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나' 촬영 현장
색다른 소재·솔직한 연애담… 케이블 드라마 새역사 쓴다

# Scene 1

“눈물이 계속 떨어지잖아! 빨리 카메라 준비해!”

연출자의 호통 소리가 촬영장을 휘감는다. 스태프들은 연출자의 지시에 일사분란(一絲不亂)하게 움직인다. 연출자는 병사를 호령하는 장군인양 스태프를 격려하고 독려한다. 스태프들은 순식간에 촬영 정비를 마친다.

안약 한 방울 없이 감정의 몰입만으로 눈물을 뚝뚝 흘려대는 연기자의 노력이 기특하다는 듯 박수를 연신 처댄다. “너무 우니까 어디서 컷을 해야 될 지 모르겠네.” 연출자는 칭찬인지 핀잔이지 모를 혼잣말이 나지막이 새어 나온다.

배우 소이현은 방금 까지 눈물 범벅이었던 얼굴을 손등으로 훔쳐내더니 방긋방긋 미소를 짓는다. 연일 밤샘 촬영이 이어지고 있다더니 지친 기색조차 없다. 지난 2일 찾은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한 세트장의 풍경이다. 종합오락채널 tvN 미니시리즈 ‘하이에나’(극본 이성은ㆍ연출 조수원)는 케이블 드라마의 새로운 이정표를 쓰고 있었다.

# Scene 2

“오빠가 게이라도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인걸. 행복해야 해.”

정은(소이현)은 사랑하는 남자 석진(신성록)의 커밍아웃을 접하고 충격 속에 눈물을 흘린다. 뒤에서 이런 슬픔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석진의 게이 친구(홍석천)가 서있다. 진지함 속에 위트가 녹아 드는 장면이다. 홍석천은 잘 알려졌듯이 ‘커밍아웃’을 실제로 한 연기자이다. 이번 작품에는 게이에 대한 자문은 물론 직접 출연까지 하고 있다.

물론 퀴어 드라마는 아니다. 노출 촬영도 없다. 그림이 안 된다는 사진기자들의 푸념은 계속됐다. 한쪽에서는 스태프들이 노트북으로 시청 소감을 확인하고 있다. 누리꾼들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시청 소감은 칭찬일색이란다.

네 남자와 한 여자 관계에 대한 공감의 글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스태프의 설명이다. 이미 시청자들은 19세 딱지가 붙었다면 내숭 아닌 진짜 이야기에 공감을 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다음 촬영은 야외로 이어졌다. 스태프의 발걸음이 또 다시 분주해졌다.

# Scene 3

“석진이 걔는 겁도 없이. 과자니 그걸 그냥 꿀꺽하고 삼키게.”

어설픈 바람둥이 ‘진상’을 맡은 윤다훈의 이죽거림이 시작됐다. 순진남 ‘철수’ 김민종과 완벽남 ‘진석’ 오만석도 맞받아친다. 이들의 유쾌한 연애담이 가을 하늘의 청명함 속에 울려 퍼졌다. 잠시 정비를 하는 동안 만난 배우들은 자신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케이블 드라마’라는 신세계에 대한 경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많이 망설였다. 주변의 만류도 있었고 하지만 반응이 좋으니 하길 잘했다 싶다.”(김민종) “공중파에서 다루지 못했던 내용들이라 시청자의 반응이 즉각적이고 상당히 구체적이다.”(오만석) “예전에는 할 수 없었던 솔직한 얘기를 표현할 수 있어 좋다”(윤다훈) 저마다 하길 잘했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자화자찬일까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조건 재미있게 만들고 싶다는 연출자의 의도가 시청자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궁금하다. 배우들과 한담도 이젠 끝, 다시 카메라는 돌아간다.

# Scene 4

“자네 작품이 방송대상 후보에 올랐던데?” “알고 있습니다. 그럼.”

방송국 내부 촬영이 이어졌다. 극중 등장하는 방송국과 드라마를 제작하는 방송국이 같은 이름이다. 그래서 실제 방송국에서 촬영되는 줄로만 여겼던 건 기자의 착각이었다. “에이, 복잡해서 방송국에서 어떻게 찍어요.” 한 스태프는 손사래를 친다.[기사제휴] 실제 방송국을 차려도 될만한 규모의 사무실 세트가 따로 마련됐다. 소품 담당이 컴퓨터 스크린에 ‘스타PD’의 열애설을 다룬 가짜 스포츠 신문을 띄운다. 옆에서 한 스태프가 미니시리즈에 제법 자주 나오는 설정이라고 설명한다.

저런 장면이 나오면 기분이 어떻냐고 묻는다. 기자들은 그냥 웃을 수 밖에 없다. 촬영장 분위기도 좋고 제작 조건도 완벽해보인다. 케이블 드라마가 지상파 드라마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또 다시 궁금해진다.

# Scene 5

세트 한 켠에서 한 스태프가 곤하게 선잠을 잔다. 드라마 촬영 일정이라는 게 밤샘 촬영도 불사하는 강행군이다. 누가 봐도 빡빡한 일정이라는 것을 세트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 주 방영 분량을 촬영하고 있는 스태프의 조급함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케이블 드라마는 공중파 보다 다양한 소재와 자유로운 표현 수위를 주창하며 시작됐다. 내용적인 소프트웨어 뿐만 아니라 놓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공중파 틈새 공략에 성공해도 사전제작제와 같은 시스템이 받쳐줘야 한다는 말이다. 역시 하드웨어도 중요하다.

‘하이에나’는 총 16부작 가운데 8부가 방송됐다. 막 반환점을 돌았다. 결승점에 도착할 때는 어떤 모습과 어떤 이야기를 남길까? 연출자의 ‘큐’ 사인과 함께 이들의 도전은 다시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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