서 인영과 동원은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두 사람의 지독한 사랑 때문에 공포물이지만 멜로에 더 가깝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김보경의 실제 사랑은 어떤가.

▲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모든 걸 다 바치는 사람이다. 정말 지극한 사랑에 빠져 본 적이 있다. 남들보다 사랑을 한 시기가 좀 늦었는데 내가 연기적으로 한참 안 풀릴 때 한 사람을 사랑했다. 때론 그 사랑 때문에 버티기도 했는데 헤어진 뒤에는 그 사랑 때문에 숨이 넘어갈 뻔했다. 너무 모든 걸 바쳤기 때문일까, 그만큼 힘들었고 아픔이 컸다. 그 사랑에는 꼭 남녀간의 에로틱한 감정 만이 아니라 많은 감정이 포함돼 있었다. 그 사랑 뒤에는 사랑에 빠지기가 두렵다. 누가 먼저 찼다거나 차였다고 할 수 있는 그런 헤어짐은 아니었다. 헤어지는 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인영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인영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한 사람이 아니니까. 그리곤 결심했다. 앞으로는 절대로 정신을 붙들어놓자고. 너무 사랑하지 말자고. 앞으로 사랑에 빠진다면 '하얀 거탑'의 희재처럼 쿨하게 대할 생각이다. 그게 나를 살리는 법이다.

- 이렇게 열정적으로 사랑을 하는데 왜 스캔들이 없나. 동료 연예인과 교제해 본 경험은.

▲ 연예인하고는 안 사귄다는 것이 내 철칙이다. 연예인 뿐만 아니라 감독이나 내 계통 사람들은 절대 안 사귄다. 한 번 같은 계통의 사람을 사귀었다가 더 깨달았다. 감독과 사귀면 그 앞에서 부끄러워서 어떻게 연기를 하나.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어떻게 그러나.

- 송곳으로 살해를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무표정하면서도 집요함과 오기가 엿보인다. 어떤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나.

▲ 그 장면 찍고 나서 정말 10년 먹은 체증이 확 내려간 것 같다. 처음에 그 장면을 리딩할 때 감독님이 연기해 보라고 하더라. 하지만 내가 그랬다. 촬영장 가서 하겠다. 지금 이런 장소에서는 연기가 안 나올 것 같다고. 촬영장에 가니 감독님들이 돼지고기 덩어리를 가져다 놨더라. 정말 머리가 좋은 분들이다. 액션 사인이 떨어지니 정말 눈이 막 돌아가더라. 정말 실컷 찌르고 나니 내 눈이 실제로 돌아가 버린 줄 알았다. 찍고 나서 '아, 정신 챙겨야지, 제 정신 가져와야 돼' 했다. 정말 그런 속시원함은 처음이었다.

- 도로시 장소정 대표가 1930년대 세련된 신여성을 표현할 이는 김보경 밖에 없다며 캐스팅 했다고 들었다. 당시 여성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은데 캐릭터 구축은 어떻게 했나.

▲ 먼저 생각한 부분이 메이크업을 하지 말자는 거였다. 30년대 여배우라면 모르겠지만 의사가 직업이니 화장은 필요 없겠다 생각했다. 마스카라도 안 했고 헤어스타일을 어떻게 할 지 고민이 많았다. 롤모델이 없는 역할이기에 고민이 많았다. 의사이기 때문에 냉철한 모습을 표현하려 주력했다. 나중에 복고풍 의상이나 헤어스타일이 잘 어울렸다는 주위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 좋더라.

- 차기작이 MBC 주말드라마 '깍두기'이다. 이번엔 어떤 변신을 보여줄 예정인가.

▲ 전 남편인 김승수씨를 사이에 두고 유호정 선배와 삼각 관계에 놓이게 되는 역할이다. 유학을 다녀와서 이혼 하게 되고 한국 최고의 MC로 군림하는 캐릭터다. 방송국 PD인 전 남편에게 애정은 남아 있는데 그의 마음에는 이미 유호정씨가 들어가 있고 그런 내용인데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질투를 하는 그런 모습 보다는 성숙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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