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토크] 복귀작 '숙명'서 조연 의외라고?
연기는 캐릭터 싸움, 역할에 올인할 뿐
함께 복무한 후배 연예인과 끈끈한 우정
군대 경험은 배우로서도 값진 경험이죠

“저는 해물 라면이요.” 지성은 안주 앞에서 몸을 사리는 다른 연예인들과 달랐다. 일단 라면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우고 씩씩하게 소주잔을 연거푸 ‘원샷’했다. 스포츠한국 김지곤기자 jgkim@sportshankook.co.kr
2007년 6월6일 현충일,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홀가분한 남자 연예인이었을 것이다.

연예계에 병역특례 비리 광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현역을 마치고 당당히 제대했기 때문이다. 배우 지성을 제대 후 꼭 1주일만인 지난 13일 서울 강남의 한 포장마차에서 만났다.

제대한 소감을 물었더니 쑥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휴, 제가 한참 쉬었고 지금 작품을 발표하는 것도 아닌데 할 말이 뭐 있겠어요.”

지성은 선한 눈빛에 넉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야구모자를 벗으며 자리에 앉은 그는 ‘쌩얼’이었다. 지성은 “원래 소주 3병 정도가 주량이었는데 자주 안 마시다 보니 주량이 좀 줄었어요”라고 말했다.

군면제자(이재원기자ㆍ이하 이)와 예비역(김성한기자ㆍ이하 김)은 주량이 줄었다는 진술에 “다행이다”는 눈빛을 보였다.

지성은 “한 잔 하십시오” “괜찮습니다” 등 여전히 ‘군대식 어법’을 쓰며 ‘민간인’으로 돌아온 ‘군바리’의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공익 대신 현역을 택한 사연과 제대 후 소속사와 재계약을 한 ‘의리남’의 면모를 소탈하게 보여줬다.

#공익 대신 현역=사람을 얻었다

지성은 지난 2005년6월7일 현역으로 입대해 꼬박 2년을 복무하고 제대했다. 지난해 4월부터 연예병사로 복무했지만 이전에는 강원도 인제에서 이등병 시절을 보냈다.

사실 지성은 신체검사 4급 판정을 받고 보충역 판정을 받았지만 재검을 자청해 3급을 받은 뒤 현역으로 입대했다.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할 수도 있는데 굳이 현역을 자원한 이유가 뭔가요?”(이) “이왕 가는 거,남자답게 다녀오고 싶었어요. 배우로서도 더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고요.”

지성은 연예병사에서 함께 복무한 배우 홍경인 박광현 윤계상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지성은 소주잔을 들이키며 “평생 함께 가고 싶은 사람들이에요”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서로 다소 경계심을 가지고 대했지만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다들 ‘배우’라는 겉옷을 벗고 ‘자연인’으로 허물어졌다.

지성은 “친한 연예인이 누구냐”는 질문에도 “이 사람들과 우정을 느껴 봤기에 다른 이들에게 함부로 ‘친하다’는 말을 못하게 됐어요”라고 답했을 정도로 강한 ‘전우애’를 갖고 있다.

지성은 후임병인 가수 문희준 김범수에 대해서 애정을 드러냈다. 지성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랍니다. (문)희준이도 건강이 좋지 못하지만 대한민국 남성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현역으로 들어왔어요. 하지만 티는 전혀 안 내죠”라고 말했다.

#군대 2년=

연예병사 생활을 했다면 다른 현역보다 조금 편하진 않았을까.

“군에서 영화는 몇 편 찍었어요?”(이) 지성은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씩 웃으며 “영화는 두 편 찍었어요. 요즘은 연예병사라고 흔히 생각하듯 편하지 않아요. 연예병사에 연예인만 있는 게 아니니 오히려 더욱 성실히 복무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지성은 국방홍보 업무에 참여하고, 매일 오후 손선애 진행자와 라는 제목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라디오는 처음 진행해봤지만 매우 뿌듯했다고 한다.

“군 방송인데 라디오의 피드백을 알 수 있나요?”(김)

“그럼요. 멀리서 듣고 문자가 와요. 장병들이 간부의 전화로 몰래 사연을 보내기도 하고요.(웃음) 제가 이등병 때 복무한 인제 지역 장병들에게 특히 힘을 주고 싶었어요.” 지성은 소주잔을 술술 들이켰다. 역시 군대 이야기는 끝이 없어 보였다.

“군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김)

“사실 수해 복구 등 대민지원도 제안하고 싶고 의미 깊은 일도 하고 싶었는데 쉽지는 않더라고요. 아, 지난해 가을 3박4일간 평화통일을 기원하며 서쪽에서 동쪽으로 GOP를 돌았죠. MTB를 타고요.”

지성은 가슴이 터질 듯 힘든 순간도 있었고, 혼자 선두에 나섰다 넘어져 큰 부상을 당할 뻔 하기도 했지만 뿌듯했던 순간이 기억 나는 듯 미소를 지었다. 지성은 “제대를 앞두고 ‘개구리마크’를 받았을 때도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군면제자’가 물었다. “개구리마크가 뭐죠?”

‘예비역’ 지성은 “예비역으로 편입된 뒤 군복에 다는 마크인데 일명 ‘개구리 마크’라고 해요”라고 친절히 설명했다.

