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자부터 스태프까지 챙기는 '훈남'

박건형은 자유분방하고 유연한 연기자다. 사고 방식도 자유롭고 행동 또한 거침없다. 첫인상이 다소 차갑고 무뚝뚝하기에 그의 사고 방식과 태도는 ‘건방지다’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하지만 잠시라도 함께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상대다. 강한 친화력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박건형에겐 연령과 성별을 불문한 지기(知己)가 많고 계속해서 늘어 나고 있다.

할리우드의 모든 관계자와 친분이 두터운 배우 케빈 베이컨이 ‘케빈 베이컨 지수’라는 말을 만들어 냈듯, 국내 연예계에 ‘박건형 지수’라는 말이 조만간 통용될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박건형과 첫만남은 부담스러웠다. 차가운 인상과 단답형의 대답 때문에 ‘오늘 인터뷰는 쉽지 않겠군’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잠시뿐이었다.

첫만남의 어색함을 털어내자마자 쉴새 없는 남자들의 ‘수다’가 펼쳐졌다. 박건형은 연기관을 시작으로 촬영에 임하는 자세, 대인 관계 등 자신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털어 놓았다.

2시간 남짓의 인터뷰를 마친 뒤 박건형에게서 차가운 첫인상을 더 이상 발견할 수 없었다. 훈남(훈훈한 남자) 이미지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 동료는 모두 가족이다

박건형은 2년반 만에 드라마에 출연한다. 박건형은 지난 2004년 SBS 미니시리즈 ‘천방지축 미스김 10억 만들기’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2007년 1월 방송되는 KBS 2TV ‘꽃피는 봄이 오면’(극본 권민수ㆍ연출 진형욱)의 주인공을 맡았으니 안방극장으로 금의환향하는 셈이다.

그동안 주로 영화계에서 활동했기에 드라마 출연이 낯설지 않을까 여겨졌다. 그렇지만 그는 ‘가족론’을 들어 편안하게 촬영에 임하고 있다.

“동료 연기자와 스태프 모두 4개월 이상 함께 해야 하는 소중한 인연을 맺게 돼잖아요. 한 가족처럼 지내야죠. 그러기 위해선 주인공인 제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연출자부터 막내 스태프까지 모두 ‘으싸으싸’할 수 있도록 앞장서고 있습니다. 영화에 비해 드라마 촬영 현장이 친밀도가 떨어진다고 하는데 그건 하기 나름이 아닐까요?”

박건형은 ‘꽃피는 봄이 오면’ 제작진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위해 촬영을 앞두고 가진 회식자리에서부터 몸을 사리지 않았다. 연출자부터 막내 스태프까지 모두 일일이 술잔을 주고 받았다. 나이를 확인한 뒤 ‘형-동생’으로 호칭을 바꿔버렸다.

물론 여자와 ‘누나-오빠’다. 심지어 극중 할머니로 출연하는 중견 배우 강부자에게도 ‘누나’라고 부를 정도다. 박건형은 연기자로 데뷔하기 전 영화 촬영 현장에서 막내 스태프로 일하며 고생한 경험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는 스태프의 고충을 잘 안다. 그렇기에 그에게는 촬영 현장의 모두가 가족이어야 한다.

“연기자들 중엔 동료 연기자와 연출자 정도 신경 쓰는 분들도 있어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위해 애쓰는 촬영 스태프와 매니저에 대한 고마움을 실감하지 못하는 거죠. 제겐 그분들도 못지않게 소중합니다. 더욱 챙기고 자주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술 마실 일이 많아져서 몸이 고생하긴 하죠.”


#‘이정도’면 충분하다

박건형은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절도범 가문에서 탄생한 검사 이정도로 등장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절도 전과자이기에 ‘개천에서 용 난’ 인물이다.

이름의 ‘정도(正道)’는 바른 길이라는 의미로 정의 사회 구현을 삶의 목표로 삼고 있다. 박건형은 배역의 이름을 활용해 작품에 임하는 자세를 설명했다.

“‘꽃피는 봄이 오면’ 출연을 결정한 뒤 감독님께 ‘이정도만 하겠습니다’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극중 정도가 바른 길을 걷는 만큼 저 역시 바른 연기자의 자세를 지키겠다는 의미였죠. ‘껄껄’ 웃으시며 좋아하시더군요. 욕심 내서 애드리브를 해서 배역에 개성을 더하고 싶진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캐릭터의 매력을 최고로 끌어올리고 싶어요.”

박건형은 그동안 ‘댄서의 순정’, ‘생날선생’, ‘뚝방전설’ 등의 영화에서 자유분방한 남성의 모습을 주로 연기했다. 반면 ‘꽃피는 봄이 오면’에선 단정하고 반듯한 캐릭터다.

연기 변신이 이뤄지는 셈이다. 하지만 변신이라는 말에는 그다지 의미를 두지 않는다. 연기자가 배역에 빠져 지내는 것은 당연한 삶이기에 변신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한동안 ‘이정도’로만 살아야죠. 다른 생각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연기했던 캐릭터와 다소 다르긴 하죠. 그걸 의식하면 ‘이정도’로 사는데 지장이 있을 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연기자는 평생 변신해야 하는데 변신에 의미를 둬선 곤란하죠.”

‘꽃피는 봄이 오면’은 현재 안방극장의 최강자인 MBC 사극 ‘주몽’과 경쟁해야 한다. 넘기에 힘든 산이다. 2년반 만의 안방극장 복귀작에서 너무 강한 상대를 만났다. 그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 않을 터였다.

“당연히 부담되죠. 그래도 오히려 시청률에 신경 쓰지 않고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편안함은 있습니다. 시청률은 높지 않더라도 ‘좋은 작품이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으면 만족입니다. 역시 ‘이정도’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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