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서 혼신의 연기 펼치며 우울증 극복… "전 복 받은 배우,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굿판을 구경한 적이 있는가. 신들린 무당의 모습은 굿을 하기 전의 모습과 전혀 다르다. 귀신이 씌었기 때문이다. 무당에게 그것은 숙명. 그 숙명을 거스를 경우는 반드시 아프게 된다. 아주 심하게. 그런데 이러한 '무당 팔자'가 무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예인(藝人)들 역시 이러한 팔자를 타고난 것 같다.

"아무래도 백무 신이 씌었나봐요. 화면 보면서 제 모습이 너무 이상해 진저리가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런데 촬영현장에서는 카메라만 돌아가면 180도 돌변했으니 정말 이상하죠?"

12일 늦은 오후 만난 탤런트 김영애(55)의 얼굴에서 한바탕 굿을 멋지게 치러낸 무당의 깨끗한 편안함이 느껴진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7일 방송된 KBS 2TV 사극 '황진이'의 18회에서 처연하고도 비장한 죽음을 맞은 백무. 그를 연기한 김영애는 속에 쌓아두었던 것을 남김없이 털어내고 새롭게 태어난 듯한 맑은 표정이었다.

물론 백무의 마지막이 너무 힘들었고, 아직 거기에서 빠져나오지는 못해 기력을 다 회복하지는 못했으나 그에게서는 상대방도 순화시키는 카타르시스의 기운이 전해졌다.

◇ 극심한 우울증에 거식증까지 걸려

"한바탕 후련하게 잘 놀고 온 기분이에요. TV를 보면 저 아닌 다른 인물을 보는 듯해 여간 이상한 게 아니었지만 어쨌든 촬영할 때는 참 기분 좋게 했고, 다 쏟아부었던 것 같습니다."

김영애는 사실 2004년 5월 종영한 KBS 2TV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를 끝으로 연기자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그는 황토 피부미용제품 전문회사 참토원의 경영에 전념하겠다며 사업가로서의 인생을 택했다. 그랬던 그가 '황진이'로 컴백했을 때는 분명 만만치 않은 사연이 있었을 터.

"혹시 (기자의) 어머님은 갱년기를 안 앓으셨어요? 우리 엄마가 그렇게 심하게 앓으셨는데 제가 그랬네요. 작년 11월부터 올 4월까지 극심한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어요. 아무것도 중요한 게 없더군요. 제 목숨까지도 다 부질없었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이 오죽하면 같이 죽자고 했겠어요. TV에서 누구 자살 소식이 나오면 그 심정이 너무나 이해돼 펑펑 울었고 거식증에 걸려 밥 한술 제대로 넘기지못했어요. 살아야 할 아무 이유가 없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사회적 문제로 심각하게 부각된 우울증이 김영애에게도 닥친 것. 사업도 잘되고 남편과 자식도 있는, 그야말로 아무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이는 그가 우울증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황진이'의 대본이 최후의 처방처럼 그에게 전해졌다.

"남편이 '황진이'의 대본을 들고 오대요. 제가 연기하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했던 남편이 손수 드라마 대본을 들고왔을 때는 그것밖에는 치료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배우에게 연기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무당에게 굿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하잖아요."

3년 만에 손에 쥐어진 대본. 그러나 김영애는 선뜻 잡을 수 없었다.

"두 달을 고민했습니다. 하겠다, 안 하겠다 변덕을 부리면서. 무서웠어요. 이제 60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은퇴 선언 후 십여 년이 지난 것도 아닌데 채신머리없이 복귀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두려웠어요. 또 지금 TV에 나가봐야 늙은 것밖에 보여줄 게 더 있나 싶기도 했고, 사업한답시고 딴짓하다가 다시 연기를 하면 잘할 수 있을지도 자신 없었어요. 하지만 주변에서 '누구보다 당신이 잘할 수 있다'고 격려를 해줘서 하게 됐습니다."

◇ "내가 설 자리는 역시 연기"

그렇게 시작한 '황진이'의 백무는 조선 최고의 춤꾼으로 황진이를 비롯한 송도 관아 기녀들을 차갑고 엄하게 다스리는 행수기녀.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지만 결국엔 제자의 앞길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한평생 곧은 심지를 유지한 진정한 프로의 모습을 보여줬다.

"병이 다 나았어요. 촬영하면서 너무 많이 웃었고 수다도 많이 떨었어요. 아무것도 아닌 일에 그렇게 웃었어요. 이렇게 깔깔거리며 웃어본 게 몇 년 만인가 싶더군요. 그러면서 역시 사람은 자기가 서야할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은퇴를 선언했을 때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고는 예견하지 못했을까. 1971년 MBC 3기 공채 탤런트로 연기 생활을 시작한 후 30여 년을 스포트라이트 받아온 연기자다.

"연기 안 하고도 충분히 잘살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죠. 눈 감기 전에는 단언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제가 좀 비현실적이고 '공주과'예요. 사업을 하겠다고 할 때도 그냥 황토가 좋고 제가 써봐서 좋은 것을 남들에게 전해줘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마침 남편도 제가 연기를 그만두기를 바랐구요. 그런데 사업을 하면서 사람을 완전히 버린 거 있죠? 어느 순간 '저게 원가 얼마지?'라는 식의 계산만 하고 있더라구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 전 그런 제 모습에 너무 당황했어요."

그의 연기 은퇴 선언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이었는가는 백무를 연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곧 백무였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그가 절벽 바로 앞에서 학춤을 추고 격정을 이기지 못해 피눈물을 쏟아내는 모습에서 김영애와 백무는 혼연일체가 됐다. 대본의 무게감에 눌려 촬영하면서 가위에 눌리는 경험도 했다는 그이지만 그의 백무 연기는 완벽 그 자체였다.

"마지막 촬영 후 스태프가 일제히 박수를 쳐줄 때 참 기분 좋았어요. 드라마 끝나서 아쉬운지 묻는데 전혀 없어요. 아주 시원해요. 지인들이 "어쩌려구 연기 안 하려고 했느냐"고 문자를 보내왔더군요. 나이 들어 변덕 부린 저를 꼴사납다 안 하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한없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전 정말 복 받은 사람인 것 같아요. 이제는 빚을 갚으며 살아야죠."

사업가 김영애로서 15일 중동 두바이로 출장을 떠나는 그는 이후 자연인 김영애로 일주일여 남편과 미국 여행을 할 계획이다. 그리고 돌아와 맞이할 새해에는 연기자 김영애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세상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지금 앞으로 연기를 어떤 식으로 하겠다고는 말 못하겠어요. 하지만 사업과 병행하며 좋은 작품이 주어지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의 인생이 바로 드라마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