“후임병들이 ‘오바로크’ 해서 주잖아요.”(김)

지성은 “아, 맞아요. 그랬어요. 하하.”

“오바로크는 또 뭔가요?”(이)

“재봉틀로 마크를 군복에 다는 걸 일컫는 말이에요.”

예비역의 군대 이야기에 지루해진 ‘군면제자’가 물었다. “피부가 너무 좋으세요. 혹시 군대에서 ‘관리’한 거 아니에요?”

지성은 “그건 아닌데요. 사실 처음 이등병 때는 거울 보고 피부 걱정도 했죠. 그래도 배우인데 걱정이 되더군요. 몸도 10kg이나 불었기에 더 염려가 되었어요. 그런데 상병 다니까 살도 빠지고 저절로 원상복귀 되던걸요”라고 말했다.

배우로서 2년간의 공백에 두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었을 터다. 하지만 지성은 제대 후 가족이 있는 전남 여수에 내려가 마음을 비웠다고 했다.

“사실 (군에서) 나오기 전에는 욕심이 많았어요. 막상 나오고 찬찬히 생각해 보니 마음을 비우자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졌어요. 내면의 평화를 갖자, 그래서 얼굴이 좋아보이는 것이랍니다. 하하.”

# 조연 복귀=

지성은 군 복무 중 소속사 비타민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이 종료됐다. 군대 문제 해결됐겠다, 의 한류스타겠다, 연예 기획사들이 지성에게 눈독을 들인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정작 지성은 비타민 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을 했다.

“거액을 제시한 곳도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목돈’을 만질 좋은 기회인데 왜 거절했어요?”(이)

“맞아요. 정말 이런 말도 안 되는 액수를 내가 받아도 될까 싶을 정도로 큰 돈을 이야기한 곳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 매니저 형들은 9년째 저를 봐 왔고 저를 제일 잘 아는 형들이거든요. 돈은 이 형들이랑 같이 벌면 되죠.”

지성과 옆자리에 앉아 있던 매니저는 서로 재계약금 이야기를 꺼내기가 민망해 어색하게 재계약을 진행했던 과정이며, 지성이 신인시절 헬스클럽을 이용할 돈이 없었을 때 집에서 같이 운동을 했던 추억이며, 돈보다 작품을 먼저 봤다는 무용담 같은 자랑까지 한동안 이어갔다.

“재계약도 다소 의외였지만,첫 작품을 영화 으로 택한 것도 의외인데요?”(김)

지성은 또 다시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찬찬히 답했다. 지성은 “저도 제 드라마나 영화로 복귀하고 싶기도 했어요. 하지만 ‘완벽한 조연’이면 조연이란 생각이 들지 않죠. 어차피 연기는 캐릭터 싸움 아닌가요. 제 역할을 제가 제대로 소화해 내길 바랄 뿐이죠.”

지성은 술잔을 시원하게 비워내면서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반듯한 답변이 ‘얄미워’ 약을 올려 보자고 질문을 던졌다. “영화 에서 조연으로 인상 깊은 연기를 남겼죠. 하지만 좀 더 욕심을 부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 독하게 치고 올라가도 시원찮을 판에 착한 선비를 자처하면 어떡하죠.”(이)

지성은 “제가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은 걸 알아요. 팀은 그런 생각을 안 했을까요? 왜 저한테 그 역할을 맡겼을까 생각해봤거든요”라고 털어놨다. 지성은 여수 앞바다에서 “마음을 비우자”는 다짐을 떠올리듯 담담했다.

지성은 의 투톱으로 거론되는 송승헌 권상우와 동갑내기 친구로 오히려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고 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보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연기를 재개한다는 설렘이 더 크다.

“연기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뭔가요?”(김)

지성은 드라마 을 꼽았다. 아무래도 ‘남자 이야기’라 기억에 오래 남는단다. 드라마 과 맞붙어 예상보다 시청률이 높지 못했던 는 사극 도전작으로 마음에 남아있다.

지성은 “광해군 역을 맡았는데 유배를 가는 장면에서 진심으로 눈물이 흘러 나왔어요. 가슴이 터질 것 같더군요”라고 회상했다.

지성은 등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를 하나 하나 거론하며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지성은 군 입대 전 마지막 작품에서 연기에 대해 조금 알 것 같았다고 했다.

지성은 “배종옥 누나와 함께 출연한 을 촬영하며 일의 재미도 느끼고 자신감도 얻었어요. 군대 가서 이 느낌을 잊으면 어쩌나, 걱정도 됐었죠. 하지만 천천히 갈 거에요”라고 말했다.

지성은 거만하지 않되 자신감이 있어 보였고, 나태하지 않되 여유가 있는 듯 했다. 군대에서 이미 인생은 장기전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온 것일까.

지성은 “군대 가면 사람 된다는 말이 있지만 사실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군대에서의 기억은 저에게 남아 제가 앞으로 배우로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을 줄 것 같아요”라며 여전히 꼿꼿한 자세로 일어났다.

지성은 “(영화 촬영장인) 제주도에 오시면 연락주세요. 소주 한잔 해요”라는 ‘추신’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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