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비수에 상처받는 연예인들

연예인들이 사이버공간에서 얼굴 없는 '악플'의 무차별 공격을 당하고 있다.

대중의 인기를 얻고 살아가야 하는 연예계의 특성상 사생활까지도 낱낱이 공개되는 인터넷 공간에서 이들을 향한 인신공격성 댓글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 인권 침해에까지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는 21일 가수 유니(본명 허윤)의 사망기사가 보도된 후 1시간30분여 만인 5시40분께 댓글차단 공지를 띄웠다. 그 폐해가 너무나 심각했기 때문.

유니 자살 등 계기로 '악플' 우려 고조
김형은 등 고인에게도 무차별 공격
인터넷 실명제 도입? 자정 노력이 관건!

인기 가수의 갑작스런 자살을 알리는 기사여서 대중의 엄청난 관심을 끌었고 순식간에 1천300여 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다. 그런데 댓글 중 상당수는 "잘 죽었다"는, 듣기에도 섬뜩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유니뿐 아니다. 지난 10일 교통사고로 끝내 사망한 고 김형은도 마찬가지였다. 사망 관련 기사에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악플이 달려 "죽은 사람을 두 번 죽인다"는 자성의 목소리까지 나왔다.

이처럼 인터넷 공간에서 이뤄지는 악플들로 인해 연예인들이 엄청난 심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 악플에 상처받는 연예인들

지난해 연예계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소문은 김태희 결혼설이었다. 난데없이 불거진 김태희와 모 재벌의 결혼설은 실체가 없는 상태에서 인터넷을 매개로 날로 확산돼갔다. 그 와중에 김태희를 공격하는 댓글이 주류를 이뤘고 급기야 김태희와 그의 소속사가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고 명예훼손에 가까운 글을 올리는 누리꾼들을 처벌해달라고 수사를 의뢰했다.

당시 김태희 소속사인 나무엑터스의 김종도 대표는 "말 그대로 사실과 다른 소문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려니 했는데 계속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김태희에 대한 인신공격성 글까지 퍼지고 있어 김태희와 가족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주가조작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으나 무혐의로 결론났던 하지원도 "한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힘들었다"며 "특히 가족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비난을 퍼붓는 것을 보고는 나 때문에 고통당하는 가족에게 미안해 더욱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깜찍한 용모와 함께 끊임없는 선행이 알려지며 '국민 여동생'으로 불리는 문근영도 "나를 공격하는 것은 괜찮지만 나보다 어린 동생이 나로 인해 상처받는 게 괴롭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23일 재혼을 앞두고 있는 이경실 역시 재혼 관련 기사가 보도되고 난 후 "악플로 인해 마음고생이 심하다"며 곤혹스러워했다.

유니 또한 소속사가 뒤늦게 밝힌 바에 따르면 섹시미를 강조했던 2집 발표 이후 성형 논란 등에 관한 악플 때문에 심적 고통을 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악플은 연예인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생활'이 돼버릴 정도다. 문제는 한 누리꾼의 장난으로 시작됐던 '변정수 사망설'처럼 생명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세상을 떠난 고인을 두고도 "잘 죽었다"는 식의 거침없는 글을 올릴 정도까지 됐다는 점이다.

◇ 악플은 감정의 배설구?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도대체 왜 이렇게 남을 비방하는 글을 올리는 걸까.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유범희 교수는 "비방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익명성을 빌려 숨어서 욕하는 대표적인 케이스"라며 "이들은 보통 일상생활에서 자신감이 없고, 심리적 열등감 등으로 위축돼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김태희를 비방해 불구속 입건됐던 사람들 대부분이 "김태희는 얼굴도 이쁘고, 공부도 잘해서 그냥 미웠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유 교수는 "숨을 수 있는 공간에서 평소 내재돼 있던 공격성이 무차별적으로 발산되는 경향이 있어 인터넷 공간을 감정의 배설구로 이용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악플이 크게 두 가지 경향을 보인다고 했다. 성인의 경우 감정을 배설하는 경향이 크고, 청소년이나 미성년자들은 사안에 대한 깊은 사고나 판단 없이 일종의 재미로 행동한다는 것.

유 교수는 이어 "그런 글을 대할 때 일부 미성숙한 아이들이나 열등한 성인들의 행동으로 치부한 뒤, 대다수 사람들은 공감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무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럼에도 연예인들에게는 이러한 악플이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윤세창 교수는 "악플이 유니의 자살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없지만 보도된 것처럼 유니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면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타격을 준다"고 밝혔다.

그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견디는 힘이 급격히 떨어진다. 유니의 입장에서는 악플들이 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 덧붙였다.

◇ 자정의 목소리 나오지만…

이러한 심각한 후유증으로 인해 자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역시 누리꾼 스스로 정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서서히 익명성이 보장된 댓글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자정 노력을 기울이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댓글 안보기 운동' '네이버 댓글 실명제 운동' 등이 대표적이다.

10일 김형은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잇달아 올라온 비난과 조롱의 댓글을 참다 못한 누리꾼들이 스스로 악플러(악플을 다는 사람)를 처벌하라고 주장했다.

10일 미디어 다음 '네티즌 청원'란에 개설된 '고 김형은 씨 관련 악플러 처벌합시다' 난에는 22일 오전 현재 2만 건이 넘는 동의가 이뤄지고 있다. "해도 너무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부 누리꾼들이 악플러를 직접 찾아낸 뒤 악플러로 지명된 누리꾼의 미니홈피 등을 찾아가 또다시 공격의 글을 남기고 온다는 점에서 이 역시 자칫 명예훼손이 될 수도 있다.

연예인들의 경우 예전보다는 악플에 대한 대처가 더욱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2월 가수 비가 일명 '라디오 괴담'을 퍼뜨린 누리꾼에 대한 수사를 의뢰해 4명이 7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배우 신이도 허위 사실 유포로 동료배우를 고소하기도 했다. 최진실과 김태희 역시 직접 수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사건이 검찰로 송치된 이후 소를 취하한 김태희의 경우처럼 처벌까지 이뤄지는 사례는 흔치않다. 대중의 인기를 발판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누리꾼들을 고소하면 또다시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악플과 안티팬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측은 "최근 들어 연예인들의 수사 의뢰가 들어오기는 하지만 처벌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밝혔다.

◇ 인터넷 실명제가 대안이 될 수 있나

법적 보완책으로 '인터넷 실명제' 도입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정보통신부 주도로 법제화 추진 움직임이 있으나 표현의 자유라는 큰 틀에 막힌데다 반대로 인터넷 실명제의 폐해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 나와 전면적인 시행에는 난항을 겪고 있다.

임홍기 사이버수사대장은 "정통부 산하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제보 등을 통할 수 있으나 인터넷 댓글 공격을 포함한 명예훼손 사건은 반의사불벌죄여서 당사자나 고인의 경우 유족 또는 보호자가 직접 처벌의사를 보여야만 수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인터넷 보급 초창기에 익명성이란 특성이 활용돼 상용화가 됐지만 이제는 익명성이 인터넷의 본질을 흐리게 됐다"며 "인터넷 실명제가 안된다면 최소한 인터넷상에 글을 게재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본인 명의로 사이트에 가입해야 하는 방안이라도 도입돼야 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는 올 7월부터 일부 포털 사이트와 언론사 사이트에 도입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돼 올 7월부터 일일 방문자 10만 명이 넘는 포털 사이트와 언론사 사이트에 인터넷 실명제가 적용된다.

임홍기 사이버수사대장은 "타인 명의로 가입하는 경우도 있어 완벽히 통제되긴 어렵다"고 말해 결국 누리꾼들의 각성이 가장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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